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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un 29. 2021

12평 원룸에서 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그때의 아이처럼 작고 포근했던 집을 추억하며


내가 신혼생활을 시작한 곳은, 결혼 전 남편이 구입해서 살고 있던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실평수 12평의 아담한 크기였지만, 신축이라 아주 깨끗하고 밝았다. 3년 동안 착실히 모은 돈으로 첫 집을 마련한 남편에겐 두말할 것 없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결혼이 첫 '독립'이었던 나도 그 집이 마치 소꿉놀이집처럼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이 찾아오면서 '우리 집'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아이가 한 달 무렵 되었을 때 산후조리를 마치고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몸무게 4kg도 안 되는 아기가 집에 들어오는데, 그동안 살면서 생긴 우리 둘의 짐보다 더 많은 물건들이 입주했다. 아기 침대, 바운서, 아기 옷 전용 행거, 젖병소독기, 분유 포트, 아기욕조, 아기 용품을 담는 트롤리 등등...


수납공간이 부족해서 힘들긴 했지만, 아기가 원목 침대를 벗어날 일이 크게 없었기에 생활에도 큰 지장이 없었다. 적어도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실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특히나 호기심이 강했다. 한 달이나 일찍 태어났음에도 거의 백일만에 뒤집기를 성공했고 대근육 발달 속도가 엄청 빨랐다.


뒤집기에 성공하면 뿌듯해하거나, 실패하면 울거나.



아이는 마치 텔레파시라도 받는 것처럼 맹렬하게 뒤집었고, 아기 침대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모서리에 끼어 울기 일쑤였다.


결국 아기 침대는 큼직한 범퍼침대로 교체되었고, 여기에 (친정엄마에게 선물 받은) 아기 책장과 (지인에게서 물려받은) 점퍼루 등이 추가되니 점점 발 디딜 곳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짐이... 점점 늘어난다...


게다가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기의 눈에는 모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였고, 엄마의 눈에는 위험천만한 것들 투성이었다.


특히 원룸 구조상 주방과 화장실의 뚜렷한 경계가 없어서 더 위험했다. 나는 늘 마음을 졸이며 아이에게 위험한 부분이 없는지를 살펴야 했다.


대탈출을 꿈꾸던 아기


원룸이다 보니 모든 식구가 생활리듬을 맞춰야 하는 점도 힘들었다. 원래 나와 남편은 생활리듬이 극과 극이다. 남편은 일찍 잠드는 편인데 나는 늦게까지 뭔가를 하다가 잔다. 출산 전에는 그냥 각자 따로 뭔가를 하다가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잠들었다.


그러나 출산 후에는 아기가 잠들 무렵이 되면 훈련소 점호 시간처럼 온 가족이 강제 취침에 들어가야 했다. 아이가 잠들면 부부가 함께 대화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육퇴'의 기쁨을 느낀다는데, 우리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이쯤 되면 단점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나름의 장점도 있었다. 우선 아이가 어디 있는지 한눈에 들어오기에 초보 엄마는 조금 덜 불안했다.


예를 들어 세탁을 하면, 빌트인 세탁기에서 빨래를 끄집어내 창가에 있는 빨래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옷을 개서 옷장에 넣는 모든 과정이 한 공간 안에서 가능했다. 아이도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면) 엄마가 늘 눈에 보이니 좀 더 안정감을 느꼈다.


또 당시 거주하던 건물이 가진 장점도 몇 가지 있었다. 우선 방음이 잘 되는 편이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소리로는 전혀 알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아기가 울어도 이웃들에게 층간소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스트레스가 좀 덜했다.


또한 걸어서 3분 거리에 대형마트와 카페 등 근린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아이가 집에만 있어 좀 답답해하는 것 같으면 밖으로 나갔다. 마트 구경도 하고, 문화센터 수업도 듣고, 카페에 잠시 앉아 있다 오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닥쳐오기 전 누렸던 찰나의 소소한 추억들이다.








아이가 8개월이 될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남편이 이직에 성공하면 이사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먼 타지로 이직하게 되면서 나와 아이는 친정집에 잠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이듬해 3월이 되어서야 세 식구는 다시 한 집에 모였다. 연식이 오래되고 평수도 그리 크진 않지만 방도 3개이고 베란다도 있는 아파트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좀 더 큰 집으로 이사오니 그 이전 집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와 원룸에서 함께 살던 때를 돌이켜보면, 그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밀착감이 있었고 추억이 있었다. 분명 '불편'했으나 전혀 '불행'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이전에 살던 집은 현재 시어머니가 거주하고 계신다. 그래서 가끔 명절이나 생신 때 찾아뵈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감회에 젖어 세 살 아이에게 "기억나?"하고 물어보면 그게 뭐냐는듯 의아하게 쳐다본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생생한 추억들이다. 나중에 아이가 좀 더 자라게 되면, 꼭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너를 닮아 아담하고 포근했던 이 집에서, 너의 작은 눈망울을 더 자주 들여다보며 정말 행복했었노라고.


몰래 아이를 찍다가 눈이 마주쳤던 순간. 남편은 지금도 이 사진을 정말 좋아한다.




생각보다 원룸이나 좁은 공간에서 신생아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 부모들이 많다. 대부분은 아기를 출산하며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지만, 새로운 집 입주를 기다려야 하거나 기타 사정으로 이사를 가기 힘든 경우도 있다.


다른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잠시 머무르든, 계속 쭉 살아가든, 작은 집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이 걱정되는 이들에게 실생활에서 얻은 몇 가지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1.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원룸에서 공기청정기제습기는 필수이다. 특히 베란다가 따로 없어 실내 건조를 해야 한다면 더더욱. 건조기를 설치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제습기를 빨래 옆에 두는 것으로도 빨리 마른다. 특히 아기가 있으면 늘 적정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제습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2. 답답하기 쉬운 원룸 구조상 배치를 여러 번 바꿨다. 당시 (빌트인 옷장을 제외하고) 우리 집에서 움직일 수 없었던 가구는 TV장과 저상형 퀸 침대, 책장뿐이었다. 아기 침대는 밸크로로 되어 매트로 넓게 활용할 수 있는 범퍼형 침대를 구입해서, 침대로 쓰기도 하고 매트로 사용하기도 했다. 트롤리아기 옷 행거도 바퀴가 달려 있어 안전장치를 해제하면 어디로든 이동이 쉬운 제품을 사용했다.



3. 아기가 기어 다닐 무렵에는 집중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줬다. '베이비써클'이라는 이름의 물건이었는데, 조립형이라 설치와 분리가 쉬워서 좋았다. 아쉬운 점은 선택할 수 있는 색상이 딱 하나인데 다소 칙칙한 갈색이다. 그러나 아이는 정말 좋아했다. 장난감을 모두 한 곳에 모아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4. 작은 집은 특히 수납공간이 많이 부족하다. 1년 미만의 신생아는 발달 단계에 따라 필요한 장난감이 수시로 바뀐다. 우리는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점퍼루를 처분하고, 인근 육아종합지원센터의 장난감 도서관에서 장난감을 대여해서 사용했다. 쏘서, 어라운드위고 등의 부피가 큰 장난감부터 오뚝이, 헝겊책까지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을 대여할 수 있다.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대여했던 장난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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