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의 끝자락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지면을 뜨겁게 달구던 열기는 미지근한 구린내에 밀려 날아갔다. 온몸을 지긋이 누르던 습한 공기도 선선한 바람에 모습을 일부 숨겼다. 새파란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여름은 벌써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른을 꿈꾸던 소년이 벌써 아저씨가 되어버린 것처럼. 나는 마을에 하나씩 있을 법한 낮은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노란 태양을 보며 걷고 있었다. 노란 하늘은 점차 붉어졌고, 신비로운 와인색이 되었다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번에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은 하늘에는 얇은 달과 은은한 구름이 지나고 있다. 도시의 빛들은 하늘의 수많은 별을 가리고 있다. 고개를 들어 별의 모습을 유심히 찾아보아도, 그저 신기루 같은 작은 빛들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나는 거리에 있는 크지 않은 공원 입구 앞에 있다. 하얀 가로등 아래에는 몇 마리의 벌레가 불빛을 향해 아직도 몸을 날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그들은 나의 존재에 관심이 없는 듯 무심히 지나갔고, 나도 그들을 인상 깊게 보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셔 본다. 여름의 끝・・・ 그런 향이 났다. 어느 날에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였다. 아무래도 한참 어린 시절이었으리라. 그 냄새는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며, 문득 고독해지고, 어느 순간에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미스테리한 것이었다. 가두었던 숨을 서서히 뱉어 본다. 열이 날아간 공기가 폐의 벽에 닿아 코로 나오는 모든 과정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 공원을 보았다. 그곳엔 하얀빛이 묻은 형형색색의 놀이기구들이 즐비했다. 작은 공원이지만, 아이들을 향한 진심이 담긴 요정들의 세계인 듯 보였다.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혹은 실소일 수도 있다. 나는 어쩌다가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연락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훈제 닭고기와 양파를 함께 볶고,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한 나시고랭 라면을 끓여 점심 식사로 먹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젓가락을 들었을 때, 진동이 울렸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이름 없는 번호가 떠 있었다. 낯익은 숫자들이었다. 번호일 뿐인데, 갖가지 상념들이 소용돌이쳤다. 과거의 향수가 왼쪽으로 휘몰아치고, 익숙한 거리의 풍토가 오른쪽으로 내리쳤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물먹은 스피커처럼 웅얼거리며 울렸다.
“오랜만이야. 당신 맞지?” 그녀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넘어왔다.
“・・・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어쩐 일이야, 가 아니라니. 예상 밖인걸?”
“마침, 그 질문도 할 참이었어.”
그녀의 웃음소리가 휴대전화 너머에서 어렴풋이 들렸다. 들린 것만 같았다.
“당신은・・・ 잘 지내고 있겠지?”
“뭐・・・ 그렇지.”
“오늘 밤 9시에 뭐해?”
“별다른 약속은 없기는 한데・・・ 진짜 어쩐 일이야?”
“저녁에 그곳에서 잠깐 만나자.”
“그곳?” 나는 되물었다.
“그 공원 말하는 거야?”
“응”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을 삼켰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약속은 항상 그 공원 앞이었다. 그녀가 사는 곳과 내가 사는 곳의 중간은 아니지만, -오히려 내 쪽에 더 가깝지만- 그녀는 그 공원 앞에서 만나는 것을 좋아라 했었다. 곳곳이 녹슨 초록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원이었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알차게 설치된 곳이었다. 그러나 그 공원 주변엔 학교도, 가족이 살만한 주택가도 없었기에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순 없었다. 그녀는 주변 조사에는 미흡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공원 설계자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박도 오기로 했어.” 그녀가 말했다.
“예전에 내게서 빌려 갔던 필름 카메라 돌려받기로 했거든. 당신에게도 건네 줄 게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빼지 말고 오라고?”
