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완전히 잃기 전에 지켜야 할 것들
요즘 나의 아침은 여러 알약을 챙겨 먹는 일로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놓아둔 물 한 잔과 함께 혈압약, 영양제, 그리고 며칠 전부터 새로 추가된 탈모약까지.
이 작은 알약들이 내 몸을 지켜준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탈모약은 그 씁쓸함의 농도를 더 짙게 만든다. '이젠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현실을 아주 작은 알약 하나가 묵직하게 던져주는 것만 같아서다.
거울을 보면 세월의 흔적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마의 주름, 눈가엔 지난 세월의 웃음이 남긴 자글자글한 미소 주름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건 역시 머리카락이다.
샴푸를 하고 손으로 머리를 빗을 때마다 한 움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 텅 빈 손바닥 위로 내 청춘이 뭉텅이로 사라져 버린 듯한 상실감에 휩싸이곤 한다.
그 작은 머리카락들이 무겁게 느껴지는 건, 단지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잃어버리고 있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다.
며칠 전, 탈모약을 처방해 준 의사 선생님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머리카락이 다 빠진 후에 드시는 건 의미가 없어요. 아직 남아있을 때 꾸준히 관리하셔야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단순히 의학적인 조언을 넘어,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탈모약은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주는 기적이 아니라, 지금 내게 남아있는 것을 지켜내는 노력이었다.
이 원리는 비단 머리카락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득 내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되었다. 건강도, 친구 관계도, 가족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건강을 완전히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뼈저리게 느낀다.
마치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았을 때 탈모약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탈모약은 내게 '미리미리'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다.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작은 균열이라도 생겼을 때부터 세심하게 관리하는 지혜.
건강에 작은 이상 신호가 올 때마다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잊지 않고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고, 서먹해진 부모님께 먼저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이 모든 것이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노력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지키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더 지치고 힘들어질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놓아주어야 하는 것들이 생긴다.
젊은 날의 무모했던 패기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순진함 같은 것들. 그것들은 이제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오늘 아침, 탈모약은 내게 두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는 '아직 남아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고, 둘째는 '보내야 할 것을 깨끗이 보내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진짜 어른의 지혜가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매일 아침 탈모약을 먹으며, 이 깨달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텅 빈 손바닥에 남은 머리카락을 보며 슬퍼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남아있는 모든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주는 진짜 선물이자, 내가 56년의 삶을 통해 배운 값진 인생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