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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일살이

베를린에서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요?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by 미지수

요즘 베를린이 핫하다. 요즘이라기엔 벌써 십 년도 넘게 그렇다. 때문에 독일 내외에서 베를린으로 이사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IMG_7581.jpeg 일요일 중고 플리마켓

베를린은 매우 비건 친화적이고 환경 친화적이다. 유기농 슈퍼마켓과 중고매장이 많으며, 주말에는 중고 플리마켓이 곳곳에 열린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에코 페미니스트 페스티벌에 간다!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가 섞여있고, 진보적이며 다양성을 존중한다. 한껏 꾸미거나, 아무 꾸밈도 하지 않거나,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꾸밈이나 특이한 겉모습이 공존하며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이다. 문화생활의 기회가 많다. 지난주에는 이방인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컬렉티브 전시를 봤다.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하며 한국 대사관이 있다.

IMG_7483.jpeg 대선 투표하러 간 베를린 한국 대사관

독일 내에서 살아야 한다면 나에겐 베를린이 최적이다. 누구는 집을 찾는데 몇 개월이 걸렸고, 누구는 몇 년이 걸렸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서블렛을 전전한다. 이런 흉흉한 입소문들에 베를린을 포기하려다 지인의 플랏(아파트로 번역되지만 4층 내외의 다가구 건물의 집을 의미)에서 서블렛을 하게 되고 우리도 모르게 베며들었나... 베를린에서 집 구하기라는 고난도 모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같은 동, 한 단지에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집들로 가득한 한국의 아파트와는 다르게 독일의 플랏은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같은 건물의 집들이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가지고 있다. 발코니가 있는 집과 없는 집, 창문의 모양이 다른 집들이 한 건물에 있다. 물론 비슷비슷한 혹은 똑같은 집들로 가득한 건물도 있다. 특히 신축이고 10층 이상인 건물들인데 보통 그런 건물이 집 찾기 앱에 올라오면 WBS라는 게 필요한데 그것은 저소득층임을 증명하는 서류로 저소득층만 이사 갈 수 있는 집들이 꽤 많이 보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건물에는 한 층에 세 가구가 있는데 맞은편 집은 우리보다 방 하나가 더 많고, 가운데 집은 방 하나가 적다. 위층과 아래층은 같은 구조지만 땅층(우리의 1층 = 독일의 땅층 혹은 0층)에는 가운데 작은 집 대신 뒷마당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 한국 2층이 독일 1층이고 한국 3층이 독일 2층이다. 지금 집은 독일 3층이라 한국 4층을 올라야 한다. 유럽 특유의 오래된 건물들엔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천장이 시원하게 높고 창문이 길고 커서 유럽 갬성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겨울엔 너무 춥다.

IMG_7620.jpeg 지금 건물의 귀여운 뒷마당

뭣도 모르는 내 생각으로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이 따뜻한 나라에 갔다가 높은 천장에 반한 독일인들이 유행시킨 것 같은데 독일 겨울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엔 참 예쁘고 시원하지만 오래되었기에 난방 효율이 떨어지고 창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지금 집은 오래된(백 년 이백 년) 건물인데 세탁기를 돌리면 건물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려 깜짝 놀랐다. 특히 우리 집이나 윗집의 세탁기가 탈수를 할 때면 식기들이 찰랑찰랑 소리를 내고 무서울 정도로 흔들린다.


이 집의 세탁기는 최대 탈수가 1400인데 원 세입자인 친구가 1400으로 하면 식기들이 찬장에서 걸어 나온다(?)며 1000을 넘기지 말 것을 당부했다. 흐리고 추운 겨울에는 1000으로 빨래를 탈수라고 나면 집안에 널어둔 빨래가 며칠을 두어도 빠싹 마르지 않고, 말라도 꿉꿉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건조기도 없지만 건조기가 들어갈 자리도 없다. 대부분 플랏 1 가구에 1 지하실이 있는데 특히 오래된 건물의 지하실은 어둡고, 쥐들이 다니고,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오르고, 곰팡이가 피고, 거미줄이 끼는... 그런 공간이다...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적어도 몇 년은 지낼 곳을 찾아야 하므로 밝고 쾌적하고 여유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화장실을 환기시키고 빛이 들어올 창문, 춥고 어두운 겨울을 버틸 욕조, 식물을 키울 발코니가 있으면 좋겠다. 독일은 새집에 주방이 아예 없어 세입자가 주방을 해 넣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베를린은 주방이 있거나 전 세입자가 해 놓은 주방을 다음 세입자한테 파는 게 흔해 보인다. 문제는 그런 주방이 심각하게 못 생겼거나 전 세입자가 사기 치는 정도의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을 예로 들자면 아주 작고 별거 없는 주방에 4천 유로(약 6백2십만 원) 요구. 직접 인테리어 했고 가구도 떠넘기고 싶으므로 천만 원 넘게 요구. 직접 인테리어를 했고, 비싼 가전기기를 포함해 6천 유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인테리어 값을 왜 집주인이 아닌 다음 세입자에게 요구하는지, 자기들이 원하는 인테리어와 가구를 사놓고 왜 다음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며 떠넘기는지 의문이지만 집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라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경우가 자꾸 올라오는 현실이 답답하다.