그녀는 미세하나 분명한 웃음을 지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공기의 흐림이 짧은 순간이지만 바뀐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통화는 끊어졌다. 그녀 쪽에서 끊었다. 나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 댄 채 무언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곳엔 땀과 얼굴 기름이 잔뜩 묻은 검은 화면뿐이었다.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는 그녀가 바로 옆에 있었다가 한 순간에 침묵으로 변한 것이다. 5년간 공백으로 가득 채워진 우리의 사이가 현실로 충만해지는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6년 전이었을까. 정확한 시기는 떠오르지는 않지만, 박은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을 특별하게 기록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와 사귀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상념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고, 옛것을 애정했다. 우리 셋은 종종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신 적이 있기에, 박은 친분이 쌓였던 그녀에게 필름 카메라를 빌렸었다. 그녀는 흔쾌히 카메라를 빌려주었고, 심지어 자신의 필름 몇 롤도 함께 챙겨 주었다. 박은 여행에서 필름을 다 채우지 못했었고, 그녀는 필름을 다 채우면 다시 돌려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지금이 되어서야 박은 그녀에게 카메라를 돌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필름을 다 채웠는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내게 건네어 줄 것은 무엇일까. 박에게 돌려받은 필름 카메라를 곧장 내게 다시 주는 상상을 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모르겠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시간을 봤다. 8시 55분. 이제 곧 이곳으로 그녀가 올 것이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를 들고 박도 올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만남을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녹슨 녹색 울타리에 등을 갖다 대었다. 한숨은 내면의 깊숙하고 어두운 우물 끝까지 단숨에 내려갔고, 연약하고 얇은 콧방울을 흔들며 내뱉어졌다. 확실한 건 5년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다. 그녀와 나의 사이가 끊어지고 2년 동안은 공허한 심연에서 미련을 벗 삼아 숨죽여 살았었다. 나머진 3년은 숨막혔던 고통이 내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기억은 강물 속의 뿌연 모래 먼지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셀 수 없을 만큼의 후회가 절망으로 이어지고, 반복이 되어, 피부가 되었고, 심장박동이 되었으며, 숨결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마침표 이전의 그녀다. 사실 그런 식의 나 자신을 형성하게 만드는 존재들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중학생 때 죽은 아버지도 그러했고, 이탈리아로 날아간 첫사랑도 그러했고, 바람을 피고 도망간 어떤 소녀도 그러했다. 그들은 마침표를 찍고는 상념과 신체에 견고히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라는 구덩이에서 끝이 맺어졌다. 현재의 망령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녀는 5년의 공백을 지나쳐 내 앞에 나타나려고 한다. 내 곁을 떠나 이미지로 변환되어 흐릿해져 가던 그녀가 현실의 촉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은 여러 차례 변곡점을 지나며 나를 바꾸어 갔다. 이런 현상은 비단 나만 적용되는 시간이 아니다. 현재의 그녀는 내게 스며든 것과는 다른 존재일 것이리라.
하늘은 여전히 검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구름 너머 우주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내게 그저 허망할 뿐, 체감적으로 와닿는 현실이 아니다. 저기에 은하가 있대. 은하단도 있고, 태양보다 몇천 배는 큰 항성도 있고, 시간도 멈추게 하는 블랙홀도 있대. 그리고 세상의 시작, 태초의 순간들도 남아 있대. 그렇다 하대. 지금 내게 그런 사실들은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 하대.
상념들이 불안을 덮기 위해 파도를 치고, 심장은 고요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방으로 요동치고 있다. 나는 다시 한번 숨을 깊게 마셨다. 숨어있던 습기가 슬며시 발을 빼고는 폐의 바닥에 맞닿았다. 촉촉이 젖어가는 호흡을 느끼며 숨을 뱉었다. 거리의 저 끝에 낯익은 형상이 아른거렸다. 멀리 있어서 뚜렷하게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머리 위에 동그란 것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머리를 묶어 위로 올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회색의 티셔츠가 상체를 넘치게 덮쳤고, 어두운 색상의 반바지가 빼꼼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오른손에는 네모난-혹은 동그랗지 않은- 에코백을 든 것이 보였다. 휴대전화를 꺼내어 화면을 보았다.
