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스킨 냄새

by 무긴이

“결국 그 여자가 사람이었는지, 유령이었는지 모르게 된 거죠.”


남자는 이야기가 끝났다는 의미로 입을 일자로 닫았다. 사람들은 손뼉을 쳤고, 양손으로 자신들의 팔을 연신 비볐다. 누군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보편적인 반응들이 수그러들고 침묵이 찾아왔다. 여운은 아직도 어두운 방 안을 어수선하게 맴돌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으쓱한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정말 기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남녀 대여섯 명이 촛불 하나를 두고 앉아 이야기를 마치고, 손뼉을 치고, 헛기침을 하는 상황이라니. 우리는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들이 겪었던 비현실적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술도 없이 커피와 물을 마시며 초현실적이고 영적인 순간들을 주고받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화자는 나름의 연출과 연기를 곁들여 정성을 다해 경험을 전달했다. 그중에도 헛기침으로 마침표를 찍은 그의 연기는 일품이라 해도 무방했다. 새벽 골목길에 마주친 어떤 여자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정말 기이하고 소름 돋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구체적인 형태는 금세 날아갔다.-

나는 어쩌다가 이들과 함께하게 된 것일까. 휴일에 하릴없이 집 안을 뒹굴고 있었고, 때마침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함께 공원을 산책했고, 몇십 그루의 나무들을 지날 때쯤 자신과 함께 모임에 같이 가겠냐는 권유에 응한 것뿐이었다. 내게는 오히려 일련의 순간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안이 벙벙하게 수많은 기담이 흐르는 사이, 어느새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지금의 기분을 말할까 했다.-당신들을 만난 지금이 가장 비현실적이야-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그 무엇보다 진지했다. 그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초자연적인 경험이 있다는 것에 확신이 있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천천히 호흡을 되새기며 기억을 더듬어 봤다. 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내게 그런 상황이 있던 적이 있기나 할까. 그들은 -퍽 고맙게도- 내가 적당한 이야기를 찾는 것을 차분히 기다려 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인내는 누군가에게 초조함이 될 수도 있다. 시소 같은 것이리라. 기다림은 무겁고 불안함은 가볍다. 불안함. 언젠가 내 안에 공백으로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다. 마음은 종일 발 없는 새처럼 정착하지 못했고, 심장은 자신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몇 번이고 떨어졌다. 그때를 생각하자 주변을 스치던 바람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다. 비열함과 비참함이 섞인 비릿한 냄새. 이들에게 건네줄 이야기 하나가 검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깊숙한 저수지에 무거운 바위를 묶어 던져 놓았던 기억이.


방의 한 면에는 일인용 침대가 있다. 그 옆 손에 닿는 거리에 빛바랜 회색 책상이 있다. 더 안쪽으로는 휘어진 빈 옷걸이들이 걸려있는 작은 장이 있다. 책상과 침대 사이는 겨우 사람 한 명이 서 있을 정도였다. 침대에 누우면 머리가 벽에 닿았다. 벽에는 낡은 벽지가 무심하게 붙어있다. 원래 연초록색과 -원래 흰색이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누런색의 줄무늬가 나란히 평행하는 패턴의 벽지다. 누워있는 자리 중간 벽에는 기분 나쁜 갈색의 얼룩이 있다. 그것은 마치 심연의 지하에서 뚫고 올라온 돌산 같은 모양이었다. 또렷한 테두리와 대비되는 흐릿한 내부의 돌산. 다행히 그곳에서 비위를 상하게 하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단지 이 방 자체 특유의 정체 모를 냄새가 눌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침대 위에서 어찌어찌 몸을 살짝 아래로 밀면 이번엔 발바닥이 벽이 닿았다. 발 위로 두 손을 포갠 크기의 창문이 달려있다. 분명 창이지만 그 너머에는 진정한 의미로써 바깥이 아닌, 우울한 형광등이 가득한 메타포적인 복도가 펼쳐져 있다. 복도에는 내가 누워있는 방이 여러 개가 늘어져 있다.

