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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쳇 베이커의 빗물처럼

by 무긴이

정면 차창 너머로 산 하나가 보인다. 북한산은 서쪽(고양)에서 보는 경관과 동쪽(서울 도봉, 의정부)에서 보는 경관이 다르다고 한다. 서쪽은 돌산으로 이뤄져 있고, 동쪽은 나무들이 주로 이뤄져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북한산 동쪽에서도 살았었고, 현재는 서쪽에서 살고 있지만 말이다. 돌 갑옷을 두르든, 나무 코트를 뽐내든 내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어느 날부터 거리에 큰 건물들이 드러 서고 있다. 산은 거대한 파란 비닐과 철골, 시멘트 덩어리, 그리고 괴수 같은 크레인들에 둘러 쌓여있다. 그런 모습들이 서운하다거나, 아쉬운 감정이 들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산을 가리는 것을 명예처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몇몇의 사람들이겠지만. 혹은 다수의 사람들.


난 아침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그 이유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인생에 몇 없는 명쾌한 답변을 해낼 수가 있다. 어제 먹었던 저녁 식사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의 엄청난 허기짐 때문이리라. 나는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다. 거기엔 계란 2개와 맥주, 물, 말라버린 멸치 볶음뿐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작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마음에 드는 식당 찾기 위한 여정 중에 있는 것이다. 왼쪽엔 쇼핑센터가 거대한 생물처럼 웅크리고 있다. 1차선은 그 생물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정어리 떼로 웅성거리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문 기나긴 차량 행렬이다. 긴 줄의 끝에는 다양한 세계의 음식들이 있다. 타코, 쌀국수, 파스타, 카레, 불고기, 떡볶이, 초밥, 세계 음식이 모두 모여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몹시 배가 고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정어리가 될 순 없다. 긴 줄을 지나니, 두 개의 봉우리를 뽐내고 있는 노란 간판이 보였다.


‘Mcdonald’


“네” 스피커 넘어 여성인 듯한 점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빅맥 세트 하나 주시는데, 콜라는 제로로 주세요.”

“…”

“빅.맥.세.트. 하나 부탁드려요. 콜라는 제.로.로 변경해 주세요”


점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오류가 생긴 것 같았지만, 문 밖을 나서서 카운터 부스까지 걸어가는 건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백미러를 보니 운전석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이 보였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내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실루엣이었다.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운전석에서 내리려는 찰나에 기계음과 함께 점원의 목소리가 등장했다.


“ㅇㅏ,그그, ㅈ,조ㅣ, 죄송합니다. 마이크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빅맥 세트 하나에 제로 콜라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앞으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험난했던 주문과 다르게 음식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빅맥 세트가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건네어 주는 점원-주문 받은 점원과 다른 점원일 것이다-도 연거푸 사과를 했다. 여러 번의 사과. 고개를 조아리며 주는 햄버거를 받으니 괜히 빅맥을 먹겠다고 결정한 나 자신이 잘못된 것 같았다. 혹은 어제 저녁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앤 위산 탓이라던가. 그렇지만 배가 아플 정도의 허기짐은 그 어떠한 상념도 이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새로 생긴 도시들의 특징들 중 하나는 공터가 많다는 것이다. 타운 중심지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있다. 허나 반짝이는 건물들 사이를 조금만 벗어나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다. 나는 다른 차원에서 햄버거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바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허기짐이 사라지자 허무함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고통이란 사람을 참으로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띠링.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액정을 보니 광고 문자였다.


‘(광고) 봄맞이 의류 브랜드 신상품 80% SALE’

80% 할인이라니, 이벤트 전에는 얼마를 남겨 먹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광고) 지금 한창 잘 나가는 햄버거, 궁금하죠? 버거킹이 함께 합니다.’


‘(광고) 뮤직 스트리밍이 세 달에 백 원? 3천 캐시가 도착했습니다!’


‘(광고) 예기치 못한 암진단에도 면책/감액기간 없는 암보험!’


‘[Web 발신] 숫자 7을 말해보세요. 곧 상승할 2개 종목 드립니다.’


방금 먹었던 빅맥 세트가 울렁거린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는 어지럽다. 평소에 연락이라고는 광고성 메시지가 전부인 것은 일상다반사다만, 동시에 여러 개가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긋지긋한 고도자본주의사회. 카악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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