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생존을 위한 육식과 현재의 무분별한 육식
아일랜드로 여행을 다녀왔다.
아일랜드는 깨끗하고, 인구수가 적으며 사람들은 친절하다. 어딜 가나 초록 초록하고 푸르르다.
내가 갔던 팔월말의 날씨는 여름이라 햇볕이 따뜻했지만 약 오분에서 십 분 간격으로 비가 내리다가 멈추고 해가 다시 뜨기를 반복하는 날이 많았다. 도시가 아닌 외곽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집에 목장이 딸려있는 것처럼 목장이 많았다. 목장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거나, 풀밭에 모여서 앉아있었다.
여행하는 내내 아일랜드 출신인 친구들과 같이 지냈다. 아일랜드 사람들과 같이 다니고,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일랜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식생활이었는데, 목장의 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환경 때문인지 그들의 음식엔 유제품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나 홍차에 소젖을 넣어서 마시고, 빵에 버터를 바르고, 닭의 알과 가공된 동물 시체를 구워 먹는다. 감자튀김을 거의 매일 한 번씩은 먹는 것 같고, 식당에 가면 스테이크 샌드위치, 스테이크, 피시 앤 칩스, 동물 시체 스튜를 먹고, 가족들과 모이면 바비큐를 하고, 식사가 끝난 뒤 소젖과 버터를 잔뜩 넣고 만든 디저트를 먹는다. 하루의 중간중간 홍차를 마실 땐 역시 소젖을 넣고, 소젖이 가득 들어간 초콜릿과 과자를 함께 먹는다.
어떤 가족분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었다. 거실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한 거실은 거의 동물 박제 전시장인 양 죽어서 박제된 동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산양 등 목이 잘려 머리 부분만 벽에 걸려있는 큰 동물의 시체, 족제비, 다람쥐, 새등 몸 전체가 박제된 작은 동물들, 덩그러니 잘려서 벽걸이로 장식되어 있던 어떤 말의 꼬리. 바닥에 깔려있는 소의 가죽 등..
그 집은 말 두 마리와 양 세 마리 그리고 작은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작은 개는 집 밖에서 키우고 있고 진드기와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가족들이 직접 동물들을 돌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동물병원에는 어지간하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막내는 작은 개를 장난감 다루듯이 했고, 작은 개는 그게 익숙하다는 듯이 가만히 안겨 눈만 껌뻑였다.
집안에는 각종 말 그림, 말 사진, 말 장식품들이 여기저기에 걸려있었다. 말 주인은 말에게 휴가를 준다고 어딘가로 며칠 동안 보낸다고 했다. 그는 말을 굉장히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른 동물의 시체를 바비큐 해서 먹었다.
개를 사랑하면서 돼지와 소를 먹었던,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가죽제품을 사용하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먹는 소젖은 곡식이 아닌 풀을 먹고 자란 소의 젖이라고 한다. 그래서 북미나 다른 곡식을 먹으면서 사육된 공장식 축산 소들의 소젖 가공품보다 맛이 훨씬 좋다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축들을 농장에 풀어서 키우며 풀 뜯어먹는 소를 항상 보며, 그 소들의 젖이나 살점을 거의 매일같이 먹는 환경이고 어릴 때부터 소젖 가공품을 거의 물처럼 익숙하게 먹던 사람들을 직접 보니 이제야 왜 어떤 서양사람들은 유제품을 먹는 것을 멈추는 것이 어려워 비건이 되기가 힘들다고 하는지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닭알과 멸치육수와 비슷할까?
다행히 식당에 가서 비건이라고 말을 하면 이 감자튀김은 바다 동물이나 육지동물의 살점과 같은 기름에서 튀기기 때문에 비건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을 할 정도로 비건에 대한 인식은 한국보다는 높았다. 적어도 이상한 사람,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친구의 가족들도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최대한 존중하고 식당에 갈 때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챙겨주었다.
