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내가 비건이 된지도 반년이 넘었다.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던 건 내 건강이나 다른 장점들 때문이 아니었다. 무지했지만 알려고 하지 않았고, 나의 입맛이라는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고통받았고, 죽어나갔고, 학대받는지 알게 된 그 순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건 아닌 거고, 이제라도 알았으니 멈춰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천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냥 작은 식습관의 변화에서 시작한 비거니즘이 생각보다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식습관에서부터 나의 모든 소비의 기준이 변했고,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전에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었던 중요한 일들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게 되었다. 내 몸에 들어가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사람을 보는 눈이 높아졌다.
내 삶은 그 전과는 너무 다른 것이 되어버렸고, 진실을 알아버려서 슬플 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지만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가 더 의미 있고 행복해졌다.
1 소화가 잘된다. 고기나 유제품을 먹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속이 더부룩하고 이상하게 답답하고 했었고, 밤에 치킨을 먹고 자다가 급성 위염에 걸려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고, 장염에 걸린 적도 있다. 친구들과 뷔페에 가서 동물성 음식들을 잔뜩 먹고 나면 배가 너무 부르고, 소화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서 계속 걷고 걷고는 했었는데 비건이 되고 처음에는 소화가 정말 너무 잘돼서 깜짝 놀랐다. 방귀도 잘 나오고 화장실도 잘 가고 배고파도 나와있던 똥배가 줄어들었다.
2 피부가 좋아진다. 어릴 때에는 피부에 걱정이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였나, 하나둘씩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서는 피부가 아주 뒤집어졌다. 너무 싫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성인 여드름이고 호르몬의 문제가 생겼다고만 했다. 어떻게 고치는지도 몰랐다.
항상 피부가 정말 좋아져서 화장 같은 거 안 하고 그냥 선크림에 입술만 좀 바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항생제, 호르몬제, 각종 의약품과 방부제에 쩌든 동물 시체나 소의 젖이나 닭의 생리를 먹지 않고 신선한 채소, 과일과 곡물, 견과류, 씨앗등을 먹으니 피부는 알아서 좋아졌다.
3 군살이 빠진다. 아무리 살이 빠져도 끝까지 빠지지 않았던 턱살과 똥배가 빠졌다. 오픈 채팅방에서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비건이 되고 살이 빠졌거나, 오히려 너무 말라서 걱정하던 분은 살이 적당히 찐 경우도 있었다. 본인에게 맞는 체중을 찾게 해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비건 정크푸드를 많이 먹고 밤늦게나 너무 많이 먹는다면 본인 체중 말고 좀 더 찔 수도 있다.
*비건이라고 다 말라깽이 아님. 식습관이나 다른 습관들과 유전적 상관관계로 다양한 체형과 체중을 가질 수 있으니 비건인데 어쩌고 저쩌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예 다른 사람들 외모 평가하지 마세요.*
4 기분이 좋다. 원래 나는 유제품을 엄청 좋아했었다. 그런데 서양 나라에서는 이게 거의 주식이라 저렴하기도 하고 종류도 많아서 진짜 다 먹어가면 새로 사고하는 식으로 계속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가 한참 이유 없이 우울하고, 기분도 별로고, 답답하고 불안했었던 때였다. 유제품까지 모든 동물성 제품을 내 식단에서 없애버린 뒤로는 우울한 것도 없고, 기분도 좋고, 화도 덜난다.
물론 당연하게 나도 인간이고 감정이 있기 때문에 별 것도 아닌 걸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이가 없고 성가실 때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비해서는 정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일은 확 줄어들었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예전 같았으면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했을 일도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빨리 넘기고 빨리 잊어버린다.
5 잠도 잘 자고 아침에 잘 일어나 진다. 그렇다고 무슨 기계처럼 시간이 되거나 알람만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비해서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자도자도 너무너무 피곤하고 뭐 한 것도 없는데 계속 피곤하고 무기력한 느낌들이 사라졌다. 예전에 알람을 세 번 네 번 듣고서도 일어나기 힘들었다면 지금은 한두 번 만에 일어날 수 있다.
카페인에 굳이 의지하지 않아도 아침에 정신이 맑아지고, 피로감이 줄어든다.
6 생리통이 줄거나 사라지고 월경 양이 줄고 결국엔 사라진다?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 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원래도 생리통이 엄청 심하진 않고 견딜만할 정도였는데 이젠 거의 약해져서 그냥 어느 정도 인지만 할 정도가 되었다. 월경의 양도 전보다 줄었고 점점 더 줄고 있다. 다른 비건분들과 이야기해보면 생채식을 하거나 아예 가공식품, 기름, 설탕, 밀가루 등을 먹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는 극소량만 나오거나 안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레네오 유튜브의 월경 신화 관련 영상을 보고, 한국 채식연합의 월경 신화 http://www.vege.or.kr/health.html?mode=read&idx=6695&db_name=a_21&kwd=&page=1&page_list=1 글을 읽고서 내 목표는 더 노력해서 월경을 안 하는 몸상태를 만드는 것.
