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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닥터 양혁재 Oct 23. 2023

당신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날은 쌀쌀했지만, 하늘은 더없이 맑았던 지난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부리나케 준비를 마치고, 연행 어머님을 만나기 위해 철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폭우를 마주해 잠시 당황했지만, 다행히 어머님 댁에 도착하기 임박했을 무렵 비는 완전히 그쳤고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하늘도 깨끗해졌다. 


제작진을 통해 미리 전달받았던 연행 어머님의 사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워낙 어려운 상황에 처하신 터라 계속해서 마음이 쓰였다. 걱정이 깊었는데, 다행히 어머님의 표정은 매우 밝으셨다. 누구보다 반갑게 나와 성연 씨를 환대해 주시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 어머님의 건강 상태를 살펴드렸다. 어머님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어렸을 적,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사설 의원에서 침을 맞았던 어머님. 그날 이후, 오른쪽 새끼손가락과 늑골이 구부러지기 시작하셨단다. 결국 2000년도에 장애 5급 판정을 받게 된 연행 어머님. 체계적인 치료를 받으면 좋았으련만, 형편이 워낙 어려워 어머님은 아플 때마다 진통제를 드시거나 읍내의 작은 의원에서 잠깐씩 치료받는 것으로 불편함과 통증을 참아오셨다고 했다. 형편이 어렵다 보니 어머님께서는 생계를 위해서 불편한 몸으로도 계속해서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는데, 그 결과 어깨 연골이 닳아버려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심해지셨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거나, 걸레질을 하는 등 간단한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은 상황.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정형외과 의사인 나는 어머님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얼마나 심한 통증체 시달리시는지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애써 통증을 참으시며 웃으시는 어머님을 향해 나는 약속드렸다. 힘이 닿는 데까지 아픈 곳을 정성껏 치료해 드리겠다고. 이젠 어머님께서 통증 없이 살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다고. 


의사 아들의 굳은 약속에 어머님은 비로소 활짝 웃으셨다. 억지웃음이 아닌, 진짜 행복해서 나오는 미소에 나도 성연 씨도 덩달아 웃을 수 있었다. 


이제 이틀 뒤면 어머님께서 병원에 오신다. 철원에서 서울까지, 꽤나 먼 거리가 걱정은 된다. 그러나 동행하는 보호자가 있으니, 어머님께서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시면 어머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따뜻하게 맞이해 드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선물해야지. 부디 멀지 않은 미래에 어머님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제껏 통증 때문에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보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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