이처럼 집 구하기에 절박한 사람들이 많으니 양아치들이 판을 친다. 집 구하기 앱부터가 양아치다. 집을 내놓는 사람이나 회사도 돈을 내야 하고, 집을 구하려는 사람도 돈을 내야 한다. 돈을 내지 않으면 메시지도 보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내면 이 집 공고를 본 사람이 몇 명, 메시지 보낸 사람이 몇 명이고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올라오는 공고 대부분은 당장입주란다. 공고를 올리면 몇 분~몇 시간 내에 지원자가 수백 명이 몰리므로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집을 보러 가도 줄을 길게 서서 잠깐 볼 수 있다.


주택 여러 채를 사들이고 빈집으로 방치했다가 몇 년 뒤 오른 가격에 팔아 돈을 버는 회사들이 많다더니 주택난인데 집 짓고 리모델링하는 노동자가 부족한 상황이란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양심이 없는 건지 리모델링도 안 된 걸 집이라고 올려놓고 뻔뻔하게 구는 작자들도 있다. <무한한 가능성! 아이디어가 빛나는 분께 추천! 잠재력 있는 집!> 같은 말로 포장해 놓은 공고에 들어가 보면 여기저기 뜯겨있고, 바닥이고 벽이고 난리가 났고, 심지어 화장실이나 주방도 엉망인... 아니, 누가 리모델링해야 되는 집을 그렇게 말해요...

IMG_7546.jpeg 실제 앱에 올라온 <무한한 가능성>
IMG_7547.jpeg 무한한 가능성 + 창문없는 슬픈 화장실

인기 있는 동네의 한복판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정말 귀신 나올 것 같은 수준의 것을 양심 없이 올린다. 어찌나 좁은지 한 사람이 오갈 공간뿐인 백 년 묵은 때가 가득한 화장실에, 그래피티 연습을 해놓은 발코니까지 엉망진창인 그런 걸 월세 1000유로(약 1백5십만 원)가 넘는 가격에 올린다. 몇몇은 리모델링을 직접 하면 금액을 보상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말도 없이 리모델링이 꼭 필요한 집을 올려놓고 2년 뒤에 나가라고 한다.(독일은 보통 무기한 계약이며 3개월 전 통보로 언제든지 해지 가능함)

IMG_7554.jpeg 월 1000유로 준다그래도 살고 싶지 않은 곳...

지금까지 연락을 받고 집을 보러 다섯 군데쯤 다녀왔는데 전부 성에 차지 않아 우리가 먼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나왔다. 그중 인테리어와 가전기기 합쳐서 6천 유로 달라는 곳은 동네와 건물자체가 이미 너무 별로라 집 앞까지 갔다가 들어가지도 않고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되돌아갔다. 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집, 화장실에 창문이 없는 집, 화장실 창문이 무슨 쓰레기가 있는 죽은 공간인 집 등이 있었다. 일단 보러 가서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것인가.


선호하는 지역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중심부(미테)가 아니면서 조용하고, 슈퍼마켓과 헬스장이 가깝고, 달리기 하고 날 좋을 때 갈 수 있는 초록 땅이 많은 동네, 아시아슈퍼마켓이 가까우면 더 좋고. 집에서 시내 중앙까지 45분 내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잘 되어있는 곳이라면 조금 멀어도 상관없다.


본격적으로 집 구하기에 뛰어든 건 아직 한 달도 안 지났고, 서블렛도 약 2달이 남았다. 종종 과연 이곳에서 우리가 만족할만한 집을 주어진 시간 내에 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집 공고가 올라오면 재빨리 확인하고, 연락하고, 집을 보러 가고, 새로운 동네를 알아가는 일이 게임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남의 집 구경하는 것과 새집을 우리 취향대로 꾸미는 상상을 하는 건 즐겁다. 어차피 해야 될 거,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뭐.

IMG_7587.jpeg 꿈의 플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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