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비건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너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비건을 날 때부터 비건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살면서 비건을 만나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걸까, 비건이라는 단어와 정의를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접한 걸까, 비건이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현재 대부분의 비건인 사람들 중 태어날 때부터 비건이었던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비건은 태어날 때부터 비건이 아니었다. 비건이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랑 똑같은 사람" 혹은 "보통사람" 즉, "고기를 먹는 사람"이었다. 육식주의 세상에 태어나 육식주의에 익숙하고 길들여진 가족에게서 자라났고, 육식주의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듣고, 믿고, 축산업과 낙농업의 지원금을 받은 연구결과에 기반한 영양학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남들도 다 먹으니까, 입으니까, 사용하고 소비하니까, 나도 그랬다.
나를 길러준 가족들은 내가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동물을 먹었고, 그게 몸에 좋다며, 그걸 먹어야 힘이 난다며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동물의 털이나 깃털로 만들어진 옷과 이불이 따뜻하고, 진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이 비싸고 좋은 것이고, 동물실험을 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말고 광고에서 좋다고 말하는 제품을, 입소문이 난 제품을 소비하라고 했다.
내가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과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내가 나고 자란 한국 사회는 남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한다면 무작정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싫어한다.
"그냥 메뉴는 다 같은 걸로 통일하자. 그래야 빨리 나오니까."
"음식 가리지 말고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나는 그 사회에 적응했다. 복날이나 주말,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날엔 동물 시체를 먹었다. 그게 맛있는 음식이고, 몸에 좋고, 힘이 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따로 알아볼 생각 따윈 하지 않았고, 생각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고기라는 것이 동물의 살점인 것은 알고 있었다. 동물의 살점을 우리가 먹기 위해서는 동물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겠지만 그렇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새로운 음식, 그동안 맛보지 않았던 동물의 시체까지 그냥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먹어보았다. 뭐든 안 가리고 잘 먹던 나에게도 단 한 가지 죽어도 먹고 싶지도 않고 먹지 않을 것이 있었다.
개고기.
할아버지 댁에 가면 큰 개가 몇 마리 있었고, 가끔 강아지들이 있었다. 강아지들은 너무 사랑스러웠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잠깐 키우던 병아리 두 마리를 제외하면 나에게 그나마 제일 친근하고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던 동물이었다. 어렸을 적, 일 년에 한 번 정도 복날에 가족들은 할아버지 댁에 모여서 개고기를 먹었다. 나는 가족들이 먹는 그 개가 할아버지께서 키우던, 그리고 가족들이 직접 죽였다는 그 개를 먹는다는 것이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아기 때부터 키우던 개를 직접 죽여서 먹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개고기는 죽어도 안 먹겠다고 난리를 치던 어린 나는 다른 동물들은 별말 없이 먹었다. 다른 동물들은 할아버지가 키운 게 아니었다. 내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그 동물들은 우리가 먹기 위해서 키운다고 그랬다. 그때의 나에게 그 동물들은 가게에서 사 온 고기이지 강아지처럼 아기동물이었고, 살아있던, 죽임을 당한 동물의 시체가 아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게 되었고, 가족들은 더 이상 개를 잡아먹지 않았다. 나는 계속 다른 동물들을 먹었다. 고기라는 이름으로, 햄버거, 삼겹살, 치킨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들은 음식일 뿐이지 한 때 살아있었던 동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십 년이 넘게 동물을 먹고, 입고, 쓰고, 구경거리로 소비했다. 동물을 괴롭히고 죽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었다. 나는 그냥 음식, 의류, 생필품, 오락거리를 소비했을 뿐이다. 나는 동물을 사랑했고, 개고기를 먹거나 동물학대를 하는 사람들을 욕했다.
점점 자라면서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다.
"고기를 안 먹어? 왜? 맛있는데.."
"먹고 싶은데 참느라 힘들겠다."
"나도 동물 사랑하는데, 근데 너무 맛있어."
그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나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이 그냥 동물을 사랑해서 안 먹는 줄 알았다.
