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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Oct 15. 2021

사람들은 왜 MBTI에 열광할까?

반가움과 우려 사이


내가 MBTI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고등학교 교실에서였다. 검사를 하게 된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딱 이거였다. "대박!"


겉으로는 자기 할 일을 착실히 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또래와 어울리는 것보다 도서관에 콕 박혀 사색에 잠기기를 좋아했던 아이, 어딘가 모르게 바닥으로부터 몇 센티는 둥 떠있는 듯한 아이, 누구보다 차분한 것 같지만 한 번 눈물이 터지면 그 눈물에 둥실둥실 떠내려갈 것처럼 울던 아이. 이런 나의 특성을 'INFP'라는 알파벳 네 자의 조합으로 깔끔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 나는 MBTI, 에니어그램 등 성격유형과 관련된 테스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심리학과 사회복지학을 놓고 고심하다가 후자를 선택했고, 다시 대학원에서 언어병리학을 공부하며 언어재활사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서는 '성격(personality)'보다 더 근본적인 '기질(temperament)'에 관심이 생겨 TCI나 STA 같은 기질 검사 교육을 이수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나의 집착(?)도 MBTI를 처음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그날부터였나 보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약간 첫사랑 같은 느낌이랄까.




언젠가부터 MBTI가 다시 뜨기 시작했다. '과몰입 금지'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혈액형을 묻는 것만큼이나 MBTI 유형을 묻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유튜브에서도 관련 콘텐츠가 넘쳐난다. 사실 MBTI는 1962년에 첫 매뉴얼이 개발되었으니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도구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MBTI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 생각해봤다.



1. 애초에 사람에게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유형화하는 본능이 존재한다.


사람은 자신을 먼저 인식한 후, 외부 세상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판단한다. 나, 내 가족, 내 지역, 내 사회. 이 본능은 인류가 타자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공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물론 이를 오남용 하면 '편 가르기'가 되어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단 '나'가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해야 외부를 판단할 수 있다. 아이들이 18개월 무렵에 "아니", "싫어"를 반복하며 양육자의 진을 빼는 것도, 본격적으로 자아를 형성하면서 양육자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달의 과정인 셈이다.


출처: wikipedia


그런 의미에서 MBTI는 네 개의 알파벳만으로 나와 타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비록 불완전한 정보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에 재미를 느끼고 관심을 가진다. MBTI 유형에 줄임말을 붙이고(예: ESTJ-잇티제, INFP-인프피) 관련 콘텐츠를 생성하며 같은 유형의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사회문화놀이'인 셈이다.



2. 사회가 개개인의 특성에 관심을 가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꽤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구성원 개개인이 전체 사회 분위기에 맞추는 게 자연스러웠다.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튀지 않고 무난하게 사는 게 제일이라고 여겨졌다. 내가 누구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나'를 드러내면 오히려 잘난 척한다고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자신의 고유함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더 강해졌다. 게다가 현실 세계와 다른 성격으로 살아볼 기회도 있다. 나부터도 그렇다. '본캐'의 나는 수줍음 많고 튀기를 싫어하지만, '부캐'의 나는 용감함을 한 겹 장착한다. '디지털 이주민'인 나도 그러할진대 온라인 플랫폼과 메타버스에 친숙한 요즘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마치 이중언어를 쓰는 것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맥락에 따라 성격을 자유자재로 전환(switching)시키기도 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 뭔지 궁금해한다. 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꽤 오래전에 개발된 MBTI가 지금 흥행하는 이유도 이런 사회적 니즈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3. MBTI 검사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쉽다


MBTI 외에도 DISC, NEO-PI-R, TCI 등 비슷한 요인을 측정하는 다양한 검사가 있다. 심지어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거쳐 신뢰도와 타당도가 검증된 검사들이다. 그에 비해 MBTI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응답하는지를 측정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고, 검사의 과학적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있다.


이러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의 입장에서는 역시 MBTI가 가장 간결하고 직관적이다. 검사 시행도 상당히 간단한 편이며(이러한 점 때문에 유사 검사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16개의 유형으로 나뉘어서 크게 복잡하지도 않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오히려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경영학 또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역설적이게도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울수록 그 검사가 오남용 될 소지도 많다. MBTI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해석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음에도, 사람들은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하진 않는다. 때문에 해석이 잘못되어도 계속 왜곡된 프레임을 갖고 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MBTI만큼 빛과 그림자가 극명한 검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MBTI를 통해 내가 평소에 내가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행동이 편한지... 비로소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을 발견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첫걸음이다. 나 또한 그랬었고, 그래서 꽤 오랫동안 'MBTI 덕후'였던 시절이 있었다.


문제는, 앞서 지적했듯이 정확한 해석과 검증이 수반되지 않으면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런 부작용이 곳곳에 보인다. '특정 유형은 이러하다'라고 단정하는 자료와 '유형별 궁합 순위'가 SNS를 떠돈다. 나 같은 애호가 수준의 사람도 걱정이 되는데, '찐'전문가는 얼마나 우려스럽겠는가.


언어치료를 비롯한 여러 검사의 시행과 해석 방법을 교육받으면서, 귀 따갑게 듣는 말이 다. "검사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파악할 수는 없다". 사람은 마치 색의 스펙트럼 같다. 편의상 임의로 '빨간색', '노란색' 이름을 붙였지만 그 카테고리 안에도 무수한 색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검사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종합해서 그 사람의 '일부분'만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출처: unsplash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도적이 등장한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 후에, 침대에 그를 눕히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몸을 늘려 죽이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톱으로 다리를 잘라 죽이는 잔혹한 인물이다. 결국 그는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자기가 했던 방법대로 다리를 잘려 죽는다. 그 이후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의 기준에 맞춰 남을 재단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관용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나도 검사로 내담자의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업을 가졌고 기질에 관한 공부를 계속 하고 있지만, 그 너머까지 예단하지 않으려 바지런히 노력한다.  MBTI가 또 다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지 않으려면, 사람이라는 소우주를 우리가 미처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겸손함을 먼저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네 글자의 알파벳, 그 너머에 있는 온전한 '한 사람'마주하게 될 것이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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