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혓바닥

침묵하지 못하는 성격

by 무긴이

창문 너머 빨간 자동차가 지나갔다. 교차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적당한 속도의 빨간 덩어리가 스쳤다. 그 광경이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새빨간 혓바닥이 입에서 탈출한 것처럼 보였다. 길쭉한 백미러에 고개를 내밀고 혀를 내밀어 보았다. 혀는 빨갛지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시멘트 바닥처럼 뿌옇다. 그럼 적어도 방금 지나간 혓바닥은 내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내 혓바닥이었어야 했다. 상처와 혼란만 주는 이딴 혓바닥을 잡아 두지 말았어야 했다.


언젠가 들었던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예전에 헤어짐은 적어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의미였다. 현재 그녀는 다른 행성에 있다. 사람들은 같은 우주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라 말했지만, 그녀에게 내 말이 전달되는 것만 해도 몇 광년이 걸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공상 같이 느껴지겠지만, 누군가에겐 사실이고 참이고 현실이다. 그녀는 떠났다.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빛이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도 몇백 년은 걸리는 행성으로 떠났다. 몇백 년이라는 시간은 실감조차 나지 않는다.

우리 몸은 일 년이 지나면 피로가 빠져나오는 시간이 몇 배로 더디어진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면 피로 누적과 해소 능력이 더 옅어진다. 결국 몸에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고 피로만으로 가득하게 된다. 이제는 피로가 몸이 돼버리고 몸이 피로가 된다. 몇백 광년은 가늠조차 안 되는 시간이다. 일말의 상상조차.


창문 너머에는 회색 구름들이 무신경하게 뭉쳐있다. 그 앞에는 굵고 거친 붓으로 그은 것처럼 마른 가지들로 가득한 낮은 언덕이 칠해져 있다. 까칠해 보이는 구름들 뒤로 아침 햇살이 조심스럽게 비추고 있다. 묘한 풍경이었다. 구름에는 경계가 있을까? 모르겠다만 아침의 햇빛이 경계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어렴풋이 만들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경적 소리. 신호는 파란색이 되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갈 때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아갈 수 없었다. 휘발유는 충분했고 엑셀러레이터도 작동하지만 말이다. 파란 신호는 언젠가는 빨간 신호로 바뀔 것이다. 다시 파란 신호. 다시 빨간 신호. 그러나 돌아오는 빨간 신호는 과거와 똑같은 것이 아니다. 같아 보일 뿐 전혀 다른 빨간 신호다. 파란 신호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다. 정말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 입에서 혓바닥이 도망쳤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그 일은 나에게 일어났어야 했다. 거울에 다시 혓바닥을 내밀었다. 혀는 여전히 뿌옇고 흐릿했다. 창문 너머 회색 구름 뭉치처럼 경계가 있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코로 먼지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경적 소리. 나는 이번에도 누군가에게 혼란을 야기했다. 회색 구름 뭉치는 이미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빨간 신호. 파란 신호. 구름 뒤에 숨어있던 따뜻한 아침 햇살이 건조한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