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rsing with her apparition
(1)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육백 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도 하고, 명바이올리니스트로 화려하게 활약도 했지만, 오랜 세월 전혀 회고되지 않아 잊힌 과거의 인물이 되었어요. 그리고 1950년이 돼서야 재평가의 기회가 왔고, 특히 협주곡집 <사계>의 악보가 출판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죠. 죽음을 맞이하고 이백 년이 넘어서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떨치게 된 거예요.” 그녀는 급하게 흐르던 말을 잠깐 멈추어 세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백 년은 얼마나 긴 세월일까, 나는 이 년 후∙∙∙ 이 일 후∙∙∙, 아니, 두 시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전혀 회고 되지 않던 그의 영혼은 수많은 변수로 득실거리는 시간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몇 가지 퍼즐들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며,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강렬하게 뿌리를 내렸으리라. 무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에 형이상학적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리라. 물론 그것이 기뻐 마땅할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클래식을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물었다. 적당히 대꾸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뇨. 그저 어디선가 들었을 뿐이에요.” 그녀는 말했다.
“비발디라는 사람도, 재평가의 기회도, 영혼의 부흥도 별 관심이 없어요. 단지, 우연히 주웠던 정보를 뱉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백 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길었겠군요. 비발디에게는.”
“글쎄요. 영혼에는 시간이란 개념이 적용되지 않을 거 같군요. 시간은 사실 허상이라고 생각해요. 진실은 물리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죠. 사과나무에 열매가 맺고, 떨어지고, 썩어 사라지는 것처럼-이 또한 분자 구조가 변화할 뿐인 것이겠지만-. 영혼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닐 테죠. 어떠한 의지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수도 있어요. 혹은 물리적인 뇌가 인지한 의지가 남긴 잔여물 같은 것일 수도 있을 수도 있죠. 이백 년이든, 이천 년이든, 그들에게는 지금이자, 어제고, 내일이겠죠.”
역시나 마땅한 대꾸가 떠 오르지 않아 커피를 들고 창문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말은 심오한 덩어리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혼란을 야기한다. 아주 사소하게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그녀와 대화는 매번 이런 식이다. 어디선가 주워 온 정보가 올려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그녀의 주관적인 의견이 발라지고, 침묵으로 그 위를 덮는다. 마지막 순서에는 나도 일조를 하지만 말이다.
창문 밖에는 먹을 머금은 부드러운 붓으로 그은 듯이 능선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보다 가깝고 낮은 능선은 짙은 색으로, 그 뒤에 더 멀고 큰 산은 옅은 색이 칠해져 있었다. 산의 배경이 되는 하늘은 물이 빠진 손수건처럼 연한 하늘색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연하던지 구름과 하늘을 구분하기도 어려워 보일 정도다. 혹은 구름이 하늘에 적절하게 녹아 섞일 것일 수도 있다. 날카로운 겨울바람이 무색하게 하늘은 온화하고 따뜻해 보였다.
“인제 그만 일어나 봐야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요. 다음에는 제가 살 기회를 줘요. 매번 얻어먹는 것도 민망해요.”
“당신은 커피를 샀잖아요. 그리고 비발디의 이백 년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고.”
“그런 건∙∙∙” 그녀는 작은 실소를 지었고, 바로 고개를 내려 좌우로 저었다.
“아무튼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제가 밥을 사겠어요. 당신이 커피를 사고 전혀 유용하지 않은 유별난 정보를 가져와요.”
나는 그녀가 가져오는 기묘한 정보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것은 자신이 없었지만, 그럭저럭 해보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연약하고 미미한 끄덕거림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나는 다시 창문 밖을 보았다. 능선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가 앉았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마시고 남긴 커피가 올려져 있었다. 머그잔과 그 안 테두리에 묻은 검은 선이 보였다. 식은 커피의 잔여물이 남긴 흔적. 나는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고 기지개를 켰다. 기차가 정차할 때 나는 소리 같은 한숨이 나왔다.
