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사실 비건 천국이라는 말을 재차 듣기 전까지는 대만이 우리랑 같은 한자를 쓰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마침내 대만에 도착했을 때 한자공부를 더 열심히 할걸, 중국어 좀 배워둘걸, 그리고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만에서는 해피카우 앱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채식을 뜻하는 한자 素食가 이곳저곳에 보인다. 구글맵에 素食을 붙여 넣으면 근처의 채식식당이 나오는데 이는 타이베이를 벗어난 소도시도 마찬가지라 소도시에서도 채식식당이 없어서 밥을 굶은 일은 없었다. 주변에 채식식당이 없거나 문을 닫았다면 곳곳에 널려있는 세븐일레븐이나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에 가서 군고구마, 다양한 종류의 비건 컵라면, 삼각 김밥, 밥, 두유를 먹을 수 있다.
비건 제품은 Vegan을 뜻하는 全素라는 한자를 찾으면 된다. 패밀리마트에는 두 가지 비건 삼각김밥이 있었는데 모든 매장에 다 있는 건 아니었다. 한편 식당에 가서는 비건이라는 뜻의 한자를 보여주고도 추가적으로 알과 젖을 먹지 않는다고 설명해야 했다. 그래도 채식, 알과 젖을 안 먹는다고만 말해도 다들 금방 이해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보다 간단하다. 버블티의 나라답게 카페보다 버블티 가게가 많이 보이며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버블티를 들고 다닌다. 대만 사람들은 우롱차를 많이 마신다던데 홍차도 맛있다. 다른 홍차는 너무 진해서 두유나 귀리음료를 타곤 하는데 대만의 홍차는 너무 진하지 않고 그 자체로 향긋하다. 버블티 가게에 가면 항상 당도와 얼음을 고른다. 우롱차는 울롱차, 홍차는 홍자, 버블은 쩐주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종종 숙소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으러 갔다. 그냥 일반 숙소인데 밥과 죽, 두유가 있고 반찬은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전부 비건이다. 대만 사람들은 아침식사 그리고 야식으로 또우장豆漿(두유)을 많이 먹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마트에도 무가당, 논지엠오 콩, 검은콩 등 두유 종류가 정말 많다. 아침으로 또우장 가게에 가면 튀김이나 빵, 주먹밥도 같이 먹을 수 있다. 유명한 또우장 집에 한번 가봤더니 점심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줄이 거의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정도라 그냥 포기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조금 멀지만 마지막 날 숙소 근처라 우연히 간 저녁부터 밤새 아침까지 운영하는 또우장집이 너무 맛있었다. 반죽부터 갓 만든 튀김과 따뜻한 두유로 시작하는 아침은 행복이다.
永和豆漿, No. 3, Liancheng Rd, Zhonghe District, New Taipei City, Taiwan 235
야시장이나 관광지에도 버섯튀김 그리고 버섯구이가 꼭 있는 것 같다. 버섯튀김을 먹으면서 고소하고 바삭하고 부드럽고 쫄깃한 것이 한국에서도 닭 대신 버섯을 튀겨서 팔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만에서는 밥보다 국수나 만두, 완탕을 더 많이 먹은 것 같다. 밥을 시키면 꼭 밥 위에 다진 대체육이라던가, 채소나 장아찌 등을 올려줬다. 주로 그냥 주변에 있는 채식식당에 갔는데 찾아간 곳의 문이 닫혀있어도 주변에 다른 채식식당이 있다. 대부분의 채식식당이 서양식이 아닌 대만음식이라 좋았다. 콩국수 덕후인 파트너는 대만은 이렇게 두유도 많고, 면도 많은데 왜 콩국수는 없냐고 한탄했다.
첫날 첫 끼,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배낭을 메고 숙소 가는 길에 들른 메뉴엔 떠먹는 국수 작은 거 큰 거, 그리고 빙수뿐인 식당. 떠먹는 국수를 처음 접해봐서 이것을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면서 먹었다. 끈적거리는 식감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 고소하고 바삭한 튀김과 다진 고수의 시원한 맛이 잘 어우러졌다. 그 맛이 종종 생각나더니 다른 곳에서 비슷한 음식을 맛본 다음 아, 그 집이 맛집이었구나! 를 깨닫고 마지막 날 공항철도를 타기 전 마지막 끼를 다시 먹었다.
古早味冰/素麵線 No. 149, Huayin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3
바로 옆집도 채식식당인데 밥과 반찬, 만두를 팔기 때문에 국수 하나로 부족하다면 옆집에서 만두를 주문해 같이 먹는 것이 좋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던 중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있는 가게 앞의 메뉴를 보는데 두유아이스크림이라기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비건 가게였다! 체인점이라 타이베이에 매장이 몇 군데 있고, 비건이 되고 처음으로 먹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었는데 적당히 달고 담백하면서 부드러워 감동적이었다. 다양한 맛의 두유와 요거트도 판매. (二吉軒豆漿 Soypresso)
二吉軒豆乳 仁愛店 106, Taiwan, Taipei City, Da’an District, Section 4, Ren'ai Rd, 390號
대만에 가기 전에 두 번이나 추천받은 나이스크림. 이탈리아 사람이 차린 비건 젤라토 가게로 버블와플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이탈리아 사람은 어딜 가도 젤라토, 피자, 파스타 만들어서 팔면 되니까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내가 원하는 건 피스타치오 향 아이스크림이라는 걸 깨달았고, 딸기맛 아이스크림은 상큼하고 맛있었지만 버블와플에 비해 아이스크림의 비율이 적어(두 스쿱) 아쉬웠다.