‘PM 09:00’
(2)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결과가 있으면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는 법이다. 어느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 반짝이는 새까만 총을 꺼낸다면, 그건 방아쇠가 당겨진다는 의미다. 방아쇠가 당겨져 마땅한 적당한 시기를 기다릴 뿐, 분명하게 총탄이 폭발하며 날아갈 것이다. 그 안에는 명증한 법칙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형성된 세계는 이유가 있고, 과정이 뚜렷하며, 결론은 마침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딛고 있는 지면과 공기로 충만한 이 세계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인과를 따지며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써보지만, 물거품이 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불행은 폭우성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와 우리를 적시고, 쌓이며, 어느새 사라진다. 거기서 이성적인 이유를 찾으려 하지만, 그건 조각의 조각난 부스러기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붙인 ‘세상’ 말이다.
그녀와의 만남은 5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하게, 수증기처럼 증발했다. -사실은 공백의 기간은 중요하지 않으리라.- 그녀와 형식적인 인사와 안부가 오갔고, 때마침 박이 도착했다. 그는 그녀에게 필름 카메라가 담긴 페이퍼 백을 넘기며,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들고 온 에코백에서 두 개의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 박에게 하나 건네었다. 미스테리한 봉지 안에 든 건 만두였다. 그녀가 직접 빚은 만두. 그녀는 집에서 만두를 빚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맛이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고 하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산들거리는 진한 초록과 살랑거리는 연한 파랑으로 이루어진 정경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나와 박에게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그대로 점차 사라졌다. 형상이 점점 흐릿해져 뒤에 거리가 비쳤고, 결국은 투명해져 눈앞에서 사라졌다. 사실은 아니다. 그녀는 뒤돌아 걸음을 옮겼고, 멀어질수록 작아졌고, 어느샌가 거리에 그녀의 모습이 안 보였을 뿐이다.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투명한 비닐봉지에 쌓인 만두들이 보였다. 꺼내어 새어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겠다만, 대략 10~15알 정도인 듯 보였다. 언뜻 보기엔 보기 좋게 빚어졌다. 찜기에 쪄서 직접 먹어봐야 맛을 알겠다만, 육즙이 가득하고 부드러운 만두피가 입안을 감싸는 맛있는 만두처럼 느껴졌다. 가상의 만두 맛을 상상을 하니, 시원한 맥주가 생각이 났다. 뜨거운 만두와 차가운 생맥주라・・・.
“오랜만이다.” 박이 말했다.
“1년 만인가, 이렇게 마주하다니, 두 손에 만두를 가득 들고 말이야.”
“그러게. 요새 어떻게 지내?”
“애 키우느라 정신 없지. 회사 업무가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가서 육아하고, 그러다 보면 새벽이고, 겨우 잠에 들면 아침이고, 다시 회사・・・”
“정말이지 정신이라는 게 남아나질 않겠구먼.”
“정말이야. 가족을 만드는 게, 아버지가 된다는 게, 생각한 거랑 다른 점이 많더라고.”
“인생에 모든 게 그렇겠지.”
박의 시선은 땅에 어딘가를 기어다녔다. 그리고 내 말에 공감을 해주는 듯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나오고는 도통 볼 수가 없네.” 내가 말했다.
“그전에는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만났는데 말이야. 요새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잖아?”
“맞아. 애를 키우다 보면 휴대전화를 어딘가 던져 놓고 있더라고. 난 아무래도 여러 일을 동시에 못하는 체질인가 봐. 물론 그 사실을 최근에 안 건 아니지만, 확신이 생겼다고 할까나. 자기 전에 휴대전화를 보면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숨구멍을 답답하게 만들 만큼 쌓여 있어. 각각의 연락에 감사함을 느끼며, 회신을 해야겠지만, 머리가 과열돼서 잠시라도 식혀야 했거든. 그러다 보면 반응하지 못하는 연락이 눈덩이처럼 쌓여 버려. 그러다 해가 뜨면 녹아 사라지는 거야. 그중에 너의 연락도 있었더랬지.”