처음으로 비건인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비건인걸 자랑스러워했다. 비건이 뭔지도 자세히는 몰랐었지만 동물도 안 먹고, 소의 젖이랑 닭의 알이나 바다 동물도 안 먹는 사람이라고 하면 말라깽이에 힘도 없을 줄로만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은 생채소랑 과일만 먹는 줄 알았다. 그녀는 비건 도넛, 오레오, 비건 피자 등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걸 먹었다. 나는 그렇게 사는 건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한 번은 뉴욕에서 다시 만난 그녀와 비건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다.
솔직히 난 비건 음식이 도대체 뭘 어떻게 만드는 건지 잘 몰랐다. 그때까지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걱정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걸 먹어보고 비건은 뭘 먹나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냥 나에게 비건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난 스테이크를 먹었고,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몇 년 후, 새로 사귄 친구가 비건이었다. 그녀는 비거니즘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비건 옵션이 있는 곳에 가면 된다고 했다. 여러 명이 만나는데 할랄과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들을 미리 알아내서 골라서 갔다. 미리 알아봐야 한다는 게 약간 귀찮긴 했지만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곳에 가는 게 다 좋은 거니까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비건이 아닌 메뉴를 선택했다. 비건 선택지가 있음에도 육식 선택지를 고르는 것은 내 맘이었다. 채식과 육식은 "개인의 선택"이니까.
하우스메이트가 이제부터 동물을 먹지 않겠다고 하며 "가짜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
"가짜 고기를 왜 먹어? 그냥 진짜 고기 먹으면 되잖아." 이젠 진짜라는 말이 동물에 쓰이면 소름이 끼친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책을 몇 달이 지난 후 읽어보았다.
"육식은 인간의 건강에 전혀 좋지 않으며, 환경파괴의 주범이다."
육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단백질은? 동물을 먹으려고 키우는 데에 이렇게나 많은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곡식과 물이 들어가고, 땅과 공기가 오염된다고?
어차피 죽은 동물 시체를 사거나 만지는 게 싫어서 내가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할 때에는 거의 먹지 않고, 가끔 외식할 때에나 먹는 정도였던 참이라 그럼 나도 이제 동물의 시체를 그만 먹기로 했다.
"그래도 소젖은 젖소가 죽는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젖소는 젖이 나와서 젖소 아니야? 젖 안 짜주면 아파한다던데..?"
"젖소는 포유류이다. 포유류는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아야 젖이 나온다. 인간이 소젖을 뺏어먹기 위해 소는 강간을 당하고, 갓 태어난 새끼를 빼앗겨 울부짖으며, 젖을 빼앗긴다."
여태까지 내가 알던 정보들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니 사실 내가 아는 정보라는 것은 없었다. 그냥 수퍼마켓에 가면 소젖이 우유곽에 들어있었고, 나는 그것을 샀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는 그냥 음식 이름만 말하면 이미 그 안에 소젖은 들어있었다. 이런 끔찍한 일이 내가 소젖을 먹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역겨워졌다. 이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유제품을 섭취하지도 소비하지도 않기로 했다.
"닭알도 원래 닭은 하루에 한 번씩 알을 낳고, 무정란은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두면 썩어서 버리는 거잖아? 그냥 좁아터진 공장식 축산이 문제지, 자연방사 닭알이나 동물복지 닭알은 괜찮겠지?"
"닭의 알은 생리주기의 부산물이다."
"자연 상태의 닭은 한 달에 약 한 번 알을 낳는다. 인간이 닭의 생리를 뺏어먹기 위해 닭은 유전자 조작을 당하고 호르몬제를 맞아 거의 하루의 한 번꼴로 알을 낳게 만들어져 버렸고, 온갖 학대를 당하고 계속되는 알낳기로 칼슘이 부족해 뼈가 부러져 죽는다."
인간이 싫어졌다. 내가 모르고 저질렀던 실수들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끔찍했다. 미안했고 슬펐다.
이 모든 동물의 시체와 부산물들을 더 이상 먹지 않기로 결심한 뒤, 대체식품을 알아보았다.