Nice Cream, No. 6號, Alley 40, Lane 181, Section 4, Zhongxiao E Rd, Da’an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6
또 다른 소프트아이스크림 가게 소문을 듣고 갔다가 반 접은 김밥도 비건 닭알, 비건 햄 등 모두 비건이라는 말을 듣고 반 접힌 김밥과 팥맛과 호지차맛 반반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한국의 김밥이 얼마나 먹기 편하고 맛있는지 생각했다. 다른 후기를 보니 이 집 아이스크림 맛은 정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Ice Gyaru 霜淇淋專門店, No. 10-1號, Section 1, Heping E Rd, Da’an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6
대만인 친구가 찾은 CNN추천 채식 뷔페. 비건인 메뉴엔 全素표시가 되어있는데 요리는 대략 절반 조금 넘게 비건이었고, 디저트는 몇 가지 빼고 젖과 알이 들어가지만 비건 아이스크림 6가지에 스쿱도 비건 논비건 따로였다. 매장이 크고 전부다 비건은 아니었지만 음식종류가 많아서 다양한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다. 제한시간이 있는 뷔페도 많다던데 이곳은 시간제한이 없다.
果然匯 台北明曜店 Fruitful Food Taipei Mingyao Branch, 106 대만 Taipei City, Da’an District, Section 4, Zhongxiao E Rd, 200號12樓
대만에서 꼭 맛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훠궈, 딤섬, 펑리수, 버블티, 취두부... (취두부는 안 튀긴 거 한번, 튀긴 거 한번 먹어봤는데요. 이제 안 먹어보려고요...) 타이베이엔 채식훠궈집도 있다. 여러 가지 메뉴판 중 첫 장의 채수의 맛과 밥/면만 선택하면 여러 가지 두부와 채소를 넣고 끓여서 가져다준다. 시원한 보리차와 동과차도 맘껏 마실 수 있다. 개개인이 선택한 채수로 일인용 냄비에 갖다 줘서 혼자가도 좋을 것 같다. 도시락이나 튀김종류도 주문 가능! 채수엔 마라맛, 김치맛도 있음
圓和素鍋 養身素食小火鍋 Yuanhe Vegetarian Hotpot, No. 47號, Changji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3
마라맛 훠궈를 먹으니 달고 시원한 것이 생각났다. 소이프레소는 너무 멀어서 그 근처 빙수와 또우화 가게에 갔다. 빙수는 얼음을 갈고 토핑을 올리는 것까진 비슷했는데 마지막에 흑설탕물을 끼얹어서 흑설탕맛 빙수가 되어버렸고, 또우화는 연두부에 토핑, 설탕물이나 두유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보통은 설탕물을 선택한다던데 두유를 선택해서 단녹두가 들어간 콩파티가 되어버렸다. 흑설탕물 대신 두유를 넣으면 빙수가 더 맛있을 것 같지만 대만에선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지만 요청하면 해줄 거라고 했다. 아 이 집은 두유가 약간 불맛이라고 하나 그런 향이 나는데 대만 두유는 그런 향이 나는 것과 안 나는 것이 있다고 한다.
延三夜市豆花嫂, No. 25-2號, Section 3, Yanping N Rd, Datong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3
펑리수.
처음 타이베이에 들어가서 정말 할 것이 너무 많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돌아다녔으나 비건 펑리수 파는 빵집에 가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시판되는 펑리수엔 전부 젖과 알이 들어있어서 마트에 파는 그 다양한 펑리수를 다 뒤져도 비건은 없었다. 약 십 일간 다른 도시를 돌다가 타이베이에 다시 갔을 때 펑리수와 비건 빵에 대한 갈증은 폭발직전이었고, 인혜 님 유튜브로 본 빵집에 들어가 비건 표시가 된 여러 가지 빵과 진열된 비건 펑리수를 쓸어 담았다. 빵은 대체로 달고 부드럽고 카레맛앙금빵을 제외하고 전부 맛있었다. 그리고 펑리수... 뭐죠? 이걸 왜 지금 먹었죠? 이걸 왜 전국에서 팔지 않는 것이죠? 진짜 너무 맛있어서 할 말을 잃을 정도... 이거 사러 다시 타이베이 가고 싶고요.