“만약 사과의 의미가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 네 상황의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어제 그녀에게 연락이 왔었어. 모르는 번호였는데, 받아야 할 거 같더라고. 단순히 촉이나 예감 같은 게 아니야. 거래처에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물론 거래처 번호를 알고 있지만, 혹시하는 마음이 있잖아. 그래서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리려고 할 때쯤 빠르게 받은 거야.” 박의 얼굴에서 아주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가 사라졌다.
박의 휴대전화 너머의 그녀는 필름 카메라를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박은 그녀에게 자신이 먼저 연락하여 돌려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였다. 물론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신이 준 필름을 다 채웠는지 물었다고 했다. 박은 여행에서 몇 컷 찍은 이후로는 전혀 채우지 못했었다. 그녀는 미소와 함께 -그녀의 미소는 소리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리라- 사진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라고 전했다. 그리고 만날 장소를 그녀가 정했고, 시간은 박의 퇴근 시간에 맞춰졌다.
사실 그녀가 유령처럼 떠나고 난 후, 박에게 만두에 맥주를 함께 하지 않겠냐고 권유해 볼 심상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의 제안은 여름의 끝자락에 끝내 매달리지 못했다.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필름 카메라로 기념적인 순간을 함께 담은 아내가 있는 그곳으로,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 아이가 있는 그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에겐 돌아가야 할 집이 있다. 잠깐의 일탈을 만끽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 그도 나와 술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그간의 회포를 풀며, 매번 반복되는 추억들을 곱씹으며 웃음소리로 밤하늘을 채우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적어도 오늘은 말이다.
박은 멋쩍은 웃음과 함께 떠났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노을로 물들었던 거리는 인위적인 흰색 가로등으로 물들었다. 내 손에는 만두 한 봉지가 걸음에 맞춰 덜렁거리고 있다. 고개를 들고는 코로 공기를 서서히 들이마신다. 습기로 가득했던 허공은 어느새 선선한 공허가 되어 주변을 맴돌았다. 세상은 순식간에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여름이었던 것이 가을이 되고, 내 것이었던 것이 네 것이 되고,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게 되고, 내가 분노하던 작자들이 무신경해지는 것처럼.
오늘 나는 만두를 얻었다. 나의 일부였었던 그녀가 빚은 만두다. 정확히는 만두를 건넨 그녀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과거라는 형이상학적인 울타리를 넘어 현실적인 세계로 떠나버린 전혀 다른 존재라 해도 무방하다. 그 존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나는 없다. 어쩌면 그녀가 넘어섰던 울타리 안에 잔여물로 일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존재하지도,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말이다.
그녀가 빚은 만두는 나의 가장 가까운・・・ 혹은 가까웠던 박에게도 건네어졌다. 모호한 감정이 옅은 연기처럼 코앞을 스쳤다. 박과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그가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 전까지・・・. 그런 그에게 나와 같은 만두가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이 세계를 형성했던 그들이 이제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그런 그들이 오늘 나와 함께 계절이 변환되는 지점에서 스친 것이다. 녹슨 녹색 울타리로 둘러싼 작은 공원 입구 앞에서. 한밤의 만두 회동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 셋이 왜 다시 만난 것이지, 필름 카메라가 왜 이제서야 주인을 찾아갔는지, 우리의 잠깐이 정말 만두 때문이었는지, 왜 하필 만두였는지, 모든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눈앞에서 발생한 회동이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만두였다. 이제 곧장 집으로 돌아가 찜기에 만두를 넣고 쪄서 먹으면 된다. 가는 길에 맥주도 한 캔 사가면 적절한 올해 마지막 여름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왼발과 오른발이 교차할 방금 떠오른 사실이다. 내 집에는 찜기가 없다. 휴대전화를 열었다. 시간은 밤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먹을 수 없는 만두를 보았다. 그녀는 알았을까, 내게 찜기가 없다는 것을. 만두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말없이 내 걸음을 따라 흔들거리고 있다. 선선해진 공기를 흔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