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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 Feb 02. 2023

언니에 대하여

민정언니를 만나고


 코로나로 대학교 강의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을 맞이할 때 졸업반이 되었다. 학점도 많이 남지 않은 4학년 2학기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전공 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신청했고 그 시기의 나는 매일 아침 학교가 아닌 잠실로 향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에, 취업 시장에 내세울 스펙이 변변치 않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우리는 예닐곱 명씩 조를 이뤄 함께 교육을 듣거나 조별 과제를 했다. 거기서 민정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눈을 빛내며 늘 앞자리에 앉아 열성적으로 수업을 들었다. 강사가 하는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노트에 열심히 필기했다. 기업과 협약을 맺은 취업 연계 프로그램이었기에 강사는 실무진들 위주였으나, 대충 시간만 채우고 가려는 듯한 속 빈 강의에 과연 그렇게 받아 적을 만한 내용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와- 나 이거 처음 먹어봐“

“와- 나 이거 처음 해봐”

“와- 나 여기 처음 와봐”


 무슨 처음이 그렇게 많은지 민정언니는 여기저기서 처음을 남발했다. 교육이 막바지를 향해 갈 때쯤, 조별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해 조원들과 매일 만나던 때였다. 언니는 꽤 시설이 좋은 스터디룸에 갔을 때, 트위터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에 갔을 때뿐만 아니라 강남 일대나 성수동, 심지어 한강 노들섬에 갔을 때조차 외국에 온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별다른 게 없는데도 뭐가 그리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여태 이런 것들도 안 해보고 어디서 뭘 하고 산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언니, 언니는 뭐가 그렇게 처음이 많아?”

“그러게. 맨날 갔던 곳만 가 버릇해서 그런가 봐. 서울은 처음이라 다 새로워”


 민정언니 고향이 인천이라고 했던가. 대학교는 재수해서 들어간 충북 어딘가에 있는 사립대를 나왔다고 들은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구들이나 애인이랑 서울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추천해서 간 맛집이나 분위기가 좋다고 한 장소에서 무조건적인 긍정 리액션을 보여주는 언니가 내심 좋았다. 입을 ‘와-’ 하고 벌리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처음’을 말하는 언니에게 더 좋은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 취업 교육 프로그램도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각자 지원한 회사로 열심히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이 회사는 사옥이나 사람들 분위기가 어떻더라, 그 회사에 우리 학교 선배가 있는데 오지 말라더라, 거기 면접관 태도가 꼰대라 회사 꼬라지 뻔히 보인다더라. 조원들과 서로의 면접썰을 푸는 날이 이어지다가 언니와 나는 각자에게 잘 맞는 곳으로 각각 취업했다. 축배를 들기 위해 처음으로 언니네 집에 초대받았던 날에는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언니네 집에 도착했다.


“언니, 이거 체스야? 언니 체스 할 줄 알아?”

“언니, 이거 언니가 그린 거야? 이거 그거지, 오일 파스텔?”

“언니, 무슨 책이 이렇게 많아? 와 ‘코스모스’! 언니 이거 읽었어?”


 언니의 집에는 한때 유행했던 취미를 위한 도구들과 어디서 익히 들어는 봤지만 읽지는 않은 책들, 그리고 예쁜 그릇이 많았다. 그 집은 뭐랄까. 모든 게 조화롭지는 않지만 딱히 어긋나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김민정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들어온 것 같았다. 독특한 무언가들이 끊임없이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따뜻하고 포근한 소용돌이. 언니는 내가 언니의 물건들을 궁금해할 때마다 약간 부끄러운 듯 주저하면서도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체스는 넷플릭스에서 ‘퀸스 갬빗’을 보고 관심이 생겨 당근마켓 거래로 저렴하게 샀다며, 오일 파스텔은 가끔 다른 친구네 집에 들고 가서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며, 책은 대학생 때부터 흥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를 한참 앞질렀다며. 들뜬 듯이 설명해 주었고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언니의 취향들과 새로운 모습에 무한 긍정 리액션을 보냈다.


“와 언니 진짜 재밌게 산다. 나는 그동안 이런 취미도 하나 없이 재미없게 살았네”

“왜, 넌 좋은 데 많이 알고 있잖아”

“언니 또 해보고 싶은 건 없어?”

“음, 수영. 올해는 수영 배워보고 싶어”

“어 나도! 바닷가에서 서핑도 해보고 싶어!”

“퇴근하고 같이 운동 삼아 수영 배울래?”

“좋아!”


 좋은 곳에 더 많이 데려가 주고 싶었던 민정언니는 이미 그 안을 좋은 것들로 꽉꽉 채운 것 같았다. 언니는 마냥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역시 언니는 언니다 그런 건가. 주책없이 몽글해지는 마음을 간신히 누르고 언니와 맥주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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