卡帛素食烘培 (育達店) Kapok Vegetarian Bakery & Cafe, No. 33號, Section 5, Nanjing E Rd, Songshan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5
참나, 뒤늦게 타이베이에 다른 비건 빵집이 두 곳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카폭은 채식빵집이었는데 비건 빵집이라니!!! 비건 빵집 가야 되니까 다시 갈게요. 타이베이.
1) 綠帶純植物烘焙 GREEN BAKERY, 105 대만 Taipei City, Songshan District, Alley 8, Lane 36, Section 5, Minsheng E Rd, 64號1樓
2) 一禾堂麵包本舖 YIIHOTANG, No. 323號, Fuxing N Rd, Songshan District, Taipei City, Taiwan 105
그 외.
타이중 시내의 채식홍콩딤섬가게. 대만은 대부분 점심운영 끝나고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 저녁때 다시 오픈한다. 저녁 오픈시간 맞춰서 갔더니 비건 메뉴를 설명해 주셨다. 딤섬 먹기 완료. 채식 딤섬은 당연히 타이베이에서도 먹을 수 있음.
Bao Da Cantonese Dim Sum Restaurant, 402, Taiwan, Taichung City, South District, Section 1, Fuxing Rd, 359號愛買2樓
일월호 근처 수리라는 작은 동네에서 밥 먹고 발견한 카페 85도씨(체인점)에 흑당버블두유를 판다. 쫀득하고 부드러운 타피오카가 맛있었다. 버블이 달기 때문에 버블티를 시킬 땐 당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
아리산 우롱차밭. 찻잎을 사려고 갔는데 차밭주인이 중국어-영어, 중국어-한국어 번역기로 설명해 주며 우롱차와 홍차를 우려내주었다. 우롱차는 다른 것들보다 덜 쓰고, 홍차도 맛있고, 차밭도 예쁘고 2월 말에 가면 벚꽃과 차밭이 정말 예쁘다고.
中興製茶廠Alishan Oolong Tea Farm, 605, Taiwan, Chiayi County, Alishan Township, 238之3號
참고로 대만친구가 추천한 맛있는 차 브랜드
지우펀
땅콩아이스크림. 얇게 부친 전에 땅콩엿을 갈고, 아이스크림과 고수를 넣고 돌돌 말아서 잘라준다. 땅콩엿이 너무 달고 끈적끈적했다. 그 옆에서 먹고 있는데 한국 사람이 오더니 안녕하세요 하니까 판매자분이 바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응대하셨다...
A-Jou Peanut Ice Cream Roll, No. 20號, Jishan St, Ruifang District, New Taipei City, Taiwan 224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 개의 채식식당이 있다. 한 곳은 지우펀에서 유명하다는 대만식 찹쌀만두로우위엔을 비건 버전으로 파는 가게와 빙수, 국수, 밥을 파는 가게. 찹쌀만두를 비건으로 맛볼 수 있는 게 재밌었지만 간식거리 정도였고, 달고 끈적한 딸기빙수를 먹은 가게의 국수는 맛있어 보였다. 원래 지우펀에 타로볼을 먹으러 간다던데 또우화나 빙수 먹을 때 타로볼을 토핑으로 올릴 수 있어서 지우펀에서 타로볼을 안 먹은 것에 그리 큰 아쉬움은 없다.
金枝紅糟素肉圓, No. 63號, Jishan St, Ruifang District, New Taipei City, Taiwan 224
로우위엔 비건 버전과 국수, 비건 미트볼
慈鴻素食, No. 65號, Jishan St, Ruifang District, New Taipei City, Taiwan 224
빙수와 국수, 밥
그 유명한 아메이 차관. 채식메뉴도 있다는데 늦게 가면 차와 다과만 가능하다. 다과는 비건이라고 했다. 차 마시는 법을 보여주고 테이블 옆 작은 불 위의 주전자의 물을 계속 리필해 준다. 다과도 차도 맛있고 내부 인테리어나 다도 세트도 예쁘다. 기다려서 들어가게 될 확률 높음.
A-MEI Tea House, 224, Taiwan, New Taipei City, Ruifang District, 市下巷20號
주말에 사람이 미어터져서 지옥펀이라고도 한다는데 지우펀에 있는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안개가 껴서 잘 안 보이고 평일이라 사람이 불편할 만큼 많진 않았다. 버스 끊길 때가 되면 사람들이 다 돌아가는데 가게들도 문을 닫는다. 그래도 빨간 등은 켜져 있다.
출국날에 떠먹는 국수를 먹은 다음 타이베이 중앙역 근처의 만두집에 가서 작은 만두 열개, 세 가지 맛 만두 두 개씩 포장해서 공항열차를 탔다. 그리고 공항에서 만두를 먹었는데 너무 짜지도 않고 적당히 맛있었다. 다음에도 똑같이 출국하기 전 만두를 사서 공항에서 먹고 싶다.
上頂皇家素食水煎包(北車店), 100 대만 Taipei City, Zhongzheng District, 忠孝西路一段72之30號
한국여권은 90일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 다음엔 90일 꽉 채워서 더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