+ 2021.04.15
<한동안 이게 맞는지 아닌지 잘 몰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물어보기도 했다. 개인적인 경험은 대부분 자연식물식을 하고 가끔 정크푸드나 간식을 먹는데 지금도 매월 월경을 한다. 월경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쉬쉬하는 문화이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못들었지만 월경을 안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식이장애가 있어서 힘들었던 시절 월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알고 지내는 대부분의 비건 여성은 월경을 하는 것을 보면 월경 신화는 정말 신화일 뿐인 것 같다. 월경을 하는 것에 여러가지 이점도 있으므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7 요리실력이 향상된다. 아직 한국에는 맛있고 잘하는 비건 식당이 많이 없다. 그냥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비건이 뭔지도 모른다. 주절주절 설명해도 액젓이나 다시다가 동물성 제품인 줄 모른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며 눈치를 주는 곳도 있다. 아직 다양한 비건 음식을 많이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서 먹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하기 때문에 점점 다양한 요리를 더 많이 해보고,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해보기 때문에 요리실력이 향상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의 강렬한 맛, 맵고 짜고 기름진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의심이 많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음식에 뭘 넣었는지 못 믿겠고, 원래 만들기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서양 나라들은 인건비가 비싸서 나가서 사 먹는 것은 비싸고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훨씬 저렴하기도 하다.
8 다양한 채소와 과일의 맛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살 때엔 브로콜리를 끓는 물에 데쳐서 초장을 찍어먹는 것으로 밖에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별로 안 좋아했었다. 그런데 브로콜리로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고, 그냥 마늘이랑 소금이랑 해서 후다닥 볶아서 먹기만 해도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충격을 받았다.
애호박은 부침개나 무침 정도로만 접했었고 별로 맛있는 줄도 몰랐다. 가지무침은 색깔도 칙칙하고 물컹물컹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리는 음식 없이 다 먹긴 했지만, 좋고 싫음은 있었다. 그래서 호박이나 가지 등은 찾아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비건이 되고 나서 더 다양한 음식에 눈을 뜨게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를 해보니 너무 맛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가지랑 주키니 호박은 장 볼 때마다 사게 되었다.
9 미각이 살아난다. 동물성 재료는 너무 자극적이고 중독적이기 때문에 자꾸 그것들이 생각나고 또 먹고 싶게 만든다. 피의 맛에 중독되고, 소젖에 있는 마약과 성분이 비슷한 카조 모르핀에 중독이 된다. 너무 짠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짠 게 짠지 모르는 것과 같이 미각세포들이 제 기능을 못한다. 식물만 먹는 사람도 너무 짜고 달게 먹는다면 비슷하겠지만, 적어도 동물성 재료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맛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
각종 채소나 과일의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고, 동물 시체보다 그 양념과 향신료가 맛있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안 먹다가 어쩌다 실수로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것을 먹게 되면 입맛은 예민하게 그걸 찾아낸다. 후각 또한 예민해진다. 동물 시체 냄새에 예민해져서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10 돈을 아낄 수 있다. 가끔씩 무슨 채식이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느니, 채식하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서 채식을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 3세계의 기아, 난민을 먹이는 음식은 대부분 곡식과 채소이다. 곡식이나 채소의 한번 먹을 양과 동물 시체, 알, 젖을 사는 것만을 비교해봐도 답이 나온다. 우리가 가난했을 시절에는 식물을 먹고 동물은 비싸서 먹지 못했다. 동물성 재료는 사치품이다. 아니 왜 돈이 생기면 고기를 먹으러 가겠나, 고기는 비싸니까. 그냥 김이랑 밥만 먹거나 상추, 깻잎에 싸 먹기만 하면 그것도 채식이다. 채식을 하면 돈을 아낄 수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채소와 과일은 수입하는 과정에서 현지보다 많이 비싸지기 때문에 그런 건 비쌀 수도 있지만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 농산물은 비싸지 않다.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 등을 사서 무쳐서 고추장에 밥만 비벼먹어도 맛있고, 고기 대신 두부를 사면 훨씬 저렴하다.
가공식품에는 왜 그렇게 소젖 가루를 못 넣어서 안달이 난 것인지 모르겠다, 겨우겨우 찾아낸 비건으로 보이는 제품에 팜유가 들어가 있다던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 나는 지금 돈을 쓰고 싶은데도 돈을 강제로 아끼게 된다. (팜유가 왜? -> 유투브 이기적인 케이틀린; 팜유 이야기) 식당에 가도 별로 먹을 것도 없고, 동물 시체 갈아 넣은 음식, 가공식품, 제품, 동물 괴롭혀서 동물 실험하고 나오는 세제, 화장품 등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안 좋다가도 그 덕분에 가공식품을 덜 먹거나 안 먹게 되고,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게 된다.