약 3년 만에 다시 만난 제스는 캐나다 중부 북쪽에 있는 옐로나이프 근처에 있는 조금 더 작은 도시에서 원주민들과 에스키모들을 위한 정부에서 3년간 일을 하면서 로비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내가 묻기도 전에 로비는 추운 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 시체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옐로나이프처럼 겨울에 영하 3-40도까지 내려가는 곳에서는 겨울에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상황이고 마땅히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동물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육식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지.
아이리쉬 친구들이 나고 자란 북아일랜드는 겨울에 눈도 많이 오고 여름 몇 개월을 제외하면 계속 비바람이 불고 춥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이 육식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육식에 대해서 전혀 불만이 없다. 하지만 내가 비건이라는 이유만으로, 비건의 존재만으로 그는 나에게 변명 같은 설명을 했다.
제스는 동물이나 인간이나 얼마나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지금 먹는 것과 이다음에 먹을 것을 고민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인간의 문화라는 것도 결국엔 먹는 것을 찾는 과정이나, 먹는 것을 구하고 난 뒤 남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제스가 있는 그 지역의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원래 그 지역의 원주민들은 카리부라는 사슴을 사냥해서 겨울을 난다고 한다. 카리부 한 마리를 사냥하면 한가족이 일 년 동안 먹고 사용하며, 그 카리부의 모든 부분을 하나도 남김없이 사용해서 먹고, 입고, 뭔가를 만든다고 한다. 원래는 사냥을 준비하고 사냥을 하러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을 온 가족이 함께 했다고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 남자 어른이 사냥을 하면 여자 어른은 그 카리부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방식으로 해부를 하고 다 같이 부분 부분을 나눠서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겨우내 보관을 하기 위해 시체의 부분을 나누고, 살점은 얇게 저며서 말려 장기간 보관하기 쉬우며 가지고 다니면서 먹기 편하게 만들며, 또 가죽으로는 구슬 장식이 달린 원주민 전통신발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광산업이 그 지역 근처에 들어와서 채굴을 시작한 뒤로는 "서구 문명"이 들어왔고, 소음과 자연파괴에 카리부들의 개체수가 줄어들어 캐나다 정부는 카리부의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하여 원주민들에게 사냥을 제한시켰고,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문명의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온 가족이 함께하던 사냥은 헌터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헌터는 더 이상 전통의 방식이 아닌 최대한 빨리 끝내는 방법으로 사냥을 하고 상대적으로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버려서 쓰레기로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부인들은 서구 문명의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어오는 가장이 되었지만 더 이상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진 남편들은 할 일을 잃은 채,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술만 마시고 부인에게 가정폭력을 한다.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부인은 아이들에게 가정폭력을 한다.
나가서 일도 하고, 음식도 해야 하는 부인들은 원주민 전통 카리부 가죽신을 만들 시간은커녕 요리를 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슈퍼마켓에 가서 공장식 축산 동물 시체를 사 오거나 열을 가하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미리 만들어져 있거나 가공된 음식을 산다. 온 가족이 함께하고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사냥, 해부, 음식 저장, 가죽신 만들기의 전통과 역사는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고 제스는 이렇게 식습관이 급격하게 바뀌는 세대를 직접 목격하는 것은 너무 충격적이고 흥미롭다고 했다. 원주민들이 "서양의 문명화된 음식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 전세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던 2형 당뇨, 각종 심장병과 성인병, 비만 등의 질병이 발생, 급격하게 증가했고 다음 세대의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이미 카리부를 먹었던 그 전에는 이런 육식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 별로 없었지만 최근에 공장식 축산의 동물성 재료와 가공식품들을 먹고 난 뒤 질병이 생겼다니? 그럼 그 전에는 도대체 뭘 얼마나 어떻게 먹고살았는지 물어봤다.
