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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Sep 01. 2021

1990년생 '백말띠'와 2019년생 '코로나 키즈'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90년생은 '백말띠'여서 특히 이때 태어난 여자들이 팔자가 사납고 드세다고. 사실 나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 이런 속설을 접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는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1990년은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 때문에 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으로 극심한 성비 불균형을 기록한 해였다. 출생신고를 앞당기거나 늦춰서 하는 경우도 있었고, 비극적이게도 '여아'를 선별 낙태하는 일도 많았다.


사실 '백말띠 여자가 드세다'는 말 일제 강점기 때 유입된 낭설이다. 일본에서는 '말띠 여자가 시집가면 남편을 깔고 앉아 기세를 꺾는다'고 하여 꺼리는 습속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확산된 것이다(출처: https://url.kr/g3abh7). 명리학적 관점에서도 오로지 '띠'로만 팔자를 논하지 않으며, 오히려 요즘은 여자에게 '팔자가 세다'는 의미를 '진취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이렇게 초래된 성비의 불균형은 궁극적으로는 저출생 문제와 연결되어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19년생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코로나19의 장기화 속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도 자주 하지 못했으며, 외출할 때는 능숙하게 마스크를 착용한다. 이렇게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아이들을 '코로나 베이비' 또는 '코로나 키즈'라고 칭한다.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라는 틀에 묶이지 않고 자라났던 나는 선생님의 말에 충격을 받았고 그제야 왜 남-남 짝꿍이 그렇게 많았는지를 깨달았다. 처음으로 '특정 세대를 향한 사회의 공고한 인식'에 부딪힌 순간이었다. '코로나 키즈'도 그럴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코로나 키즈'가 겪을 여러 어려움들은 근거 없었던 '백말띠' 속설과 달리 실체가 있는 위협이라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경기지역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및 교사, 학부모 총 1451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아동의 발달에 미친 영향'을 설문 조사했는데, 원장 및 교사의 71.6%, 즉 10명 중 7명 이상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아동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언어발달지연(74.9%), 신체발달지연(77.0%), 정서적 문제(63.7%), 사회적 상호작용 문제(55.5%) 등 여러 측면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출처: https://url.kr/64cedy).


실제로 언어재활사인 한 지인도 언어발달 지연으로 센터를 찾는 아이들이 많이 늘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치료를 하다 보니 진전이 느린 것 같아 고민이라고 했다. 우리 아이 또한 한창 말이 늘어야 할 돌~두 돌 사이에 '집콕 생활'이 이어지면서 표현 언어가 잘 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는 마땅히 누려야 할 상호작용과 탐색의 기회를 잃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는 양육자로서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집에 흥미로운 놀이기구를 들이고, 하루 종일 붙어서 놀아주고, 책을 읽어줬다. 그러나 곧 한계에 다다랐다. 심심함에 뒹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집안일을 좀 더 하기 위해... 어느 순간 나는 뽀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이 총성 없는 육아전쟁 속에서,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가정이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하얗게 불태웠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결핍에도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장애를 갖고 있거나 발달 지연이 심한 아이일수록 골든타임을 놓친 대가는 더 크다. 또 보육기관 및 학교로부터의 교육과 돌봄이 사라지면서, 각 가정의 민낯이 온전히 드러나버렸다. 누군가는 아이의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애를 쓰고, 누군가는 아이가 귀찮다고 때리고 죽이는 현실.  팬데믹의 충격 속에서, 어딘가는 더 빠르게 그리고  깊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최근 지자체나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코로나 키즈'의 발달 지연 문제가 심화되기 전에 이들의 발달을 돕기 위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숲 등에서 마스크 없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 발달 지연 고위험군 아동 선별 및 치료 지원, 가정 내 부모교육 지원, 보육현장에서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 등의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4차 대유행 전 어린이집 숲체험 활동에서. 숲을 대하는 아이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코로나 키즈'를 키우는 한 엄마로서, 그리고 언어 발달 전문가로서 이러한 움직임이 반갑다. 코로나19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이상, 아이들의 발달 지연도 개인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저 코로나 시기에 태어나서 재수가 없다고 치부하기엔 아이들은 죄가 없지 않은가. 이들에게 누적되는 문제는 코로나19보다 더 끈질기게 살아남아,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내가 살아가기도 팍팍한 이 시대에 '아이들 좀 신경 씁시다!'라고 말하는 게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진 않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백말띠'는 60년마다 돌아오고 코로나19와 비슷한 전염병도 또 찾아온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백말띠에 태어난 드센 팔자'라고 아이의 앞날에 근거 없는 편견을 씌우거나, '전염병이 도는 시기에 태어난 불쌍한 아이'라고 무심히 동정하는 방법으로 미래 세대를 대우해왔다. 다음 세대에게 합리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무거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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