11 설거지가 편해진다. 음식물쓰레기가 덜 역겨워진다.
"생고기는 더러우므로 익혀서 먹어야 된다",
"생고기를 자른 도마와 칼은 교차오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채소는 다른 도마와 칼을 사용해야 한다",
"동물의 뼈나 닭앍의 껍데기는 음식물쓰레기에 버리지 마세요".
시체를 사고 만지는 것, 내 접시가 오염되는 것, 끈적거리는 기름과 눌어붙은 치즈를 설거지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고기를 자른 도마는 꼭 세제를 이용해서 깨끗하게 닦고 뜨거운 물로 또 한 번 소독해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에서는 썩은 내가 났다.
지금은 그냥 채소, 과일만 자르기 때문에 굳이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식초로 소독만 해도 충분하고, 음식물 쓰레기라고는 채소랑 과일의 껍질 정도이기 때문에 그게 썩으면 냄새가 나겠지만 그전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도 없게 깨끗하고 깔끔하다.
12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변화한다. 운전을 배우기 전과 운전을 배운 후, 영어를 모를 때와 영어를 알게 된 후와 같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같은 물건이나 같은 일이 있을 때에도 전에는 별 의미 없이 생각 없이 봤던 것들이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를 다시 한번 더 의심해보고 이게 진실일까? 아니라면 뭐가 진실일까 더 많은 자료를 조사해보고 다양한 의견들을 들어본 뒤 나만의 생각과 경험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또 다른 진실이 나타나서 내가 알고 있던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13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생명은 소중하다고 듣고, 배워왔지만 그 전에는 그냥 막연하게 생명은 소중해라고 했지 벌레가 나타나면 죽여버리거나 꽃이 예쁘니까 꽃다발이나 꽃꽂이가 예쁘다 하고 사버리거나, 내가 먹는 동물 시체가 생명을 죽여서 얻게 된 것이라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거나 하지 않았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그 사실을 나와 다른 사람들, 나의 동물과 함께 살면서 배웠던, 그 동물도 체온이 있고, 눈빛이 반짝이며, 아플 때 울고, 기쁠 때 기쁘다고 표현하고, 사랑하는 것을 직접 느꼈다. 내가 사랑하는 이 동물과 내 접시 위에 있던 다른 동물들의 차이점은 뭘까, 결국 그 차이점은 내가 그 다른 동물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동물들을 어떻게 나누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일 뿐 우리가 착취하고 잡아먹는 그 동물들도 다 죽고 싶지 않고, 행복하고 싶다.
동물들을 꼭 엄청나게 사랑하지 않더라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 생명이 고통받고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것이 싫기 때문에 비건이 된 사람들도 있다. 모든 비건이 다 동물을 너무너무 사랑해서라거나 그들이 불쌍해서 먹지 않는 것뿐 만은 아니다. 학대와 착취와 살해가 싫은 것이다. 이젠 곤충도 인간이 정해놓은 익충과 해충이 아닌 그냥 곤충일 뿐이고 가능하다면 그들을 죽이지 않고 내보내는 방법을 선택한다. 꽃꽂이보단 화분에 들어있는 식물이나 정원 가꾸기가 더 좋다.
14 소수자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유색인종의 권리, 여성의 권리, 아동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성소수자의 권리 등 그동안 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도 없었던 분야에 까지도 관심사가 넓어졌다. 인간이 비인간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다 세뇌였을 뿐이다. 같은 개념으로 "정상인"이라는 범주도 결국엔 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잣대일 뿐이지 결국 다 같은 인간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그냥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냥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도움이 필요할 때만 도와주면 된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 소수자들은 가해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가해자들은 그냥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들을 억압하고 탄압하고 혐오한다. 모르는 것은 알면 되는 것이지 싫어할 필요가 없다.