이곳의 벽은 지나치게 얇았다. 물론 휘날리는 천이나 바삭한 씬 크래커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벽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옆 방과 시각적으로 차단만 되어있다 뿐이지, 전화 통화하는 소리, 기침하는 소리, 코 고는 소리, 심지어 생리 현상의 선명함까지 모두 내 귀로-가끔은 오감을 향해- 넘어왔다. 이곳은 마치 네 면의 넓이가 연장만 된 ‘관’ 같았다. 사후세계와 불가피하게 연결된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불행을 연이어 결부시키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되도록 사실에 가깝게 말해야 맥락이 뚜렷해질 것이리라. 이곳은 중앙 냉방 시스템으로, 천장에 붙어 있는 고둥처럼 회전하는 모양의 둥근 구멍에서 에어컨디셔너의 바람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저녁 9시가 되면 에어컨디셔너가 일말의 여지도 없이 꺼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함이거나, 냉방병에 극도로 예민한 것일 수도 있으며, 여기 있는 모두를 찜통에 들어간 개구리로 만들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때마다 나는 중앙에 있는 ‘관리자’를 떠올렸다. 머리숱이 없고 말랐지만, 배가 볼록하게 나와서,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고 사무길 겸 방-그곳은 시원할 것이다.-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말이다. 그는 ‘우리’의 고통을 알 것이다. 그도 그 역할을 부여받기 전에는 여러 방 중 하나에 누워있을 터였다. 에어컨디셔너가 꺼진 여름밤은 포악한 열대야 탓에 원초적으로 변한다. 특히 더위도 더위지만, 이불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눅눅한 습기는 사방의 벽이 점점 조여오는 것만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혹은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날도 도시 위로 달이 떠오르자 어김없이 에어컨디셔너의 바람은 멈췄다. 적국의 교각을 망설임 없이 무너트리는 것처럼. 나는 아주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이곳을 벗어난다 해도 갈 곳이 없을뿐더러, 주머니 사정도 여의찮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결국 나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었다. 그녀와 이별, 어머니와 다툼, 무기력한 자본력, 빈곤한 성실성, 무심했던 운명・・・ 모두 ‘나’라는 존재로 인해 생긴 것들이다. 누굴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책임을 넘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적지근한 공기는 꽉 막힌 도로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비된 공기는 쿰쿰한 땀을 만들어 냈다. 식빵이 커피를 서서히 머금는 것처럼 땀은 이불에 스며들었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밀착시켰다. 일편의 틈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동영상들이 쉴 새 없이 재생되었다. 먹방, 브이로그, 코미디 클립, 누군가의 대화, 여행을 간 사람들, 웃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반짝이는 그 모든 것들. 나는 다른 세계와 연결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현실이었다. 누군가에겐 분명한 현실이었지만, 내게는 그저 가상의 이미지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세계에서 현실의 칼날은 절대로 무디지 않다. 불쾌한 촉감은 초점을 지속적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소환시켰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똑같은 방문들이 줄지어 있는 복도가 보였다. 복도의 칙칙한 색감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색깔을 죽이는 형광등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은 아득히 먼 이름 없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결국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눅눅한 침대에 다시 몸을 맡겼다. 그 순간 누군가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정확히 3번. 퉁- 퉁- 퉁-.


“문 좀 살살 닫읍시다” 남성이 고함을 쳤다.

“혼자 지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숨소리는 거칠었다. 며칠 동안 사냥감을 놓친 뿔난 짐승처럼.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딸깍. 먼지 덮인 서랍장이 열렸다. 그는 옆방의 남성이었다. 문과 벽에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목소리가 확실하게 그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이따금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했었다. 내용은 주로 공사 현장과 관련된 내용들이거나, 누군가의 험담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이곳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없지만, 문밖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서린 안갯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나보다 10살 정도 나이가 많고, 덩치는 두 배는 클 것이다.-노크 소리가 문의 윗부분에서 났다.- 얼굴은 태양에 의해 검게 탔을 것이고, 얼굴엔 굵은 주름들이 인상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기억과 상상에 유감을 표하는 바다.

심장이 작지만 뚜렷하게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얇은 문에 두꺼운 손이 닿아 나는 소리가 그 이유가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적군의 빈약한 군사력을 알리는 북소리 같았다. 전시 상황을 신속하게 알리기 위한 북소리. 요동치는 심장과 반대로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은 차갑게 흐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 나는 말했다.

