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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Apr 27. 2021

1년 동안 매일 육아일기를 썼다

아이를 이해하고 싶어서


첫 시작은 미미했다.


종종 이용하던 사진 인화 업체에서 사진일기 출판 서비스를 홍보하는 메일이 왔다. 한 달 안에 일정 일수만큼의 일기를 쓰면 배송비만 받고 무료로 출판해주는 서비스였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가성비를 중시하는 나로선 꽤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었다.


배송비 무료 외에도 추가 옵션이 몇 가지 있었고 그걸 추가하면 사실은 몇천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세상만사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결정적으로 그 비용을 감안해도 생각보다 퀄리티가 괜찮았다).


마침 나는 아이를 품고 있었고, 육아일기를 쓰면 딱이겠다 싶었다. 그렇게 2019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육아일기는 2019년 2월 1일,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다.




사실 나는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무감으로 쓰는 글에 저항감을 느낀다' 이런 고상한 이유는 전혀 아니고, 그냥 매일 쓰는 것이 힘들다. 누군가는 "어떻게 신생아를 키우면서 1년 동안 매일 일기를 썼나요?"라고 묻기도 했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딱 하나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한 번 관성이 붙으면 미련할 만큼 계속하는 나의 기질이었다. 일기 출판을 운 좋게 몇 번 성공하고 나니, 나중에는 힘들어도 그만두는 게 어려워진 것이다.  


다만 매일 밀리지 않는 것만큼은 불가능했는데, 이 게으름이 일 년 내내 나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앱에 들어가 출석 체크만 해 두고, 출판 무료 쿠폰이 만료되기 며칠 전부터 수정 버튼을 눌러 부랴부랴 내용을 채웠다. 방학 전날의 회한을 고스란히 느끼며...


내용을 채우는 것도 일이었지만, 사진을 고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다 똑같은 사진 같아도, 엄마의 눈에는 다 다른 사진들이다. 이건 눈을 살짝 감은 것이 윙크한 것처럼 보여서 귀엽고, 이건 눈을 동그랗게 떠서 더 이쁘고... 무슨 사진을 넣을지 남편과 양가 부모님들의 투표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매달 산고에 준하는 창작의 고통을 겪는 동안 책은 한 권, 두 권 모였다. 2019년 1월부터 시작했고 아이가 태어난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썼다. 한 달에 한 권씩 출판하니 도합 13권의 책이 나왔다.

 



2020년 2월, 돌잔치를 앞두고 지금까지 썼던 육아일기를 한꺼번에 합본을 해서 포토 테이블에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출판이 아니라 오직 1권만 제작할 것이었기에, 1년 분량의 책을 합본하는 견적이 무려 12만 원이 넘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의 성장앨범을 따로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토 테이블에 놓을 사진도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육아일기야말로 우리 아이의 성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주문했다.


벽돌책이 되어 도착한 육아일기


이 때는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돌잔치에 손님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 돌잔치 전문점이 아니라 교회에서 첫돌 감사 예배를 겸하여 했기 출장요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과정을 셀프로 했다.


동영상 제작은 엄마, 2부 행사 사회는 아빠, 축가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부른 그야말로 '가족 잔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분위기가 참 따뜻하고 아이디어가 좋았다고 감사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육아일기도 그중 하나였다.



어떤 이는 포토 테이들에 한참을 머물러서 책을 읽어보고는 "정말 대단하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네."라면서 등을 토닥였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었기에 뿌듯하기보다는 그저 쑥스러웠다. 매월 마감의 기분을 감내하며 꾸역꾸역 일기를 썼던 과거의 나에게 그 칭찬을 넘겼다. 잘 했다 잘 했어.


 





지금은 업체에서 일기 출판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했기 때문에, 이 육아일기는 두 번 다시 출판할 수 없는 매우 귀한 몸이 되었다. 지금 13권의 월별 일기책은 친정집에, 1권의 합본은 우리 집에 있다. 조선왕조실록처럼 유사시 기록이 보존되도록 각기 다른 곳에 보관했다고 너스레를 떨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책의 가치는 그만큼 무겁다.


지금도 육아로 지쳐 아이가 주는 기쁨에 무감해지면, 모두가 잠든 밤에 이 책을 꺼내어 읽어본다. 군데군데 '와 정말 의무감에 썼구나' 싶은 날도 있어서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진마다 그 사진을 찍었던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이는 정말 빨리 자란다. 말랑말랑한 볼, 잘 익은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 베이비파우더 향기, 아직 힘이 없어 온전하게 나에게 안겨오던 그 작은 몸집...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멀어지는 그 시절의 아이. 일상에 치여 부랴부랴 카메라로 담고 지나쳤던 그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없지만, 티없이 맑은 아이의 얼굴 건너편에 숨어 있을 한 사람도 들여다본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눈물을 훔치던 초보 엄마, 하지만 아이의 뽀얀 얼굴에 무장해제되어 정신없이 카메라에 담던 고슴도치 엄마. 훌쩍 커 버린 것은 아이뿐만이 아니였다. 나도 아이가 지나온 시간만큼 함께 자랐다.


비록 시작은 미미했고 과정은 지루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나의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하다. '그 시절의 너는 정말 반짝반짝 빛났다'는 것을, 이 기록들이 증명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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