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내내 마냥 따뜻할 줄 알았던 베트남 북부에 겨울이 있었다. 한국 겨울에 비하면 따뜻한 수준인 20도 내외지만 거의 매일 햇볕이 뜨거운 30도 내외의 치앙마이에 적응해버린 참이었다. 하늘마저 독일 겨울처럼 회색으로 흐려서 더욱 춥게 느껴졌지만 하노이에는 비건 식당이 많아 덜 우울했다.
특히 첫 번째로 갔던 캇제 비건 식당은 아직도 베트남 최애식당이다.
Katze Vegan & Vegetarian,
43 P. Hàng Bè, Hàng Bạc, Hoàn Kiếm, Hà Nội 100000, Vietnam
하노이에 도착해 짐을 놓고 지도를 보면서 찾아갔다. 길가에 커다란 간판이 있는데 간판 아래에는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응? 당황하는 우리에게 그랩(동남아 택시/배달앱)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건물 사이 통로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좁고 시커먼 통로로 들어가며 이건 뭔가, 저 아저씨는 누구인가, 식당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건가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는데 그 아저씨가 계속 가라고 했다. 통로 끝자락 왼쪽계단에서 여성분이 내려오셨다. 그 계단으로 올라갔더니 식당이 나왔다. 식당에 흐르는 이국적인 음악에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을 잠시 잊었다.
알고 보니 그랩티를 입은 아저씨는 식당 주인이었다.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구글 번역기로 식당에 온 걸 환영한다고 적어서 보여주고는 메뉴판을 건넸다. 바나나 꽃 샐러드, 비건 치킨볶음 그리고 밥을 주문했다. 다음으로 건네주신 코팅된 종이에는 길거리 아이였던 사장님이 이제는 투잡을 뛰며 길거리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곧 사장님은 빨간 고추슬라이스가 담긴 작은 그릇을 가져와 레몬즙을 짜 넣으셨다. 즙이 많은 레몬이었다. 그리고는 두부토마토가 담긴 그릇을 테이블에 놓았다. 두부토마토는 메뉴에도 없었고 주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곧이어 커다란 쌀밥 대접, 채소와 허브가 수북이 담긴 대접을 가져와 밥을 작은 밥그릇에 덜고, 두부를 레몬소스에 찍어먹고, 채소도 조금씩 집어서 레몬소스에 찍어먹으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국이 담긴 대접도 나왔다. 기본 반찬과 밥이었다.
아, 한식당 기본 반찬에 외국인들이 환장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따뜻한 쌀밥도 맛있는데 무엇보다 파릇파릇한 채소와 토마토소스 튀긴 두부가 너무 맛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따라 나왔다. 볶은 땅콩이 가득 올라간 바나나 꽃 샐러드 역시 신선하고 상큼했다. 식탁이 가득 차게 음식이 많았지만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메뉴가 많지 않고 가격도 아주 저렴하진 않은데 기본 음식이 많아 나중엔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졌다. 꽤 많이 먹었지만 기분 좋고 만족스러운 배부름이었다. 사장님의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좁은 통로로 들어가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에 친절한 사람들. 숨겨진 보석 같은 식당을 찾은 것 기분이었다.
숙소 조식을 비건으로 만들어줬는데 새우가 들어있었다. 아... 잘 설명한다고 한 것 같은데 새우가 있다니... 그것은 비건새우였다. 비건 뷔페에서 누나 비건인데 새우 먹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던 동생이 생각났다. 이 정도면 그냥 새우대신 비건새우를 먹는 게 낫겠다.
다음날엔 베트남 쌀국수 Pho를 먹으러 갔다. 호숫가에 있는 작은 비건 식당인데 카페에서 쉬다가 식당 브레이크타임이 가까워져 조금 급하게 걸어갔다.
Com Pho Chay Tu Bi,
30 Ng. Trúc Lạc, Trúc Bạch, Ba Đình, Hà Nội, Vietnam
메뉴를 보고 쌀국수랑 월남쌈을 주문했다. 가격이 저렴하다. 쌀국수 한 그릇에 이천 원 정도. 옆 테이블에 있던 긴 튀김은 메뉴에서 못 찾아서 저것도 주문하고 싶다니까 비건 소시지를 말하는 거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튀김은 쌀국수를 시키면 주는 거였다. 국수는 면과 국물, 허브와 콩단백이 전부였지만 역시 쌀국수의 나라답게 맛있었다. 튀김은 꽤 단단했는데 국물에 담갔다가 먹으니 알맞았다. 월남쌈 역시 맛있지 말해 뭐 해. 근처 호수에서 백조모양 배를 탔다. 백조 배들이 조금 무섭게 생겼다.
