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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Nov 22. 2024

[영국] 6년 만의 브라이튼

런던에 살다 육로로 한국에 들어간 이듬해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이 번졌다. 영국에 돌아가기까지 5년이 걸렸다. 독일기차는 밥 먹듯이 지연되고 유럽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기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외진 곳에 있는 명상센터와 지인의 집에 가기 위해 독일에서 영국으로 로드 트립을 떠났다. 독일에서 한밤, 프랑스에서 한 밤을 잤다. 페리가 떠나는 칼레로 가는 길에 비건 옵션이 있는 태국 길거리음식 식당이 있는 덩커르크에서 잠시 쉬었다. 직원은 손님이 불어를 알든 모르든 개의치 않고 불어로만 응대했고 음식은 짜고 기름졌다. 그저 배를 채울 목적이라면 차라리 바게트와 과일, 채소를 사 먹는 편이 낫겠다.


칼레에서 페리를 타고 도버에 도착했다. 해피카우 앱으로 찾아보니 명상센터로 가는 길에는 비건 식당이 별로 없었다. 대학생이 많은 것만 믿고 옥스퍼드에 멈췄다. 놀랍게도 비건 식당이 많지 않았지만 다행히 대부분 식당에 비건 옵션이 있었다. 아시아 음식 체인점인 와가마마에 들어가 비건 옵션인 고추장두부덮밥과 작은 양념종지에 담긴 김치를 먹었다. 고추장소스가 묻은 바삭한 튀김옷 안에 보드라운 순두부가 있었다. 밥은 조금 질었지만 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따뜻한 녹차로 입가심하고 동네를 잠시 돌아본 다음 밥값만큼 비싼 주차시간이 끝나기 전에 다시 길을 떠났다.

고추장두부덮밥

와가마마 https://www.wagamama.com


유럽 장기코스 센터인 담마파다나에서 구수련생 10일 코스를 봉사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주방봉사자가 인도출신, 여자 코스매니저는 미얀마출신이었다. 센터에는 식물성음료가 두유, 오트밀크, 코코넛밀크 세 가지나 있고, 메인 요리와 디저트는 전부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센터에서 아침을 먹은 첫날, 비건 스프레드를 바른 토스트와 오트밀크를 넣은 홍차를 마시는데 별것도 아닌 것들이 어이없게도 너무나 맛있었다. 10일 코스가 끝나고 브리스톨과 바스 사이 어딘가 외진 곳에 있는 타이니하우스에서 푹 쉬었다. 오는 길에 장본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고, 긴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모닥불을 피웠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은 집

영국은 큰 도시나 학생이 많은 동네가 아니면 슈퍼마켓에 비건 제품이 많이 없다. 아주 대형 슈퍼마켓에 가야 비건 코너가 조금 있는데 비건 제품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어 알아서 찾아야 한다. 독일은 시골 슈퍼마켓도 크기가 큰 편이고 비건 제품이 꽤 있다. 큰 도시로 갈수록 비건 코너는 점점 커져서 온갖 제품을 찾을 수 있다. 한 번은 샴푸바를 사려고 수퍼드럭에 갔는데 샴푸라고는 전부 플라스틱 통에 든 것뿐, 제로웨이스트 가게에서 산 샴푸바는 머리를 감고 나면 불쾌하게 끈적거렸다. 독일 드럭스토어엔 샴푸바도 여러 종류에 머리를 감고도 보송보송한 것도 있는데... 

대형 슈퍼마켓의 비건 간식코너
아스다의 비건 냉장코너

안락하고 평화로운 삼일을 보낸 뒤, 도착한 브라이튼의 길거리와 바닷가에는 갈매기와 사람들이 많고 월세와 물가가 비쌌다. 밖에 나와 있는 식당메뉴를 보면 비건 옵션이 많고, 디저트 가게의 구움 과자도 절반은 비건인데 이상하게 시내의 슈퍼마켓에는 비건 제품이 별로 없었다. 아시아 슈퍼마켓을 찾으면 규모가 작고 한쪽에 테이블 몇 개를 두고 음식을 같이 파는 게 흔했는데, 그중에는 비건 한식당 겸 식료품점도 있었다. 호브에 걸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엄청나게 큰 아랍과 아시아의 식재료, 각종 채소와 과일을 파는 슈퍼마켓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엔 숨겨진 보물 같은 비건 코너가 있었다!

