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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한Meehan Jan 19. 2020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엄마와 딸이 친구가 되는 과정

지난해 말, 영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갔다가 이슬아 작가를 만났다. 그때 샘플로 받은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고 책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딸이 돈을 벌기 위해 누드모델을 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준비할 게 뭐가 있느냐고 물어봐 줄 수 있는 엄마가 몇 명이나 될까. 방임주의는 자칫하면 방치로도 느껴질 수 있는데, 이슬아 작가가 자라온 그 자유롭고도, 외로웠을 환경이 궁금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공감 포인트가 많지 않아서 오히려 의외였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나와 우리 엄마는 살면서 이렇다 할 감정 다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가족이란게 부대끼며 살다 보면 불가피한 충돌이 있기 마련인데, 나와 엄마는 그럴만한 일이 없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책 속 복희의 어린 시절보다 거칠지 않았고, 나는 이슬아 작가처럼 자의식이 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엄마는 내게 우아한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고, 나는 엄마의 예상 범주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니 어쩌면 그래서, 엄마에게 섭섭했던 적이 있었다. 어떠한 이야기 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늘 그래왔듯이, 당신을 닮아 차가운 나의 성격을 조금 나무라던 중이었을 것 같다. 엄마는 노후에 경제적 도움이 필요해지는 일이 생기면 나에게는 부탁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빠에게는 별 어려움 없이 말을 꺼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니라고. 나는 엄마와의 관계를 되돌아보았다. 아무런 문제없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견고하지 않았던 걸까. 일부러 차가운 말을 내뱉으며 위악을 떠는 나를 엄마가 이해해주지 못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서운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후로 나는 나에 대한 엄마의 평가가 달라지기를 바라며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야기도 더 잘 들어주고, 오빠가 하는 것처럼 나갔다 들어올 때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간식이나 선물을 사 오고는 했다.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며 우리의 관계가 ‘드디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내가 잠든 사이에 오빠와 하는 대화를 엿듣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년 전 지나가듯이 나에게 했던, 나에게 상처를 안겼던 그 말을 엄마는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밤 눈물을 쏟고는 그 후로 엄마와의 관계 개선을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다. 아빠와는 조금 어색하고 부딪치는 면이 꽤 많았다. 짜증도 내고 불평도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잘 맞는 친구 같은 모녀 사이라고 자부했었는데. 그 믿음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와 나는 친구 같은 모녀 사이가 맞다. 옷도 같이 입고, 자주 데이트를 해서가 아니다. 엄마는 나를 대하면서 한 번도 권위를 세운 적이 없었다. 가끔은 내가 엄마인 것처럼 잔소리도 하고 조언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다. 여전히 싸울 일은 없다. 엄마에게 잘 보이기를 포기하고 나니 사이가 더 편해진 것 같다. 엄마는 내가 어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아침에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나고, 성적으로 닦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했던, 알아서 취직하고 알아서 퇴사도 하는, 손이 많이 가지 않았던 딸이 어려웠을 거라고. 지금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엄마는 늙어가고, 나는 어른이 되고 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여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미래를 그려볼 때 종종 엄마의 모습에 빗대어 보았다. 측은지심. 존경심. 엄마를 떨어뜨려 생각하는 게 오히려 불가능했으므로,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가 많았다. 엄마가 해왔던 일 한두 가지를 도맡아서 하면서 점점 엄마의 마음으로 집안 전체를 챙기게 되었다. 어떤 행동이 엄마를 힘들게 하는지, 어떤 행동이 엄마를 조금 편하게 하는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얼굴이 되어갔다.


이슬아 작가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고 엄마,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간단한 그림, 짤막한 글, 그리고 "엄마"라는 단어만으로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그런 책이었다. 엄마는 요즘 부쩍 “우리 딸이 최고”라는 말을 많이 한다. 장난스레 건네는 말 한마디에 진심이 묻어난다. 그랬다. 엄마는 말 잘 듣는 딸보다, 그저 당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속 썩이지 않는 게 최대의 효도라고 생각한 게 부끄러울 만큼, 나는 엄마의 외로움을 처절하게도 이해해버렸다. 오래전, 딸을 믿지 못했던 엄마와, 배신감에 휩싸였던 딸은 이제 없다. 여자 둘. 외모도 체형도 비슷한, 이제는 같이 나이 들고 있는 여자 둘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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