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겸비 Feb 01. 2022

세 번째 생일을 맞은 너에게

그리고 너의 '엄마'인 나에게


너에게


조산기로 빙판 위에 발을 내딛듯 조심스레 견뎌온 몇 달, 너와의 만남은 실로 갑자기 발이 쑥 들어가 물에 빠지는 듯 급작스러운 경험이었어. 아마 너도 많이 어리둥절했을 거야. 내가 진통으로 끙끙 앓는 동안에도 너는 평소와 다름없이 발로 자궁벽을 꾹 밀며 놀고 있었으니까.


처음으로 느껴지는 통증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구급차를 타고 밤공기를 가르며 대학병원에 도착하던 날, 영겁처럼 느껴지던 진통의 시간을 통과해 마침내 무사히 너를 만난 날. 너도 나도 무사하다는 걸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아직도 입원실 안으로 쏟아져내리던 눈부신 아침 햇살이 떠올라. 너는 그런 존재였단다.



처음 엄마가 되어 모든 게 낯설고 서툴러 너를 뿔나게 한 적도 여러 번이었어. 네가 울 때마다 나도 어쩔 줄 몰라 했고. '너는 나를 엄마로 만나 모든 생을 의탁했는데,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을 지닌 엄마일까'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했어.

 

너로 인해 많이 공부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도 성장했어. 네가 우는 건 나를 책하거나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너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연습을 했어. 그리고 그 연습은 아직도 진행 중이야.



세돌이 다가오며 부쩍 많은 것을 흡수하고 또 표현하는 너를 보며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걸 느껴. 엉뚱한 말과 모습에 웃다가, 이해할 수 없는 너의 짜증이나 요구욱하다가, 그런 내 모습에 실망하다가, 나를 향한 미소에 사르르 녹기도 하지. 내 행동과 말투를 거울처럼 따라 하는 모습에 책임감을 느끼기도 해. 너를 만나기 전에는 미처 몰랐을 다채로운 순간들이야.


불완전한 엄마라서, '사랑'과 '관심'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너를 힘들게 할 수도 있고 외롭게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조차 완벽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아. 하지만 네가 이미 내게 충분한 존재이듯, 나도 충분한 엄마로서 늘 곁에 있을 거야. (누군가는 진부하다고 하지만) 너에게는 몇천 번이고 들려주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이 편지를 마무리할게.


사랑해.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에게


3년 전 아이가 세상에 나온 날, 아이의 가슴팍에 붙은 이름표를 보면서 기분이 묘했어. 아직 이름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의 엄마는 나라고, 그 이름표가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



정말 간절히 기다려 왔던 아이였지만 그럼에도 육아는 쉽지 않았어. 오롯이 나의 미래를 향하던 시선을 작은 아기에게 돌려 살아야 하는 일, 아이의 기분과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일, 소소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꾸준히 견뎌내는 일, 익숙하지 않아 힘들고 늘 불안했었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려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삐그덕 대는 내 모습이 싫어 외면하고 싶기도 했었어.


하지만 작은 아이를 돌보며 깨달은 게 있어. '나' 또한 여린 아이를 돌보듯 아껴줘야 하는 존재라는 걸. 그걸 알지 못했던 내게 신께서는 '아이'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연습할 기회를 주셨던 거야. 생각보다 별 볼 일 없고 흠이 많지만, 누군가에겐 이미 그 자체로 아름다운 '나'라는 걸 알게 하시기 위해서...



"엄마!!!"하고 불리며 안기는 아이를 보며, 이 순간을 위해 나는 그 오랜 고민과 애씀의 시간을 건너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산을 넘으면 더 큰 산이 나타나는 게 육아'라고들 하지만, 그 산을 넘을 나의 심장 또한 더 튼튼해지리라는 확신이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나도 엄마가 된 지 3년밖에 안 되었잖아. 충분히, 제법, 잘 해왔어. 한 팔로도 들릴만큼 작던 아이가 먹고 자고 놀며 성장한 1097일의 시간 동안, 엄마로서의 나도 그만큼 자라왔을 테니까. 불안함과 고민은 조금 덜고 '선물 같은 지금 이 시간'을 맘껏 누리렴.


축하해.

33살, 엄마 3주년을 맞은 너를.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가 언어재활사면 아이도 말을 잘하겠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