지나가다 들른 절 한쪽 벽에 카르마에 대한 내용이 가득했는데 그중 채식주의자가 되고, 다른 이들이 채식주의자가 되게 돕는 일은 건강과 장수를 가져다준다고 쓰여있었다.
통일공원에 가기 전 근처에 있는 비건 식당에 갔다.
Quán chay Chạm,
94 P. Bùi Thị Xuân, Bùi Thị Xuân, Hai Bà Trưng, Hà Nội, Vietnam
여기도 골목 끝에 있어 인터넷이 잘 안 되는데 영어메뉴가 없다. 이건 뭐냐고 물어보면 직원이 구글 번역기를 써서 설명해 준다. 버섯 죽이 있어서 주문했는데 조금 짭짤했지만 맛있었고, 두부튀김. 베트남은 두부를 튀기는 게 기본인 것 같다. 그래서 튀긴 두부가 엄청 맛있다. 여러 가지 말린꽃이나 향신료를 섞어서 만든 차도 있다. 가격은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맛있다.
해피카우앱이랑 구글맵을 검색하다가 비건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2cream - Homemade Ice Cream,
5 P. Đinh Tiên Hoàng, Hàng Trống, Hoàn Kiếm, Hà Nội, Vietnam
사진에 있는 메뉴를 보니 무려 피스타치오맛이 있다니. 비건 되고 맛있는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항상 찾아 헤매는데 아직도 못 만났다. 찾아갔더니 비건 아이스크림 메뉴는 많았지만 그날엔 두 가지만 있었다. 아몬드초콜릿맛과 바닐라 오레오. 그래도 그냥 소르베가 아닌 것으로 만족. 아이스크림은 적당히 달고 부드러웠다. 피스타치오는 다음 주에 나온다고 했지만 다음 주엔 우리가 여기에 없는데요... 하노이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갔다.
또 다른 쌀국수 맛집.
Quán Phở Chay anh Hải,
27 P. Hàng Vôi, Lý Thái Tổ, Hoàn Kiếm, Hà Nội 100000, Vietnam
길가에 있고 내부가 좁아 우리는 옆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먹었다. 그곳은 슈퍼마켓 같았는데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항상 이렇게 쓰는 듯했다. 메뉴에 몇 가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Pho만 된대서 그걸로 주문했다. 간단하지만 저번에 간 곳보다 버섯이랑 콩단백을 좀 더 여러 종류 조금씩 넣어준다. 역시 맛있죠.
기차역 앞에서 공항버스를 타기 전에 근처라 찾아갔다가 만난 분짜 맛집!
Tam An Lac,
70 P. Lý Thường Kiệt, Trần Hưng Đạo, Hoàn Kiếm, Hà Nội, Vietnam
베트남 아니 하노이는 뭐가 이렇게 다 꽁꽁 숨어있는 걸까 지도를 보고 간판을 보고 찾아가도 통로 끝자락까지 가도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식료품점 같은 곳이 있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인사를 해도 응답이 없었다. 후기를 보니 그 식료품점 2층으로 올라가래서 그렇게 했다. 점심 뷔페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가 들어가니 메뉴 책을 주셨는데 아주 다양했다. 그 사이에 눈에 띄는 분짜!!! 베트남에서 분짜를 먹고 싶어 찾아다녔는데 드디어 만났다!
대만불교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던데 점심때가 되니 베트남 사람들이 와서 뷔페로 밥이랑 반찬을 덜어 먹었다. 우리는 말이 안 통하니 그냥 주는 대로 메뉴를 주문했는데 분짜는 역시 향긋하고 달달했다.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는 게 아쉬웠다. 매일 오고 싶은 식당... 이곳엔 그릭요거트 식감에 아주 크리미 하고 꾸덕하며 코코넛향도 은은하게 나는 비건 요거트가 있다.
하노이에는 베트남 북부의 날씨가 풀리면 다시 갈 건데 특히 캇제랑 땀안락 식당에 다시 갈 생각에 두근두근하다.
* 베트남에서 비건/채식주의자는 Chay(차이)인데 성조 때문에 다른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An Chay(안 차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 베트남 고추는 얼얼하게 맵지만 베트남 음식은 대체로 맵지 않다.
* 안녕하세요 - 신 짜오/ 고맙습니다 - 깜언/ 맛있어요 - Ngon(넌)인데 잘못 말하면 샹욕이 된다. 한국어에 없는 두성 같은 소리라 연습을 아주 많이 해야 하고 연습해도 실수하면 샹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맛있다고 하고 싶으면 Ngon qua(넌 꽈)라고 하는 게 낫다.
+ 하노이 & 푸꾸옥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