전에 제스가 그 지역에 처음 갔을 때, 캐나다 북쪽의 여름은 백야라 키우는 식물들이 아주 쑥쑥 자란다고 한 적이 있었다. 여름에는 여기저기에 자라는 베리류를 따서 먹고, 겨울엔 카리부 한 마리를 사냥해 그 한 마리로 한 가족이 겨울을 나고, 부족한 경우에는 바다 동물을 잡아서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육식을 하긴 했지만 한 가족이 큰 동물 한 마리로 겨울을 나고, 가끔 바다 동물을 먹는 것처럼 육식의 양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많은 것이 이해되었다. 자꾸 육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느니, 옛날부터 육식을 했다고 말하는 그 배경엔 날씨가 추워서 식물이 자랄 수 없고 그래서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야생에서 사는 동물을 최소한으로 살생하고, 죽은 동물을 남김없이 전부 먹고, 입고, 사용하며 먹을 식물이 풍부할 경우에는 굳이 동물을 죽이지 않고 식물을 먹으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런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병들고, 지구가 병드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인간은 끔찍하게 오만방자하다. 식물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시체의 피맛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혹은 재미로 동물을 죽이고 그 시체를 먹는다.
예전엔 야생에서 사는 동물을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어렵게 사냥했지만 지금은 야생의 동물들을 유전자 조작과 호르몬 조작을 해 가축화시킨 동물들을 끊임없이 재생산시키고 학대하고 착취하고 살해한다. 공장식 축산과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동물들을 함부로 물건을 다루듯 대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죽인 동물을 돈만 내면 어디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
예전엔 최소한의 살생과 육식을 했다면 지금은 최대한으로 의식 없이 수백수천 마리를 매일 먹어댄다.
예전엔 살아남기 위해 죽은 동물의 살점, 내장을 비롯한 모든 부산물을 먹고 남은 가죽과 뼈를 입고, 사용했지만 지금은 그냥 맛있다는 이유로, 접하기 쉽다는 이유로, 문화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다 먹으니까, 살코기만을 먹고 내장과 뇌를 비롯한 많은 부분은 버려지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예쁘다는 이유로, 따뜻하다는 이유로,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많은 동물들을 감옥에 가두고 재생산, 착취, 살해한다.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수백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죽어나가고 그들의 살점은 고기로 팔 수 없으므로 버려진다. 인간들에게 비인간 동물은 또 재생산하고 죽이면 되는 물건일 뿐이다.
맛만을 위해 동물을 살해하고 살점만을 뜯어먹기 때문에 내장과 피와 다른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은 버려지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이제 우리는 충분히 살생을 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걱정 없이 건강하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아니 심지어 이젠 그들을 가두고, 재생산하고, 학대하고, 이용하고, 착취하고, 살해하고, 먹고, 입고, 소비한다.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 최소한의 살생만 하던 옛날의 육식을 하던 우리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는 매일매일 대학살을 하고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은 물론 환경까지 우습게 여기며 파괴하고, 인간이 제일 우월하다며 비인간종을 비웃는다.
우리에겐 비인간종을 차별하고, 감금하고, 재생산하고, 학대하고, 착취하고, 이용할 권리도,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유전자 조작을 하며, 지구의 물과 공기와 땅을 오염할 권리가 없다.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육식을 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지금 당장 육식을 멈추고 우리의 지난 잘못을 되돌릴 책임만이 있다. 지금과 같은 무자비한 육식과 비인간 동물 착취가 계속된다면 인간의 종말은 더 빠르고 거대하게 밀려올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끔찍한 동물 착취를, 종차별을 인식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좋다.
건강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동물해방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꾸준하게 실천을 한다면 결국엔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들을 넓혀나갈 수 있다.
고의적으로 저지른 잘못이 아니었어도, 어쨌든 결국 나의 소비와 선택 때문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책임이 있다.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는 건 최악이 아니다. 잘못을 언제라도 인지하고 그 잘못을 멈추기 위해 그 순간부터라도 옳은 선택과 실천을 계속하다 보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