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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Nov 01. 2021

"엄마가 언어재활사면 아이도 말을 잘하겠네요."

책임감과 욕심, 기다림과 방임의 경계에서

출산 전까지 언어재활사로 일하면서 말이 느린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나라 나이로 4~5살이지만 "엄마 물 줘요." 등의 문장을 표현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아이도 꽤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함께 놀고, 그 안에서 아이의 발화를 유도했다. 또 아이의 반응과 변화에 대해 양육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육자들은 모두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이가 언제 말이 트일까요?"


나도 궁금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내가 맡았던 아이가 말이 트여서 조잘조잘 얘기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꿈도 여러 번 꾸었다. 대학원에서 '말이 느린 아이들'의 정의와 원인, 접근법 등에 대해 배웠지만 실제로 현장에 들어가면 '원인이 이러하니 이렇게 접근하라'라고 명쾌한 답을 던져주지 않는다. 마치 탐정처럼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실마리를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언어 이해력이 낮으면 언어 자극을 풍부하게 주고, 구강의 움직임이 둔하다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저에 언어 표현을 방해하는 발달장애가 있다면 이에 맞는 치료를 하는 식이다.   






이런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자연히 나의 궁금증은 아이의 '언어발달'에 꽂혔다. "아이를 키우면서 언어 발달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는 선배 치료사들의 말을 생각하며, 나는 아이의 옹알이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아가 시절부터 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그런데 돌 무렵에 '엄마', '아빠'를 발화한 아이는 꽤 오랫동안 표현하는 언어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2단어 연결의 분기점이 된다는 만 18개월이 되었지만, 아이는 단어로만 표현을 했고 표현하는 단어의 개수도 쉬이 늘지 않았다.



아마 환경적인 요인도 한몫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하루의 70%를 '둘이서만' '집 안에서' 지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자꾸 조바심이 났다. 24시간을 옆에서 함께 하는 엄마가 언어재활사인데...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에게 언어 자극을 주고는 있었다. 너무 복잡한 문장보다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적당한 길이의 문장을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아이가 책을 들고 오면 마다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주었다. 이러한 활동이 언어 이해력 향상에는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막상 발화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언어재활사여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부분은 전혀 의외의 영역이었다. "왜 아이가 문장으로 말을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신경을 안 쓰고 있나?"(실제로는 엄청 썼다) 걱정이 될 때마다, 언어 검사 양식을 꺼내 들었다. 아이는 비록 언어 표현이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언어 이해력은 또래 수준에 맞게 발전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수치는 나의 불안감 감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두돌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책을 보던 아이가 문장을 천천히 한 단어씩 끊어서, 분명하게 말했다.

"안녕", "나는", "에디야."



한 번 말이 트이고 나니, 아이의 표현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제 막 생후 1000일을 넘긴 우리 아이는 "엄마 이따가 밥 먹고 놀이터 가자."처럼 제법 긴 문장을 구사한다. 밖에 나가면 '몇 살이에요? 말이 참 빠르네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유달리 작은 체구 때문에 더 어리게 느껴지는 효과도 있다). 작년 이맘때쯤 했던 고민이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부모의 역할은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부모로서 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도 있었다. 아이의 내적 발달을 관찰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동시에 조바심을 내려놓고 아이가 가진 고유의 타이밍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책임감이고 어디까지가 욕심인지, 어디까지가 기다림이고 어디까지가 방임인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일을 부모들은 해내야 한다.


 




한때는 내가 맡은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설치던 때가 있었다. 나도 그러한데, 한 아이의 보호자로 평생을 헌신하는 부모님의 책임감은 오죽할까. "아이가 말이 느린데, 혹시 임신 기간에 커피를 조금 마셔서 그런 걸까요?" 초임 치료사 시절에 한 어머니께 들었던 말이다. 그때의 나는 "그럴 리가요!"라고 말하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분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었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엄마가 언어재활사라고 해서 아이가 말을 꼭 빨리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는 꼭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의 말이 느린 것이 꼭 내 책임 같았다'. 부모가 가지는 죄책감은 이토록 비이성적이다. 주위에서 '조언'이랍시고 몇 마디 보태면 이러한 감정은 배가 된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너무 신경을 못 써줬나? 혹시 내가 일을 해서 그럴까?' 이렇게 꼬리를 물다 보면 임신했을 때 한 두 잔 마신 커피에까지 생각이 가 닿는 것이다.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던 그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앉아 있었을 내가 과연 미더웠을지, 그들에게 건넨 나의 말 한마디가 어떻게 다가갔을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나중에 다시 현장에 나가게 된다면, 나는 아이의 말이 늦어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조용히 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사실은요, 저희 아이도 두 돌 다 될 때까지 단어로만 말을 했답니다. 심지어 '물'도 얘기 안 했어요!"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올 그들의 마음이 그렇게라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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