비건 소고기, 비건 닭고기, 비건 새우, 콩고기, 쌀고기, 쌀까쓰, 비건 치즈, 비건 요거트 등등.. 저것들은 도대체 뭘로 만드는 것일까. 화학품에 쩌든 무엇인가가 아닐까, 건강에 해롭진 않을까, 모르는 것에 대한 의심이 들었고, 먹어봤을 때 맛이 너무 진짜의 그것과 비슷할 경우엔 더더욱 의심이 갔다. 이거 설마 진짜 동물 시첸데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점점 입맛이 바뀌면서 더 이상 동물을 먹던 그 맛이 그립지도 않고 먹었던 걸 생각하거나 지나가면서 냄새만 맡아도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비건으로 만든 동물대체식품을 굳이 찾아서 먹지 않는다. 그립다거나 먹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절대 다시는 그 어떤 것도 내 입에 넣고 싶지 않다. 그들은 먹고 싶은데 참는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비건들은 왜 새로운 걸 개발하지 않고 육식을 흉내 낸 음식을 만들고 그걸 먹는 거야?"
사람들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가공식품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가공식품만 먹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먹는다. 각자 입맛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처해진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
다시 생각해보니 육식을 흉내 낸 대체품들은 그 맛이나 향, 질감은 좋아하지만 동물이 죽어야 하는 것이 싫고, 유전자 조작 곡식을 강제로 급여하고, 각종 의약품과 항생제에 쩌든, 고통 속에 태어나고 사육당하고 죽어간 동물의 시체를 먹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대체 식재료가 된다.
그리고 비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나, 비건이 되기 전인 사람들에게 비건이 되더라도 포기할 것은 하나도 없고, 원래 먹던 음식들을 다 그대로 비건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비거니즘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아무리 식물에서 단백질을 꺼내서 그걸 뭉쳐서 비건 고기를 만든다 한들, 강간을 당해 강제로 태어나고, 마취도 없이 거세를 당하고, 꼬리와 송곳니가 잘려나가고, 부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고, 좁아터진 공간 안에서 오물과 병들어 죽어가는 다른 동물들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호르몬제, 항생제, 의약품에 절어서 친구와 가족이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다가 처참히 살해당한 그 동물의 살점보다 더 해로운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그 과정을 몰랐다.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결과물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먹는 이 동물의 시체가 동물의 시체라는 것을 고기라는 단어에 가려진 진실을, 사람들이 왜 채식을 하는지, 지금처럼 계속해서 육식을 할 경우 우리가 돌려받게 될 재앙에 대해서도.
동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너무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들이라고, 좀 유난스럽다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라고, 이상한 사람들 취급을 했다. 그 사람들의 이유는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소수이고 우리는 다수였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면 채식 제공이 되는 곳을 찾아서 가야 했다. 그 사람들이 업었으면 그냥 아무데나 가서 아무거나 먹으면 되는데.
내가 지금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뭔가를 살 때 성분표를 확인해본 적이 과연 있었을까? 내가 지금 먹는 것에 뭐가 들어있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 따져야 한다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문득, 분식집에서 파는 피카추 돈가스가 닭대가리를 갈아서 만든 거라고 히히덕거리던 남자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애들은 그러면서도 계속 잘만 사 먹었다. 그 애들은 자기들이 먹는 게 진짜 뭔지나 알고 떠들었던 걸까.
비건에 대해서 잘 모를 때에는 비건이 어렵고 힘든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몰랐지만 알아보지 않았다. 비건이 되고 보니 정말 별게 없었다. 그냥 동물 시체나 부산물만 빼고 버섯이나 두부를 넣으면 비건이었다. 비빔밥, 쫄면은 닭의 알만 빼면 이미 대부분이 비건이다. 콩국수 100%도 비건이다. 쌀도 비건이고, 김도 비건이고, 고추장, 간장도 비건이다. 비건은 그냥 동물을 뺀 모든 식물성 식재료였다.
가끔가다가 정말 어이없게 소젖 가루가 들어가는 수많은 제품들... 팜유는 식물성이지만 엄청난 환경파괴의 주범에다가 오랑우탄을 멸종시키기 때문에 비건은 아니다. 비건은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우리가 식물을 먹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매끼 밥을 먹는다. 동물의 시체와 부산물은 주식이 아니다. 곡식을 먹고, 채소를 먹고, 과일을 먹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곡식이, 채소가, 과일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다. 아이들의 체험활동으로 딸기농장에서 딸기 따기, 고구마 농장에서 고구마 캐기도 하곤 한다.
과연 "고기"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을 도살장으로 체험학습 보낼 수 있을까?
아니, 아이들이 아니어도 내가 직접 가서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