15 지구환경문제와 다양한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진다. 비건이라고 하면 동물 애호가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건 비건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다. 자칭 동물 애호가이면서 동물 가죽 털옷을 입고, 동물 시체를 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동물을 사랑하지 않지만 동물 시체를 먹기를 거부하고, 동물들을 괴롭혀서 만든 모든 제품의 소비를 지양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건은 축산업, 낙농업계 등 가축산업이 동물의 시체, 젖, 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땅과 물, 곡식을 사용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지도 알고 있다. 불필요한 동물실험에 죽어가는 동물들, 팜유를 얻기 위해 죽어가는 열대우림의 동식물들, 충분한 대체품이 존재하는 데도 인간의 욕심 때문에 죽어서 옷이나 신발, 가방이 되어야 하는 동물들, 인간의 놀잇감으로 전락해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죽어가는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서커스, 동물체험의 노예가 된 동물들도 도와주고 싶어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때문에 육지와 바다가 오염되고, 지구온난화가 진행됨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산호초들이 죽어가는지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비건은 단지 동물 애호가나 내 건강만을 위해서 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망쳐놓은 지구를 다시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모든 동식물들이 다 같이 잘 살기를 바라며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16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내가 비건이라는 것을 알리거나, 알게 된 사람들 중 몇몇은 갑자기 나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한다. 나를 적대시하고, 나를 미워하고, 나를 괴롭히고 싶어 한다. 심지어 나는 그들에게 비건하세요. 육식을 멈추세요 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왜 강요를 하냐느니, 갑자기 식물권자가 되거나 나에게 도덕 잣대를 들이민다. 나한테 질문을 해놓고 대답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눈감고 귀 막고 아 몰라 그래도 나는 먹을 거야라고 한다. 나랑 먹는 밥 한 끼조차 동물을 죽여야겠다면, 그 정도의 배려심도 없는 사람과 계속 만날지 말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반면에 그래도 정말 순수한 호기심으로 궁금한 것을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물어보려는 사람들, 내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알려준 정보를 보고 나도 노력해볼게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기쁘고 사랑스럽다. 사람을 만나고 선택하는 기준점이 하나 더 생겼다.
17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아는 것이 많아진다. 내가 처음 해외생활을 시작한 게 캐나다였는데 그때 자꾸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물어보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래서 그때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한국과 우리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나는 원래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고 목록을 만들어서 그 목록을 다 완성시키는 것을 좋아하지만, 비건이라서 받는 질문들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라던가, 전과 다른 시각으로 사물과 사건을 보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점점 더 그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에 대해서 알게 된다.
18 좋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하게 된다. 비건이 되어 멀어진 사람들이 있는 반면 비건이 되어 알게 된 새로운 인연들도 너무 많고 소중하다. 비건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은 나에겐 없는 경험을 갖고 있거나, 내가 몰랐던 팁들을 알고 있어 서로 공유할 수 있다. 비건이면 비인간 동물에 대한 차별, 성차별, 인종차별등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더 높아진다.(물론 간혹, 본인 건강만 생각하고 비건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냥 자연식물식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긴 있음)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혐오하지 않고 한번 들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같이 밥을 먹을 때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비건이면 더 많은 사회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깊은 대화들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다.
19 동식물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건 그냥 나만 그런 건지 다른 사람들도 그런 걸 느꼈는지 이야기해본 적은 없는데 난 원래 동물들은 다 귀여워했고, 식물들은 그냥 예쁘다, 푸르르다 그러긴 했지만 비건이 되고 나서는 뭔가 더 다르게 느껴진다. 동물들이 나를 덜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그 애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너무 가까이 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켜보게 되고, 곤충도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고, 지나가다가 멈춰서 들여다보고, 식물들도 다들 조금씩 다른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게 너무 예뻐서 자꾸 멈춰서 자세히 보게 되고, 사진을 찍게 된다. 이름이 뭔지는 몰라도 그냥 너무 좋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이 예쁘고, 새로 돋아난 푸른 잎이나 바닥에 떨어진 잎새들도 너무 예쁘다.
20 행복하다. 동물들을 사랑한다고 말만 했지 동물들을 먹거나 동물을 착취해서 얻은 알이나 젖을 먹었고, 동물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가둬놓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가서 슬픈 동물들을 구경거리로 소비했었다. 물을 아껴 쓴다고 노력을 했지만 내가 먹은 햄버거 하나에 몇 개월 동안 샤워할 양의 물이 들어갔다는 것을 몰랐다. 진짜라는 말이 좋은 건 줄 알고 그렇게 믿고 산채로 가죽이 벗겨진 그 동물들의 껍질로 만든 제품을 구매했었다. 그냥 수퍼마켓이나 마트에 가서 생각 없이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실험을 마친 제품들을 생각 없이 구매했었다.
진실을 알게 되고 그 끔찍한 일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슬프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한 채로 생각 없이 살았던 전보다 지금이 행복하다. 내가 동물을 먹지 않아 하루에 적어도 한 마리의 동물이 덜 죽고, 내가 사는 옷이나 신발, 가방 때문에 죽는 동물이 더 이상 없고, 동물을 해하지 않고 만든 제품들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동물을 먹고, 입고, 사용하겠지만 점점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그 고통받는 생명의 수가 줄어든다고 믿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진짜 신경 쓰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하루하루 내가 적어도 내가 직접 느낀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생명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실천하는 일이 정말 행복하다.
안녕하세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본인이 비건이 된 후 느꼈던 점이나 다른 비건분들과 이야기했던 것들을 적어보았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나,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알려주세요. 혹시 제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빼먹은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