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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한Meehan Dec 01. 2019

보통여자 보통운동

여자들의 운동이야기

<보통여자 보통운동>, 한참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에 우연히 만난 책이었고, 그 제목에 이끌려 오래 생각하지 않고 골랐다. 제목 그대로 보통의 여자들이 보통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게 왜 이야깃거리가 되느냐하면, 여자들이 운동을 대하는 태도가 남자들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들의 고충 같은 거는 함부로 얘기할 수 없지만, 여자들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너무 한결같아 마음이 아프다. 내 주위를 잠깐만 둘러보아도 운동의 필요성을 외치는 여자들 중 상당수가 다이어트, 그러니까 체중 감량이나 마른 몸을 원해서 운동을 시작한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이고, 내 눈에는 그들 모두가 이미 충분히 예쁜 것처럼, 간혹가다 내게도 다이어트할 필요 없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여자의 이상적인 몸에 대한 기준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우리는 아직도 악의 없는 외모 평가를 매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이 사회가 만들어 낸 보통의 여자들이다. 


나도 어릴 적에는 "살만 빼면 예쁘겠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내가 예쁘다고 하는 말이었으니까. 심지어 어떤 오빠는 내게 살만 빼면 프롬 (학년말 무도회) 파트너로 데려갈 텐데 아쉽다는 말을 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네가?"하며 비웃고 말았지만 그런 평가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말들이, 그런 시선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여자들을 운동의 늪으로 빠뜨린다. 건강을 챙기는 운동은 좋다. 즐겁기 위한 취미생활이라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살을 빼야 한다는 목적으로, 더 예뻐져야 한다는 목적으로 하는 그런 운동; 자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평가에 떠밀려서 시작하는 운동은 그 자체로 해롭다. 


<보통여자 보통운동>에서 소개한 10명의 운동열정가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다.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가 육체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다이어트를 생각했지만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해당 운동을 더 잘 하는 몸이 되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맞이하지 못한 경지인데 새삼 대단하다. 내 운동의 목적이 체중 감량에서 11자 복근으로 바뀐 건 정말 오래되지 않은 변화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발레를 배워보고 싶은데 발레복을 입은 모습이 신경 쓰여서 살을 빼고 나서 시작하겠다는 친구,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게 부끄럽다는 친구 등 보통의 여자들은 이렇게나 생각이 많다. 그렇지만 살을 빼는 건 어디 쉬운가?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당부한다. "아름답지 않다는 원망과, 줄여야 한다는 강박에만 익숙했던 내 몸으로 나는 잘하지 못하지만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자고.


더불어 또 다른 진입장벽은 운동의 종류에 따라 빈도는 다르지만, 피할 수 없는 신체 접촉이다. 책 속 스윙댄스 열정가는 필요 이상으로 신체 부위를 더듬는 파트너 댄서에 대한 이야기를, 주짓수 열정가는 필연적으로 남자들과 몸을 격렬하게 섞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신체 접촉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 역시 여자 강사가 있는 수영장을 찾아갔고, PT를 받을 때도 여자 선생님을 선호했다. 병원을 가도 여자 의사 선생님이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는데,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운동에서는 당연하다. 


운동에 빠진 사람들은 하루 종일 운동에 대한 얘기만 할 수도 있다. 제일 가까이에는 남자친구가 그러한데, 일하는 시간이 길고 가끔은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며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퇴근 후에는 꼭 크로스핏 박스에 간다. 피곤해서 박스에 가지 않는다고 하는 날에는 집에 와서 혼자 운동을 한다. 크로스핏을 하면서 유연성에 부족함을 느꼈다며 요가를 배우고 싶어 하고, 최근에는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물 공포증을 무릅쓰고 수영도 배우고 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운동을 할 수 있게 식단도 조절하고, 신체의 변화에 뿌듯해한다. 내가 어떤 신체 부위의 고통을 호소하면 어김없이 관련 운동을 찾아준다. 내가 가끔, 아니! 공감해달라고! 하며 불만을 내비칠 수밖에 없게 모든 솔루션을 운동에서 찾는다. 아마도 몸의 변화나 기술의 변화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욱 끊기 힘든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듯 누구나 운동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여자라면 할 말이 더 많다". 스윙댄스는 2명이 리더와 팔로워라는 포지션으로 나누어 각자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리더"는 통상적으로 남자가 맡는다. 이성관계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매너를 기반으로 한 댄스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남자가 리더, 여자는 팔로워의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스윙댄스 열정가는 이제 리딩도 배우고 있다. 불가능한 게 아니기 때문에. 


주짓수 열정가와 복싱 열정가 그리고 수영 열정가는 남자를 이기는 순간의 희열에 대해 말한다. 연습 중 여자와 맞붙게 되면 은근히 무시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이기고 나면 자신감도 더 붙는다고. 바로 이게 내가 주짓수를  배울까 생각 중인 이유이다.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운동을 배우고 싶어서. 호신술이라는 명목에서이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몸싸움으로 남자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위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를 우습게 보면 내던져버릴 거야!-하는.


달리기 열정가는 일과 육아, 집안일 그리고 운동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어느 날은 아이가 서운해할 것을 알면서도 달리기를 나가기도 한다. 아이 볼 시간을 쪼개 운동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일까? 그런데 엄마한테도 인생이 있다는 걸 애한테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흔한_엄마의_고민되시겠다. 책 속 열정가는 일, 육아, 집안일, 운동 중 집안일을 포기했다. 일과 취미를 포기하게 되면 그건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고민을 하기 싫어서 내 미래에서 육아를 없앴다.