끝말은 의도치 않게 흐려서 마침표는 공백 속에서 증발했다. 다행히 그는 더 이상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옆방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이 나왔다. 심장은 상황이 종료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인지했다. 나는 고시원에 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분노로 가득 찬 고함과 북소리를 들었다. 방 주변에 있는 누군가는 흐려진 끝말을 들었다. 그렇다. 나는 여기에 살고 있다.


예상대로 잠은 통 오질 않았다. 심장은 원래의 리듬으로 찾았지만, 열기는 쉽게 식질 않았다. 멈춰버린 에어컨디셔너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원한 방에 있을 머리가 벗겨진 관리자가 원망스러웠다. 아니다. 내 손을 떠나는 그 무엇도 잡아내질 못한 나 자신에게 화살 향해야 마땅하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그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인생이야’라고 아주 조그맣게 소리 내어 되풀이했다.

나는 잠에 들어야 했다. 첫 번째 이유는 출근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일체개고(一切皆苦)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곰팡내만 맴돌 뿐이었다. 눈덩이의 열기는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 박동에 맞춰 과장되게 진동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조심히 내뱉었다. 기분 나쁜 습기든, 무거워진 대기든, 상관없다. 반복적인 호흡을 해야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비가 내리고 있다. 그 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동그란 공을 생각했다. 공을 들고 서 있다. 그곳은 잔디밭으로 변했다. 기분 좋게 펼쳐진 잔디와 뽀송할 것 같은 구름, 눈꺼풀을 간지럽히는 선선한 바람을 떠올렸다. 방향을 정하지 않고 공을 힘껏 걷어찼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시원하게 날아갔다. 공이 떨어진 곳에 누군가 서 있다. 누군가는 다시 공을 내 쪽을 향해 걷어찼다. 누군가와 나는 공을 발로 차며 서로 주고받았다. 차고, 차고, 가고, 오고. 시선은 나를 빠져나와 서서히 올라갔다. 햇빛에 더욱 가까워진 높이에서 공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어지간히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형이상학적인 평화. 그리고 심판의 날이 도래하듯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이야기를 멈추고 물을 마셨다. 방 안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물 마시는 소리를 들려주는 공연을 관람하듯. 가벼운 숨을 뱉었다.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몇몇은 시선을 내린 채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거봐, 내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차분하게 물 마시는 소리조차 차분히 들어주었다. 옆에 있는 친구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라는 신호로 작은 기침을 했다. 기침 소리에 어떤 사람은 살짝 미소까지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 이야기의 끝에는 분명 그들의 실망이 닿으리라. 그렇지만 더 이상 멈출 수가 없다. 시작된 이야기는 그 끝을 반드시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대중목욕탕을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맡았던 어떠한 유의 스킨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버지는 목욕을 마치면 항상 나에게 삼각포리 커피우유를 사줬다. 그리고 큰 거울 앞에 놓인 -정체불명의- 초록색 병에 담긴 스킨로션을 자신의 얼굴에 내리쳤다. 액체로 된 로션이었는데, 그것을 손에 왕창 쏟고는 힘껏 두들겼다. 그럴 때마다 스킨로션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그 시대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남성들에게서 초록색 병 스킨로션 냄새가 났었다.

스킨로션 냄새가 주위에 은은하게 퍼져있다. 도시를 둘러싼 큰 벽 넘어 잠의 영역을 헤매던 정신이 천천히 침대 위로 돌아왔다. 눈은 감고 있지만 잠은 벽을 넘어서자. 저멀리로 떠나버렸다. 시간이 내일을 향해 사뿐히 걸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스킨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이 냄새는 어디서 흘러온 것일까, 스스로 물었다. 그에 대한 답은 ’그게 아니야’였다, 냄새는 우연히 온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앞에 그 실체의 덩어리가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분명히 느껴졌다. 나는 서서히 눈을 떴다. 기도하는 두 손처럼 붙어 있던 눈꺼풀이 떨어졌다. 시야는 어두웠고 흐릿했다. 나는 다시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초록색 병에 담긴 스킨로션의 냄새. 복도에서 들어온 형광등 빛에 사물들이 추상적인 얼룩처럼 일렁였다. 나는 다시 심호흡하며 눈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했다. 인상파 회화처럼 불분명했던 윤곽들이 하나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선과 선들이 빛에 의해 마주했고, 결국 도상적인 포름으로 변환되었다. 앞에 놓인 사실을 마주하였다.

