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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Apr 23. 2021

아이가 엄마를 안 닮았네요

나와 정반대인 아이를 키운다는 것


최근에 시력교정술을 받고 잠시 친정엄마가 아이의 등 하원을 맡아주셨다. 처음으로 친정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온 날,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친정엄마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도 아빠도 많이 안 닮아서 왜 그런가 했더니, 외할머니를 닮았네요!"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빵 터졌다. 나와 친정엄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처음 뵙는 외할머니를 기분 좋게 하려고 그런 말씀을 하신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와 친정엄마는 붕어빵이기 때문이다. 아마 나, 친정엄마, 아이를 무작위로 다른 사람과 섞어놓고 모녀지간을 찾으라는 미션을 준다면, 누구라도 나와 친정엄마는 쉽게 골라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아이를 찾아보라고 한다면? 짐작건대 갸우뚱하며 자신 없어할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사실 외모보다는 성격이 더 안 닮았다. 느릿느릿하고 움직임이 거의 없는 나와 달리 아이는 재빠르고 매사에 거침이 없다. 나와 남편은 기질적으로 내향성과 위험회피 성향이 높지만, 아이는 활동성이 크고 자극을 추구하는 반면 위험회피 성향은 낮다. 무난 무난한 우리 부부 사이에서 아이의 똑 부러지는 강단은 마치 초록 풀숲 속에 핀 장미처럼 화려하다.


노래가 나오면 앞으로 뛰쳐나가 살랑살랑 율동을 하고, 반응이 약한 사람 코앞에서 춤을 추며 호응 유도도 자연스럽게 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보며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나와 남편은 마치 신인류를 목도한 느낌을 받곤 한다.



아이의 격렬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어 두 돌이 갓 지나 어린이집을 보냈다. 첫 등원 날 아이는 엄마를 돌아보지도 않고 "와아~" 하면서 어린이집으로 쑥 들어갔다. 정작 나는 선생님 앞에서 우물우물거리다가 황급히 인사하고 나왔는데 말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은 정확했다. 우리 둘은 참 다르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아이는 분명 나와 남편의 친자가 맞다. 이 미스터리한 현상을 두고 한 번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유리는 과연 누구를 닮았는가'를 주제로 토론이 펼쳐쳤다.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시어머니가 툭 던지신 말이 압권이었다. "누구 닮긴, 지 닮았지!"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내 아이가 나와 남편을 닮을 거라는 철석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들어온 말들이 비슷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릴 적 나와 남편의 성향을 말할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었다. 순둥이, 조용하고 느긋한 아이, 부모님을 잘 찾지 않고 속을 알기 어려운 아이, 눕기만 하면 스르르 잠들고, 있는 듯 없는 듯 잘 놀아서 해줄 것이 없었던 아이.


그런데 조리원을 퇴소하는 날,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이를 건네주시며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셨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 때는, 다른 아이들에게 지지 않고 큰 소리로 운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살짝 놀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신생아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내 아이는 기본적으로 순둥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참 순진했고, 그걸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내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으면 바로 불벼락 같은 울음소리로 재촉했다. 먹기 싫으면 입을 꾹 다물고 젖병을 밀어냈고, 살살 달래면서 먹이면 바로 헛구역질을 하면서 무언의 항의를 했다.


탐색하고 싶은 건 또 얼마나 많은지, 한 달 일찍 태어났으면서 백일만에 몸을 뒤집더니 전투적으로 대근육 발달에 집중했다. 마치 더 상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섭게 훈련하는 운동선수 같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도대체 왜 아이가 나와 비슷할 거라고 그렇게 확신을 했을까? 나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아동 관련 NGO에서 일을 하다가, 언어재활사로 전직을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많이 만났고 부모님과 상담을 할 일도 많았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선생님, 얘가 저를 닮아서 그런 것 같아요."였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신을 닮은 아이의 모습을 보며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실제로도 아이와 부모님이 닮은 사례를 많이 보았고, '유전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그래서였을까, 내 아이가 나를 닮아서 생길 어려움만 걱정했다. 정작 아이가 나와 정반대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TV를 보는데, 6남매를 키우는 한 어머니가 출연했다. 이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고민은 자녀들 중에서도 유독 넷째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기질적으로 너무 달라서, 넷째가 스킨십을 해오면 마치 옆집 아이를 만지는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나와 기질이 다른 아이를 키워보니 그 말의 뜻에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 아이는 나를 닮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가족이라고 다 닮은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따지고 보면 나와 남편은 피가 한 방울도 같지 않은 남인데 만나서 가족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내 아이는 '나와 닮았다', '안 닮았다'를 기준으로 평가하려고 할까? 어쩌면 '나와 닮은 아이'를 통해 나와 아이의 깨지지 않을 결속을 확인받고 싶은 것은 아닐까.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편' 이런 말을 굳이 끌고 들어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닮은 점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



물론 내 아이도 나와 남편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에, 닮은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다. 아이가 웃을 때 눈이 휘어지는 모습은 남편을 꼭 닮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꼭 알고 지나가야 하는 부분도 나를 닮았다. 또 아이가 잘 안 먹는 편인데 남편도 어릴 적에 잘 안 먹는 아이였다고 한다(남편은 왜 하필이면 그런 점을 닮았는지 억울해 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느낀다. 이 아이가 지닌 수많은 요소들은 나와 남편의 그것과는 또 다른, 오롯이 그 아이만의 것이라는 걸. 






이렇게 'one and only'인 특별한 존재를 나는 내 관점에만 비춰 해석하고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 안 이랬는데, 얘는 왜 이러지?', '얘가 왜 이런 말과 행동을 하지?' 더 나가서 '얘가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이러나?'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나의 유년시절, 관점, 가치관을 투영하는 것을 멈춰야 했다.


아이가 지닌 기질과 행동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정말 '공부했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아이는 내가 처음 마주한 미지의 지식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점점 아이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장점이 보였다. 나와 달라서, 더 빛나는 것들.




아직 나는 아이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좀 알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전혀 모르겠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아이가 엄마를 별로 안 닮았네요."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면, "맞아요. 얘는 저랑 달라요."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이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아이의 진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를 이해하기 힘들 때마다 속으로 이 말을 되뇐다. "나는 나고, 얘는 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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