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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자화상

by 무긴이

가늘고 긴 비가 내리는 날이면, 창문 앞에 서서 눈알을 확인합니다. 오른쪽 눈알은 이쪽에, 왼쪽 눈알은 저쪽에 붙어있구나, 하고 말이죠. 하늘과 대지는 여러 빗방울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건 숙명 같은 것입니다. 태양이 있고 그 주변을 지구가 맴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땅에 발이 붙어있지요. 이것도 숙명이라면 그런 것일 겁니다. 제 숨은 창문에 연약하게 붙습니다.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만큼 얕고 나약하게 말이죠. 그러나 호흡이 떠난 자리에는 흐릿한 잔상이 남아있습니다. 하늘을 가리지만, 가려지지 않고, 땅에 붙어 있으려 하지만, 붙어있는 건 제 발바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랜전 일입니다. 저는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더랬죠. 당시에는 제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만, 돌이켜보니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죠. 마치 숙명 같은 일이었던 거죠. 처음부터 정해진 겁니다. 매주 일요일은 교회를 가는 것이다. 저는 생각보다 교회가 편했습니다. 사실은 학교보다 더 편했죠. 그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저를 알았죠. 저도 그들을 알았고요. 우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인사를 했었죠. 교회에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항상 어설픈 상상 놀이를 했었습니다. 바닥이 용암이라느니, 의자 두 개를 붙이고 설산에 있는 텐트라느니, 가끔은 경찰이 되어 친구를 쫒기도 하고, 범법자가 되어 도망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계셨죠.




저는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가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저를 알지 못합니다. 저 또한 그들을 알지 못하죠. 그곳엔 더 이상 놀이를 함께 할 친구가 없습니다. 그곳엔 더 이상 용암과 설산, 그리고 선과 악도 없죠. 지금은 그렇습니다. 나의 하나님도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아직도 창문 앞에서 앉아 있습니다. 이곳에선 하늘의 한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지의 한 부분도 볼 수 있지요. 제 앞에는 높은 아파트가 서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또 아파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낮은 언덕이 있습니다. 언덕 위엔 앙상한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있지요. 분명 푸르른 생기가 넘치던 나무였을 텐데, 지금은 검은 뼈가지 뿐입니다. 아파트 숲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거기에는 대형 쇼핑센터가 있을 겁니다. 아주 거대한 건물이죠. 몇만 년이 지나도 인류가 살아있다면, 아마 그곳을 노아의 방주로 착각할 것입니다. 아주 넓고 크죠. 제가 앉아 있는 창문에는 그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방주가 저 아파트 벽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요. 왜냐하면 제가 직접 가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새 옷을 사고, 먹을거리를 장을 보고, 생활용품을 샀습니다. 필요한 것들-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사서 매번 집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 항상 있을 수는 없는 걸까요. 그 방주에 잠깐 방문하는 수 밖에 없는 걸까요. 세상의 종말이 다가올 때는 방주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요. 저는 방주에 발을 올릴 자격이 있을까요.




공기가 차갔습니다. 찬 바람이 제 몸을 둘러 감쌉니다.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몸은 오들오들 떨리고, 코는 막혀서,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입으로 호흡을 이어가니, 목이 건조해져 따갑습니다. 밖은 분명 빗물로 가득한데요. 저는 건조합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세상과 동떨어진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렇지만 저 이외에 다른 모든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죠. 후후, 농입니다. 어설프고 재미없는 농담이었습니다. 철부지 아이의 어이없는 신세 한탄 같은 것이죠.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곳에 있고 싶어 발버둥 치지만,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르륵 떨어집니다. 하나의 빗방울만의 일이 아닙니다. 모든 빗방울이 그렇습니다. 숙명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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