그곳에는 정체 모를 남성이 있었다. 정확히는 중년의 남성이 누워있는 내 몸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는 -흰색으로 추정되는- 러닝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거무튀튀한 수염이 나 있었고, 가르마를 따라 머리칼이 나누어진 이마가 보였다. -물론 상황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 기억을 더듬으며 떠올린 그의 모습이다.- 그의 생김새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세세한 모습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그토록 평범해 보이는 그가 어쩌다가 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인가. 결단코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털세움근이 수축했다. 모든 털이 바짝 설 만큼.

머릿속이 지독히 혼란스러웠다. 얇은 면으로 둘러싸인 -관 같은- 작은 방에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내 팔을 잡고 있었고, 온몸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 몸은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술을 지독하게 마신 것처럼 정신이 마비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은 머리 위로 치솟았다가 그대로 명치에 꽂혔다. 나는 다시 그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내가 아닌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턱 밑과 콧구멍을 더 명확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냉소적인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왜 나를 보고 있지 않은지, 내가 아래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그 무엇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공기를 억지로 폐에 넣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수록 더욱 압박은 강해져 갔다. 일 초가 쌓여가는 동안 그의 무게도 계속 늘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급하지 않게 되도록 천천히 호흡하는 것처럼 보였다.-혹은 호흡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킨로션 냄새는 농밀하게 공기 사이의 공백을 가득 메꿨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인간은 격한 공포나 고통을 지우기 위해, 혹은 조금이라도 감소시키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감정과 감각을 모조리 끄집어낸다. 하지만 내 몸은 굳어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애초에 손가락이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의 지배권을 잃어버리고, 중년의 어떤 남성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막막한 시간이 주변을 맴돌았고, 나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나’라는 인격의 우물 바닥에는 폐허가 아닌, 용암 같은 분노가 끓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도 있다. 혹은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잔혹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날 뉴스에 나올 법한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주인공이 될 수도.- 그러나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를 죽음에 닿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몹시 원한다. 생명의 순환이 멈추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심장이 주인 없는 야생마처럼 뛰었다. 그 종점에는 오로지 종말만이 닿을 것이리라. 무의 세계. 그것에는 논리적인 이유나 이성적인 인과 따위는 없다. 필연적인 것만 조촐하게 있을 뿐이다.

무기력할 수 있는 심연 한가운데에서 나는 태양을 상상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그 정열은 모든 것을 태울 것이다. 동시에 어둠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불꽃은 죽음이자 탄생이다. 삶은 언제나 동시적이다. 그리고 하나의 순간을 선택할 뿐이다. 귀결이나 희망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저 타오를 뿐이다. 나는 태양 아래에 서 있는 나를 상상했다. 무너진 댐처럼 땀이 터져 나왔다. 땀방울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는 달아오른 열기를 두 손 가득히 쥐어보았다. 혹시나 한 톨이라도 새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하며. 뜨거운 햇빛에 주먹은 땀에 젖어 반짝였다. 혼란과 마비는 주의 깊게 이동했다. 맹수를 피해 살며시 도망치는 초식 동물처럼.


‘그의 면상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자.’


결국 주먹은 그를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이었다. 마비되었던 몸이 팽팽한 고무줄을 놓은 것처럼 튕겨 나갔다. 그러나 주먹 끝에 닿은 건・・・ 허무였다. 꽉 쥔 주먹은 허공에 휘둘러졌다. 팔의 큰 궤도에 따라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호흡은 굉장히 거칠고 빨랐다. 막혀있던 큰 돌이 빠진 강물처럼. 정열에 의해 녹고 있던 정신의 멱살을 낚아챘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온몸이 식어버린 땀으로 덮여있을 뿐이었다.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스킨로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착각이 아니다. 그곳엔 땀 냄새와 곰팡내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봤다. 책상, 오래된 장, 작은 창, 굳게 닫힌 문, 누런 벽지가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는 벼락같이 사라졌다. 스킨로션 냄새와 함께.