내가 나름 꾸준히 했던 운동은 발레, PT, 달리기, 그리고 수영이 있다. 발레는 1년을 채우고 그만두었다. 반복적인 동작과 더딘 실력 향상이 주된 이유였다. 1년 동안은 재미있었지만 그 후에는 재미가 없어져서 노력하지 않았다. 1년을 배우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조금 아쉬웠는데 요가 수업에서 조금 덕을 봤다. 조금 더 유연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책 속 발레 열정가도 언급했지만 발레는 오히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더 심해지는 운동이라는 느낌이 든다. 발레 동작을 잘 하려면 몸이 가벼워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발레리나들도 강사님도 수강생들도 너무 말랐다. 나는 날씬한 다른 수강생을 보며 다이어트에 더 힘을 쓰고, 또 그런 나를 보며 다른 수강생들도 몸매 관리를 하고, 어떻게 보면 악순환이라고 보이는 관계였다. 


PT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데 혼자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시작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재미있었다.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 같지 않아서 그 부분에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았고, 느리기는 했지만 시키는 대로 하면 결과가 나왔다. 동작을 배워놓으면 집에서 혼자도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어렵다. 이것도 역시 1년 정도를 했고 몇 개월 쉬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다. 책 속에 나오는 스트롱 퍼스트라는 종목에 관심이 갔다. 케틀벨, 바벨, 풀업 세 개의 종목이 포함된 운동인데, 크로스핏과 더불어서 나중을 기약했다. 근력을 더 키우고 나면 시도해보고 싶다.


달리기는 PT를 하는 도중 조금 더 가까운 목표를 가지고 운동을 하고 싶어서 마라톤을 신청하면서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나에게 굴욕을 안겨준 종목이라 걱정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아드레날린이 나온다는 게 이런 뜻인가 하고 처음 느꼈다. 기분이 좋다는 느낌과는 또 다른, 심장의 쿵쾅거림에서 오는 거친 떨림이 있었다. 달리는 중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힘들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하루 종일 짐처럼 이고 있었던 잡생각이 없어진다. 덤벨 운동이나 스퀏같은 근력운동 중에는 오히려 생각이 운동을 방해할 때가 있는데 달리기는 따로 맞는 동작을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없이 단번에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그 후 몇 번인가 더 마라톤에 참가했지만 무릎에 이상이 생겨서 계속하지 못했다. 지금도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잠깐씩 뛰러 나가는데 무리가 가는 것 같아서 걷기와 병행한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분함을 느낄 정도로 움직이는 걸 대단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수영은 달리기를 못하게 되면서 다른 유산소 운동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체력 소모가 엄청나서 한 시간 수업 후에 굉장히 뿌듯함을 느꼈다. 아마 개강 때문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번 운동을 꾸준히 하고 나니까 이제는 아무 운동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지금도 아닌데. 가능하다면 PT는 계속 받고 싶다. 그리고 주짓수를 배울 예정이고, 팀 운동도 해보고 싶다. 운동팀이 가진 끈끈한 유대감을 동경하는데 나는 천성이 지나치게 예의 차리는 성격이라 내가 피해줄 것 같은 팀운동은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직은 나의 움직임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게 무섭지만 지금보다 더 자신감이 생기고 나면 크로스핏도 해보고 싶고, 여자 야구팀 같은 것도 들고 싶다. 나도 운동에 관해서라면 꽤나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한 분야의 준전문가 정도에 오르기까지는 이정도로 말을 아껴야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쩌다 5년씩이나 꼬박꼬박 운동하는 사람으로 돌변하게 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신경도 없는 편에 가깝다. 체육시간도 싫어했다. 걷는 것도 안 좋아한다. 배움도 굉장히 느리다. 처음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한데, 뭘 못하면 그냥 화만 나서 엎을 생각만 하는 그릇 작은 인간이다. 그런데 어쩌다 운동 한 번 해봤다고 하던 걸 멈추니까 지난 30년간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죄책감이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이제 숫자와 싸우지 않는다. 더 강해질 수 있는데도 포기하려고 하는 나와 싸운다



-그러나 주어진 몸을 긍정하기까지 거친 과정과 순서 또한 같았다는 것은 마음이 좀 복잡해지는 일이다. 모두가 운동의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고 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루기 전까지 꽤 긴 시간 시달려왔던 체중 강박을 이야기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라고 체념해왔던, 그래서 아름답지 않다는 원망과 줄여야 한다는 강박에만 익숙했던 내 몸으로 나는 잘하지 못하지만 잘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한다. 요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도 하며 사랑도 한다.



-아이 볼 시간을 쪼개 운동하는 나는 이기적인 엄마일까. 그런데 엄마한테도 인생이 있다는 걸 애한테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오래 걸어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잡생각이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잡념도 사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뛰기 시작하니 머릿속이 텅 빈다. 최근 몇 년간 누려본 적 없는 시간이고, 이제야 "아무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몇십 분"의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필요한 시간이었다.



-마른 몸에 대한 동경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렇다면 대안으로 근육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권장하는 것도 과연 당연할까. 그런 몸을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운동하지 않으며, 미학이나 예술에 몰입하는 삶을 살지도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그런 우리가 더 많은 시간 버텨야 하는 곳은 학원도 아니고 무대도 아닌 사무실이다. 극단적으로 마른 몸도 건강한 근육도 만들기 어려운 현장에서 우리는 일하면서 산다.



-작품 속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팔굽혀펴기를 하던 장면을 최지은은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위대한 사람까지는 못되더라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계속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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