타지의 비건 코너

Taj the Grocer

98-99 Western Rd, Brighton and Hove, Brighton BN1 2LB, United Kingdom


브라이튼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earthling Ed가 차린 비건 피시 앤 칩스 가게, 노캐치였다. 노캐치는 내가 영국을 떠나고 난 다음에 생긴 곳이라 멀리서 인터넷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첫날 숙소에 짐을 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갔다. 주말도 식사시간도 아니라 그런지 매장은 한산했다. 기본 피시 앤 칩스와 칼라마리를 포장했더니 튼튼해 보이는 종이 상자에 담아주었다. 상자를 살짝 열어 식초를 뿌린 다음 길을 건너 자갈바닷가로 걸어가 앉았다. 바삭하고 고소하고 부드럽고 쫄깃한 튀김이 조금 올라간 파채랑 레몬즙과 잘 어울렸다. 양도 많아서 더 많이 주문했으면 배가 빵빵해질 뻔했다.


피시앤칩스
칼라마리(오징어튀김)

No Catch

127a Kings Rd, Brighton and Hove, Brighton BN1 2FA, United Kingdom


바닷가 근처에는 비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도 있는데 주말에만 문을 연단다. 주말에는 런던으로 갈 예정이라 아쉽게 못 먹는 줄 알았는데 그 가게 옆, 평일에도 영업하는 가게에도 비건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가 있었다. 브라이튼 바닷가 주변엔 피시 앤 칩스와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넘친다. 중간사이즈를 주문했다. 아이스크림보다는 훨씬 가벼워 휘핑크림을 얼린 것 같았다. 굳이 다시 사 먹고 싶은 맛은 아니었는데 여기저기에 세워진 강아지 아이스크림도 판다는 광고판을 보며 비건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건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소프트아이스크림

V360 vegan café - Whippy Ice Cream and Gelato - 100% plant based

112, Kings Road Arches, Brighton and Hove, Brighton BN1 2FN, United Kingdom 


런던의 세젤맛 비건 화덕 피자집 푸레짜의 본점에 가고 싶었는데 친구의 강력추천으로 퓨전 아시아 비건 식당에 갔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에이포용지에 인쇄된 메뉴를 읽는 동안 이곳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자카야를 흉내 낸 것 같은데 자리도 불편하고 인테리어도 어딘가 엉성했다. 모든 것이 짜 보이는 메뉴에 맨밥은 없고, 직원은 접시가 코딱지만 하니 세 명이면 10개는 주문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당장 푸레짜로 옮기고 싶었지만 예약까지 한 친구의 정성을 생각해 몇 개를 주문했다. 부정맥 때문에 술도 커피도 안못 마시고, 탄산도 즐기지 않는 나는 그냥 물을 마시면 된다고 했다.


잠시 뒤 손바닥만 한 접시에 아기자기한 퓨전 아시아 음식들이 나왔다. 이곳은 술집이고, 음식은 술안주였다. 술을 마시면 미각이 흐려지고, 맥주가 당기도록 음식이 짠 독일의 외식이 생각났다. 작은 음식들은 전부 짰다. 특히 버섯 꼬치는 소금을 먹는 것처럼 짰다. 밥이라고 시킨 것도 소스범벅이라 역시 짰다. 저 짜고 작은 걸 한 접시에 만원 넘게 팔고 있다니. 다행히 맨밥을 주문할 수 있었다. 맨밥과 물을 마셨지만 계속 입안이 마르는 것 같았다. 이미 시킨 걸 다 먹고 마침내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하고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경험이었다. 

세븐시스터즈 하얀 절벽과 푸른 언덕

18년 초에 나는 혼자서 브라이튼 근교에 있는 세븐시스터즈 하얀 절벽 위 바람이 세차게 부는 푸른 언덕을 걷고 걸어 이스트본까지 갔다. 브라이튼을 떠나는 날 아침 주룩주룩 내리던 비는 우리가 세븐시스터즈에 가까워졌을 때 멈춰주었다. 비 때문인지 사람이 적었다. 어쩐지 절벽 위의 초록잔디의 숱이 적어진 것 같았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 자갈바닷가를 걷다가 늦기 전에 다시 올라가 주차장 옆 카페에 들어가 그새 길어진 줄에 서서 뭐가 있나 둘러봤다. 과일로 만든 강아지 아이스크림, 같은 브랜드의 사람용 비건 아이스크림... 소시지롤과 스콘도 비건 옵션이 있었다. 민트초코아이스크림 작은 컵을 먹고 런던으로 향했다.

강아지 아이스크림
사람용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Saltmarsh Farmhouse & Cafe

Seven Sisters Country Park, Exceat Farmhouse, E Dean Rd, Seaford BN25 4AD, United Kingdom


도넛타임의 레드벨벳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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