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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Oct 07. 2021

육아하면서 전자책 두 권 출판한 이야기

엉겁결에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

 

아이를 재우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전자책' 출판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처음 접했던 정보는 '전자책으로 앉아서 돈 버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그야말로 재테크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생뚱맞게 전자책 '출판'에 꽂히고 말았다. 출판? 그럼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




 그 당시 나는 남편의 발령으로 타지에 이사를 와서, 코로나19로 두 살배기 아이와 집에서 하루 종일 부대끼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렸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니 엄마로서의 자존감도 깎이고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엄마'의 역할과 스스로를 동일시했고, 그래서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엄마'로서 변변치 못한 '본캐'를 지탱해준 건, 온라인의 '부캐'였다. 대학원에 입학할 즈음에 블로그를 시작해서, 언어재활 관련 정보와 책 리뷰, 언어재활사로 일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글로 써서 올렸다. 그야말로 내 멋대로 운영하는 공간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네이버 검색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들과 소통하며, 일면식도 없지만 한 두 개의 관심사만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극 내향인이기에 그런 교류가 더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출산 후 일을 그만두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본캐'와 '부캐' 사이에도 괴리가 생겼다. 블로그는 언어치료에 관한 내용 대신 육아 관련 글로 채워졌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다른 언어재활사 선생님들의 블로그를 보며 임상으로 간절히 복귀하고 싶다가도, 그냥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어린아이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가도 엄마의 품을 파고드는 양가감정을 겪듯이, 나도 지독한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알게 된 '전자책'의 세계는 내 속에 꽁꽁 숨어있던 뭔가를 건드렸다. 이전의 커리어는 중단되고 일상의 육아를 지탱할 힘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나도 뭔가 생산해내는 사람일 수 있다'라는 의식이 간절했다. 그래, 전자책을 써보자!


 소재를 정하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내가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이면 되니까. 그게 바로 '언어재활사 국가시험'이었다. 언어재활사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나는 대학원 졸업 후 2급 국가시험에 응시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언어재활사가 되었다. 처음 1급 시험을 준비할 때는 임신한 상태였었는데, 조산기로 드러눕는 바람에 아이를 낳고 다시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했다. 그때는 정말 우울했는데, 이 경험으로 전자책을 쓰게 될 줄이야!


 아이가 잠들면 노트북 앞에 앉아 새벽까지 글을 썼다. 피곤에 입술이 부르트고 터져서 남편이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었다. 백 분 토론도 재미있다던 고3 시절이 다시 찾아온 기분이었달까. 그렇게 3주를 신나게 써서 만든 첫 전자책이 <언어재활사 국가시험 가이드북>이었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고, 표지나 내용 모든 면에서 어설픔이 묻어나는 결과물이었다. 게다가 워낙에 타깃층이 좁았다. 언어치료학과를 졸업해서 국가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이 일 년에 몇 명이나 될까? 10명이라도 읽어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정말 많은 이들이 읽어주었다. (내가 언어재활사라 그런 게 아니라) 언어병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학구열이 진짜 엄청나다. 대학원생 시절, 시험장이 오픈되기 전 복도에서 전공서를 펴놓고 열공하는 학부생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열심히 배운다. 그러니까 이런 설익은 느낌의 전자책도 기꺼이 구입해주는 게 아닐까!


아무튼 예상치 못한 반응에 용기를 얻어서 올해 여름에는 <언어재활사 국가시험 가이드북> 개정판과 <언어치료대학원 가이드북>을 출간했다(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못 올렸던 것도 전자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해본다). 그렇게 1년여 만에 부크크(BOOKK)의 내 서재에는 전자책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두 권의 전자책과 한 번의 개정 작업을 거치며 느낀 점은, '책 쓰기는 정말 쉽지 않다'는 깨달음이었다. 언젠가는 출간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는 내게, '출판사 없이도 책을 쓸 수 있다'는 말은 '안 굶고 살 빼는 법' 만큼이나 달콤했다. 그러나 B5용지 50쪽 분량을 간신히 채우고 한글-파워포인트-미리캔버스 세 가지 툴로 고군분투하면서, '책'의 만듦새를 갖춘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배웠다. 종이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이 생략되었음에도 이렇게 힘들다니! 호기로운 전자책 출판 도전은 '작가'에 대한 경외감이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작가'로서의 역량은 아직 한참 밑이라는 걸 확인했지만, 더 크게 얻은 것도 있다. '전업맘'으로 살면서 희미해져 가는 '언어재활사'로서의 정체성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 경력서가 발급되는 이력도 아니고 임상 현장에서 직접 사람을 대하며 쌓는 경험에는 비할 수 없지만, 내가 경험하고 배운 것을 다시 풀어내는 과정은 분명 귀한 경험이었다. 만약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기간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커리어에 대한 갈급함이 없었더라면 겁 많은 내가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전자책을 써서 상당한 수익을 얻었다거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전자책 써서 수백만 원을 번다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일단 난 아니다). 그러나 무형의 자산은 훨씬 많이 얻었다. '나만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다듬어서 세상에 내놓은 경험은, 하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모이고 모이면 더 큰 꿈을 실현시킬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맞다. 나는 여전히 '출간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 아... 텍스트로 쓰기만 했는데 광장에서 소리라도 치는 것처럼 부끄럽다. 내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배우고 발전하고 싶다. 이 꿈이 그저 미련이나 몽상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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