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속에 숨어 있는 시간들

by 도시 닥터 양혁재

의사 생활을 오래 하면, 기술은 손에 익는다.

경험은 쌓이고, 판단은 빨라지고, 수술실에서의 두려움도 점점 줄어든다.

지금 와서 확실하게 느끼는 사실 하나.


의사는 혼자선 배울 수 없다는 것.


책에서 의학을 배웠지만, '좋은 의사가 되는 법은 환자들이 가르쳐주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과 오랜 시간 진료를 이어가다 보면

지금 당장 보이는 질환보다 그분이 버틴 시간을 먼저 보게 된다.

검사 결과보다 먼저 알 수 있는 건 주름 사이에 묻어있는 이야기이고,

목소리에선 혹여 가족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들린다.


수술은 신체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편이다.

치료 시기를 조금만 앞당겼더라면

몸에도 부담이 적은 치료들을 시도해 볼 수 있겠지만,

평소에도 병원에 가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인 어르신들께서는

끝까지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치료의 적기를 놓친 뒤에야 병원 문을 두드리신다.


그런 어머님, 아버님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내 어머니와 비슷한 연령대여서일까.

검사 결과를 보며 '어떻게 지금까지 버티셨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줄까.'

홀로 아픔과 싸우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파스와 진통제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텼을지,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일까.

드디어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어머님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담담한 인내로 감춰져 있던 서러움, 외로움

그리고 지난 세월이 물밀듯 밀려오며

비로소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를 찾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의사는 혼자서 완성되는 직업이 아니다.

사람을 통해 완성된다.


사람을 만나고 치료하고, 과정을 지켜보는 일.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의사로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스승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진료실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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