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아들은 여전히 그 곁에

by 도시 닥터 양혁재

봉사활동을 나가지 못한지도 어느새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직접 시골로 내려가 어머님들의 손을 잡아드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마음까지 돌아온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곳에 의사 아들로 머물러 있다.


요즘 내 진료실에는 먼 길을 오신 어르신들이 앉아 계신다.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때로는 새벽부터 움직여 서울까지 올라오셨다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말씀을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병원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인생을 맡기는 선택이 담겨있었기에

나는 한 분 한 분 꼼꼼히 질문하고 확인해야 했다.


어르신들의 통증은 엑스레이와 MRI 검사만으론 찍히지 않는다.

자녀 걱정, 먼저 떠난 배우자 이야기,

혼자 남은 집에서 보내는 긴 하루.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져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보았다.


그래서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치료보다 위로가 당장 필요한 환자에게

어떤 태도로 다가가느냐에 따라 환자의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아프다는 말을 나이 탓으로 넘기지 않는 태도,

쓸모없는 하소연으로 치부하지 않는 태도,

'고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먼저 묻는 태도.


마냥이쁜우리맘 활동은 잠시 멈췄지만,

내가 지키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저녁 늦게 진료실에서 앉아

수술 계획을 세우기 전, 먼저 이야기를 듣는다.

이 병원에 오신 그 길이 헛되지 않도록,

이곳에서만큼은 외면당하지 않도록.


바쁜 외래, 수술 일정이 끝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병동을 방문하면

언제나 밝게 웃으며 의사 아들을 반겨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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