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가 되어도 이어지는 불안하고 불안한 마음

by 무긴이

스피커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무명의 피아노 연주가 공간을 흐르게 하고 있다. 멈춰있던 공기를 밀어내고, 얼어 있던 상념에 시동을 걸었다. 지루했던 카페는 나름 편안한 곳으로 바뀌었다. 숨죽여 있던 커피 향은 꾸물거리며 피어올랐다. 커피 향은 어디선가 들어봤던 선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콧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남새는 참 향긋했다. 입 안은 뜨거운 커피로 가득 찼다. 커피가 목을 넘어갈 때쯤, 코로 작은 숨을 내뱉어졌다. 숨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보였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동안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을까?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사실 그렇진 않다. 자리에 앉고 곧장은 내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꾸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불안한 듯 경계가 희미했다. 천장부터 이어진 거대한 유리 너머에는 정체되어 꼼짝하지 않는 차들의 행렬이 보였다. 빨간 브레이크 등들은 눈이 시뻘겋게 화난 짐승들처럼 보였다. 뿔난 짐승들은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처럼 가끔씩 앞으로 움직였다. 아마도 그녀는 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꽉 막힌 도로 중심에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그 아래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사실은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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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영원한 잠에 들었다. 잠에 들기 전에는 꽤 활발하게 움직이고, 운전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엄마 몰래 담배를 피우고, 나를 데리고 인사동을 가고, 함께 싸구려 비급 영화를 본 적도 있다. 현재는 죽음이라는 아득한-나사(NASA)에서 종종 발표하는 100광년 거리에 있는 슈퍼 지구처럼 가늠이 안 되는- 곳으로 떠나버린 지 오래다. 어찌 됐든 분명한 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부분이 꽤나 아쉬운 감정이 든다. 내가 가족과 하는 대화를 즐긴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버지라는 그 남자이기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이었다. 전부 밝힐 수 없지만, 그중 하나는 아버지의 생각에 대해 묻고 싶었다. 상념이라고도 할 수도 있고, 인생의 방향성, 태도, 패턴 정도라 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34살의 아버지, 서른 줄을 지나고 있었던 아버지의 어떠한 생각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아버지로 하여금 태어났다. 나라는 자아는 환경에 의해서, 그리고 샐 수도 없을 만큼의 선택들로 쌓아졌지만, 영혼의 구석구석엔 인식할 수 없을 만큼의 아버지의 분자들이 먼지의 흔적처럼 새겨져 있을 것이다. 시대도 다르고 자아도 다르지만, 아버지는 어떤 30대를 보내고 있었을지 매우 궁금하다.-여기서 ‘매우’라는 것은 답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붙여졌다. 우리가 화성에 매우 가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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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몇 시죠?”

“자네 시계를 보게나”

“죄송하지만 저는 시계가 없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열어보면 되잖나”

“이건 핸드폰이 아닙니다”

“계속 실없는 소리를 할 텐가?”

“죄송합니다”


정말 큰 한숨이었다. 땅이 꺼지고 바다가 뒤집히며 우주가 요동 치진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살짝 떨렸다.


“사실 이건 핸드폰이 맞습니다만, 시간을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그럴 순 없네” 선생은 대꾸했다.

“스스로 시간을 찾게. 시간이란 건 말일세. 항상 흐르고 있네. 아니, 사실은 말이야. 존재하지 않네. 우리가 정한 것일세. 자네도 나도 정한 적이 없지만, 수긍했다는 건 시간 정하기에 동참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거든”


실없는 소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지금 몇 시인지만 알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되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