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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Dec 31. 2020

넘치는 기념일에

꼭 들여다봐야 하는 건

  12월에는 챙겨야 하는 날들이 참 많다. 유난히 가족들의 생일이 12월에 몰려 있고,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있기도 하다. 기념일이 많을수록 엄마는 바쁘고, 아이들은 즐겁다. 음력으로 생일을 보내시는 아버님의 생신이 1월 1일이라, 아이들에게 "우리 곧 케이크를 먹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또 먹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넘치는 기념일 속에 연말을 보내고 있다.


  기념일 속에 아이들이 기대하는 것들은 대체로 단순하다. 둘째 아이의 경우 로봇, 자동차와 같은 장난감을 기대한다. 이 아이는 오차 범위가 크지 않다. 자동차 장난감을 보며 "이거 좋아할까?"라고 물으면, 80-90%가 맞는다. 자동차나 로봇이라면 싫어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첫째 아이는 조금씩 다르다. 어느 날은 마론인형을 좋아했다가, 다른 날은 종이 인형, 또 다른 날은 머리핀이나 머리띠와 같은 액세서리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이 아이의 선물을 고르는 것은 꽤 까다롭다. 남편과 나는 둘째의 선물은 금방 골라서 품에 안고, 첫째의 선물로 무엇이 좋을지 한참을 서성인다.


  선물을 고르고 있으면, 선물을 받게 될 사람 생각이 많이 난다. 상대방을 충분히 고려하고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다 보면, 선물을 받게 될 광경, 얼마나 기뻐할지, 상대와 나는 얼마나 행복할지가 그려진다. 금세 입가에 웃음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렇게 고른 선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할 때가 종종 있다. 어른이 되어서야 사회적 체면 때문에 짐짓 아닌 척하기를 잘하지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난 이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제 이거 싫어해!"라고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샐쭉한 표정과 뾰로통한 입술, 틱틱거리는 말투 등 온몸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물을 주는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아니, 어떻게 저렇게 개념이 없을 수가..', '아, 저런 태도를 어떻게 고쳐주지?'등등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첫째 아이를 붙들고 설교를 늘어놓았다. '네가 아무리 받기 싫은 물건이어도, 주는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우선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란다' 등으로 아이에게 태도를 가르쳐주었다. 그 이후로 아이는 못 이기는 척 받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선물은 받고 난 뒤 아무 데나 두었다. 정말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다. 아, 정말 가르침은 끝이 없다. 이런 일들로 아이와 신경전 벌이길 수없이 했다. 오랜만에 손자 손녀를 만나 이것저것 쥐어주고 싶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아이들은 참 '비싸게' 굴었다. 나는 아이를 구슬림과 동시에 선물을 마련해주시길 원하는 고마우신 모든 분들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팁을 드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받는 것이 많아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고마움을 잃게 된다. 그 반대가 되면 고마움이 넘쳐 과한 은혜로 번지게 된다. 이놈의 선물이 참 애매한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받아서 행복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도구이면서, 동시에 시든 때도 없이 너무 과용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의 생일, 명절, 크리스마스, 자신의 형제의 생일, 상과 함께, 오랜만에 만나는 어른들에게, 그냥, 이유 없이 받는 선물이 차고 넘친다. '선물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분명 시작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했던 것 같은데, 온데간데 사라지고 남는 건 물질밖에 없는 것 같다. 차고 넘치는 것이 많은 시대에 '고마움'을 자꾸 잃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와 교회에서 받을 선물이 차고 넘쳤다. 게다가 첫째 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겸해서 이것저것 받을 환경에 놓였다. 첫째는 과자꾸러미, 책가방과 신발주머니, 새 책상과 의자 등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올해는 아이에게 쥐어진 선물이 다른 해에 비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너뛰었다. 생일 같으면 "엄마는 나한테 뭐해줄 거야?"라고 당연한 듯 물었을 텐데, 휘몰아치는 선물들 덕분에 내게 질문이 오지 않았다. 한 번쯤은 선물을 받지 않는 기념일을 보낸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어, 내게는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 선물도 정신노동의 하나가 되는 건가. 고작 크리스마스 아이 선물인데, 뭐 이렇게 거창하게 생각하나 싶다가도 '너무 뻔해질까 봐', '너무 당연하게 될까 봐' 소소한 기념일에 선물을 챙기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기념일, 연휴를 만들고 싶다. 함께하는 시간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보다 '선물'이 먼저인,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 날을 만들고 싶다. 선물의 기쁨과 주고받게 될 마음을 알고 있다. 그저 나의 예민함이 과해서 '마음'보다 '선물'이 앞서게 될까 봐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또 소중한 시간을 적당히 '선물'로 때우려는 나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선물을 받았을 때, 준비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받고 누릴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소망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귀중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자꾸 터부시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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