(2)
한숨. 긴장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쌓였을 때, 혹은 안도할 때 몰아 내쉬는 숨이라고 인터넷 사전에 나와 있다. 나도 대체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호흡을 위한 신체 기관 주변으로 압력을 가하는 ‘무언가’가 쌓여, 행위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답답하다고 느낄 것이다. 단단하지는 않지만, 견고한 그것들이 호흡을 막아선다. 거대한 벽처럼 둘러싼 ‘무언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서 숨을 들이고 내쉬어야 한다. 충족되지 않는 들숨, 그리고 내뱉는 무기력한 한숨. 견고한 그것들 사이, 아주 미세한 틈으로 밀려 나가는 숨결이다. 그런 한숨은 반복된다. 반복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을 알베르 카뮈와 프란츠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는 부조리의 잔여물이라 생각한다. 나(인간)와 세계라는 존재의 양립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는 형이상학적인 부조리로 인한 현상 같은 것이란 말이다. 주워 담을 수 없는 한숨을 모조리 모은다면, 열기구 몇 대는 거뜬히 띄워 올릴 것이리라. 성층권을 벗어날 정도로.
그녀는 떠났다. 이백 년만의 돌아온 비발디의 이름-혹은 영혼-에 대한 정보를 건네어 주고, 그녀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고, 반가움과 동시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곳이 그녀의 자리다. 잠깐의 일탈∙∙∙, 그녀의 자리 주변 사람들은 비발디의 영혼은 불사하고, 그녀가 제기하는 시간성에 눈곱만치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해가 지면 밤이 오는 것만큼 확고하게. 나는 그녀가 떠난 자리에 여전히 앉아 있다. 커피는 이미 동이 난 지 오래다. 심지어 카운터 데스크에 올려져 있는 물병에서 물을 두 잔이나 떠다 마셨다. 나도 이제 슬슬 이곳을 떠나야 한다. 언제까지나 먼 산과 하늘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갈 곳이 없다. 집을 가자니, 밀린 설거지에 망설여진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자니, 그들 또한 제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찬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매섭다. 둘러맨 목도리를 풀어 해쳐 머리를 내려칠 만큼. 아직 목적지는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바람을 맞으며 걷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혹은 덤덤한 낭만 정도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마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내가 걷고 있는 곳은 도시의 중심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스타일리쉬한 패션의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다. 분명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지만, 쿰쿰하거나, 어수선하지 않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무의미한 틈도 세련된 화분들이 놓여있고,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창문 밑 벽면에도 멋진 간판들이 달려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는 전혀 다른 세계 같다. 아니, 다른 세계라 해도 무방하다. 칼바람에도 거리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걸음은 걸음으로 이어졌다. 왼발 그리고 오른발. 무던하게 앞으로-혹은 옆으로- 나아가고 있다. 회색의 시멘트와 햇빛에 반짝이는 유리 건물들 사이로 붉은 벽돌의 건축물이 우두커니 서 있다. 유럽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벽돌의 교회다. 벽돌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뾰족한 쇠 원뿔로 모여, 끝자락에는 웅장한 십자가를 매달고 있다. 하늘에 닿아 구름을 가를 것만 같았다. 벽돌 교회 하단 부분은 썩 어울리지 않는 주차장 입구가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반질거리는 이질적인 입구다. 입구에는 촌스러운 색상 조합의 현수막이 달려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차별금지법 하나님의 뜻으로 막아냅시다.’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는 무엇일까, 건강한 것과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막아내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미래에는 차별을 지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법 하나를 못 막아서 교회에서 현수막까지 만들게 한 것일까.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 몽땅 엉망이다. 어수선함에 여유롭게 겨울바람을 가르던 걸음이 멈췄다. 고개의 갸웃거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목적지가 없어도 말이다. 한숨.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그들의 한숨이다. 한숨에 논리가 어디 있겠는가. 입김의 추상적인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뭉개지고 퍼지고 사라져가는 한숨이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