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가 안 되는데요?

별일 아닌 별일

by 모래알




"카드가 안 되는데요?"

시장 생선가게에서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내게 말했다.

방금까지 썼는데 어찌 된 일일까? 난감했다. 안 된다는 카드를 받아 들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내 장바구니로 들어가 버린 오징어와 고등어를 다시 빼려고 했다.

"집에 가서 계좌 이체하세요."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다른 손님 생선을 손질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녜요, 제가 집에 가서 지갑을 가지고 올게요. 여기 잠깐 두시면 금방 오겠습니다."

나는 오징어와 고등어 봉지를 꺼내며 내려놓았다.

"아유! 뭐하러 또 나오세요. 괜찮아요."

하며 아들에게 계좌번호를 적어드리라며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럼 제 전화번호 적어드릴게요." 내가 말했다.

"아녜요, 안 적어도 돼요." 하며 또 자기 일을 했다.

아들은 나와 엄마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계좌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오는 듯했다.

카드가 안 된다면 창피하거나 화가 나거나 해야 할 듯한데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평온했다.

카드만 들고나간 걸 후회하거나 짜증도 날법한데 도대체 이 기분은 뭐지?


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단골집은 딱히 없고

시장 상인이 자주 가는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지도 않아서

아는 체를 하며 물건을 산 적이 없다. 나의 지인은 상인이 기억할 정도로 붙임성이 좋은데 나는 그 지인과 함께 시장 보는 일이 많아도 처음 방문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나의 무엇을 보고 집에 가서 계좌 이체하라는 말을 했을까?

코로나로 모두가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얼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계좌이체를 하면서 보내는 이름에 '오징어와 고등어'라고 적었다.

보내고 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일을 만나는 친구들에게 민담처럼 들려주었다.

대수롭지 않게 듣는 친구도 있었고, 요즘 그런 사람 드물다며 공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 일은 다른 이에게 별일이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별일이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시장을 자주 간다. 하지만 생선가게에 가서

'전에 너무 감사했어요.' 하고 말하지 않는다.

아주머니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생선을 사야 하면 당연히 그 생선가게로 가고, 생선을 사지 않을 때는

지나는 길에 생선가게를 한번 볼뿐이다.

'바쁘시네.' 하며 속으로 인사한다.

우린 서로를 모르고 살았지만 알 것도 같고 굳이 아는 체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늘 시장에 가니까.


모래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