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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닥터 양혁재 Oct 05. 2023

우리가 함께 걷는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님들과 함께 걷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얻은듯한 희열에 휩싸인다. 어머님의 가장 옆자리에서, 어머님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순간. 나는 이 순간을 계속 기억 속에 담아두기 위해 노력한다. 


밀려오는 환자들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로 진료실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점심도 건너뛰어야 할 때도 있다. 아니 사실 많다. 그럴 때면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지칠 때가 많다. 이때 나는 어머님과 함께 드넓은 들판을 거닐었던, 아름다운 마을 길을 걸었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 순간을 상기하면, 마법처럼 다시 힘이 샘솟는다. 안개에 휩싸였던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피로에 휩싸였던 몸이 이완되면서, 다시 환자들 앞에 나설 힘이 생긴다. 정말 마법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토요일에도 우리맘 어머님과 함께 잠시 걸었다. 어머님이 무릎이 불편하신 터라, 오래 걸을 순 없었지만, 가능한 범주 내에서 잠시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아직은 시린 기운이 없는, 선선함만 품고 있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앞을 향해 어머님의 손을 잡고 걸었다. 어머님도 표정이 좋으셨다.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런 어머님의 표정에 나 역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과의 평화롭고 행복했던 산책 시간을 카메라에도 담았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흰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돌아오자마자 카메라의 사진을 컴퓨터로 옮겨 인화했다. 그리고 진료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다.  


피로가 몰려올 때마다 어머님과 함께했던 산책 사진을 살핀다. 사진을 눈에 담으면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아무 걱정 근심도 없이, 어머님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들판과 고즈넉한 마을 길을 거니는 그때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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