침대에 앉아 방금 일어났던 일을 되짚어봤다. 쉽사리 이해되지 않은 상황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밑을 봤다. 장도 열어봤다. 기묘하게도 아무도 없었다. 방문을 열었다. 복도는 색이 죽은 형광등만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코골이가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참과 거짓에 기준을 두고 판단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무의미했다. 분명 방금까지 일어났던 일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은 기호였고, 상이 뚜렷한 사진이었다. 얼음이 물이 되고, 나무가 재가 되는 것처럼 명백했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현실이 무엇인지, 무엇이 현실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초록색 병에 담긴 스킨로션 냄새는 꿈일 수가 없지 않은가.


나는 더 이상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고시원을 나와 근처 공원으로 갔다. 고급스러운 주택 타운 중심에 있는 공원이었다. 집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몇몇 집들만 2층에서 은은한 노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희미하게 일렁이는 창문을 보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여름밤 냄새가 났다. 거짓일 리 없는 여름의 냄새. 두 손을 펼쳐 보았다. 그곳은 텅 비어있었다. 두 손안에 많은 것들이 머물렀었다. 공포와 분노, 정열과 폭력, 그리고 그 이전에는 그녀도 있었을 것이고, 내일도 있었을 터였다. 하늘에는 만월에 가까운 밝은 달이 떠 있었다. 공원은 고독할 정도로 고요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물을 마시려 컵을 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물은 없었다. 메마른 기침을 짧게 했다.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눈썹 사이 주름의 의미를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내 경험에 대하여 자신들만의 해석을 고심하는 눈치였다. 옆에 있던 남성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굉장한 기담이라고 말해주었다. 굉장한 기담이라,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내 눈을 슬쩍 보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끄덕임을 보였다. 나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에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어떤 여자가 내게 다가와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요, 라고 물었다. 나는 짐작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녀는 앞서 발생한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수면 장애가 발생한 것-즉 가위에 눌린 것-이 아닐까요, 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나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대꾸했다. 사람들은 각자 짐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그녀는 다 함께 테라스가 있는 근처 술집에 갈 것이라며 같이 가자고 말했다. 나는 집에 할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런 기묘한 경험을 서로 주고받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아무래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정념적인 마침표가 찍혔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해가 저물어 가는 하늘은 포도색 와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름 저녁 하늘엔 상현달이 구름 사이에 떠 있었다. 달은 와인을 잔뜩 머금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런닝하는 사람, 대화하는 두 사람,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 하지만 나처럼 달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풀냄새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다시 떠올려봐도 방금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기담 모임이라니. 목에서 한숨 비슷한 신음이 나왔다. 어릴 때 지우개를 훔치고 느꼈던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말하지 못했다. 별 볼 일 없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 부분을 빼놓았다. 작고 큰 미소 뒤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었던 진실은 이러하다. 나를 덮쳤던 스킨 냄새의 중년 남성은 사실 십수 년 전에 죽은 나의 아버지와 닮았다. 혹시나 하여 말하지만, 아버지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하도록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얼굴의 어떤 부분이, 혹은 무엇 때문에 닮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떠올랐다. 중학생의 내가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기억에 기대어. 하지만 아버지의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래전에 쏟은 우유처럼 얼룩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나는 바닷속에서 물총을 쏘듯이 허공에 숨을 뱉었다. 호흡은 공기 속으로 순식간에 묻혔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달은 여전히 자신의 반쪽만 내비치고 있다. 언제가 멀리 떠나갔던 여름밤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습기로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신선한 풀 내가 가득했다.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고시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영원할 것만 같던 고통도 결국 그녀처럼 떠났다. 나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주위에 어떤 사람도 달을 마주하며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다. 눈을 감고 숨을 다시 한번 들이마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 사이로 이름 모를 벌레들이 목청 높여 울고 있다. 목청 높여 울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상관없었다. 벌레들의 울음소리에도, 공원을 둘러싼 풀 냄새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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