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뿌연 안갯속에서 수많은 욕구만 가득했던 멍청이였다. 똑똑하진 않았지만, 꽤나 패기 있었고, 겁은 많았지만, 나름 추진력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방향성이 뚜렷하지 못했다. 이는 정말 비효율적인 삶을 살았다는 의미다. 만약 내가 어디론가 냅다 달리고 싶은 욕망이 없었다면 그저 돛 없는 배처럼 부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그게 여러모로 나았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발 없는 새처럼 항상 어디론가 날아갔다. 목적 없는 비행은 자유로웠으나, 동시에 불안함도 클 수밖에 없었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타락천사는 왕가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원래 중경삼림은 세 가지 이야기로 제작될 예정이었으나, 어떤 이유였는지 중경삼림은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분리된 하나의 이야기가 타락천사로 만들어졌다. 타락천사 또한 중경삼림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를 보면 중경삼림의 코드와 여러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마치 자기 자신을 오마주 하는 것처럼. 그러나 중경삼림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의 순서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경삼림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분명 다른 영화라는 것을 감독이 말하는 것 같다. 캐릭터 설정을 봤을 때에도 중경삼림은 두 경찰의 이야기지만 타락천사는 킬러와 한량(영화 내에서 전과자)이라는 두 범법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점이 대조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조가 보다 더 끈적하고 복잡해졌다는 점이 그러하다. 이는 아무래도 감독이 중경삼림보다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타락천사는 중경삼림2는 아니지만 분명 후속작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보통의 후속작의 개념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두 영화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거나, 세계관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곳곳에 미장센들로 이스터에그 같은 코드들을 심어 놓았지만, 큰 맥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후속작이라고 느껴지게 되는 부분은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영화의 톤 앤 매너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도시, 청춘, 사랑과 이별이라는 영화를 아우르는 키워드가 같다는 점이다. 마지막 하나는 바로 왕가위다. 무슨 뜻이냐면 감독이 당시 생각하고 있는 개념과 감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즉, 중경삼림을 제작하면서 들었던 사유가 더 복잡해지고 확장되고 깊어져 타락천사로 이어진다. 이는 기존의 후속작 개념과는 다른, 어찌 보면 미술작업과 같은 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단순 이야기의 연장선이 아닌 창작자의 생각의 연장선.
두 영화 모두 느슨한 스토리로 비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이야기의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매력적인 영화인 건 분명하다. 감독이 짜놓은 타임라인 위에 수 놓인 화려한 화면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엔딩 크레딧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뭔지 모를 은은한 여운이 느껴진다. 마치 정신없이 살아온 20대를 지금 와서 돌이켜 보는 기분.
만약 내게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중 굳이 굳이 굳이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타락천사를 선택할까 한다.
선택의 이유들이 지금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맴돌고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더 진한 방황과 허세가 현실의 청춘가 더 닮아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나의 20대와 닮아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