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겸비 Aug 18. 2021

결국 나는 완벽하지 않은 엄마

전직 언어재활사 현직 엄마의 자기성찰

나의 직업은 언어재활사이다. 주로 아동과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임신 초기에 일을 그만둔 이후, 계속 '전업맘'으로 살고 있다. 벌써 햇수로 3년차이다. 아이의 나이만큼 나의 경력 단절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아주 일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틈틈이 홈티(가정방문 언어치료)도 하고, 언어재활사 국가시험 대비에 관한 전자책을 출간하기도 했다(조산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언어재활사 1급 시험을 2년이나 준비한 것이 전화위복이 될 줄은 몰랐다). 감을 놓치지 않으려 보수교육도 성실하게 수강하고, 관련 책들도 꾸준하게 읽고 있다.



그러나 주 6일을 치열하게 임상 현장에서 일했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 나의 삶은 마치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잠깐 일을 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예 '엄마'로 직업이 바뀐 걸까? 남편의 퇴근 시간은 늦고, 혹여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플 때 맡길 곳이 없다. 남편의 이직으로 이사를 오면서,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친척들과는 4시간이 넘는 거리로 떨어졌다. 남편과 어린이집의 지원을 받지만, 결국 내 아이 돌봄의 최전선은 내가 맡아야 한다.




내가 선택해서 들어온 '엄마'의 길이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전문가로서 내 아이 육아는 성공적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특히 내 아이에게는 '완벽한 엄마'이고 싶었다. 여기서 '완벽한 엄마'란 '아이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온전히 사랑해주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상이 높을수록 현실은 뼈아팠다. 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나의 유년시절에 비추어 헤아려보는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와 다른 존재를 '내 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판이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일례로 나는 청각이 민감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와도 표현을 숨기는 편이다.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그런데 아이는 기본값이 하이톤,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악!!!!!" 하고 소리를 질러서 '다쳤나?' 깜짝 놀라 뛰어가 보면, "엄마 이거 앙 대(안 돼)!" 하면서 장난감을 쑥 내민다. 큰일은 아니구나 안도하면서도, 아이의 비명에 놀란 가슴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떼를 쓰는 행동이 생긴 두 돌 즈음에는 양육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했다. 아이가 떼를 쓸 때 '이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혹 아이가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이나 피로감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닌지 먼저 살펴보고, 만약 아니라면 아이의 기분을 먼저 읽어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명확하게 설명해줄 것, 소리는 지르지 않되 단호한 말투와 표정을 유지할 것, 아이가 스스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다릴 것...


남편이 포착한 훈육.. 아니 진지한 대화의 현장


그러나 아이가 고주파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나는 이론은 다 집어던지고 우선 저 소리를 안 듣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아이가 소리를 지를 것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을 때도 정말 많았다. 물론 떼를 쓸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화내는 것이 싫어 자꾸 얼르기만 하면 부모로서의 지도력을 잃고 만다. 안다. 알기는 아는데, 가끔은 그냥 모른 척하고 싶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한참을 헤맸다. 울기도 많이 울고 아이에게 실수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 습하고 구질구질한 과정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우선 아이를 낳기 전에 내가 언어재활사로 만났던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한 케이스 한 케이스에 집중하고 열정도 넘쳤었다. 그러나 그 '열심'에서 나왔던 말들이 엄마들의 마음에 오히려 생채기를 낸 적은 없었을까? 뼈아프게 되돌아보았다.


아이를 낳아본 경험 하나만으로 훌륭한 언어재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육아 경험에 비추어 상대를 재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의 불안과 절박함을 공감하는 동시에, 전문가로서의 균형을 맞춘다면 정말 좋은 치료사가 될 수 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 육아의 어려움을 공감해주는 치료사에게 부모님들은 마음을 더 빨리 열지 않겠는가.



또 개인적으로는 나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은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 전문가랍시고 내세웠던 지적 허영심이 무너졌다. 사실 언어재활사로 일할 때는 차분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자애로움과 단호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 아이에게는 그게 잘 안 되다 보니, 아이가 별나서 그렇다고 내적 합리화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기질'과 '상호작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워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공부였는데, 오히려 내가 한방 얻어맞았다. 아이는 '유별'난 게 아니라 그저 '특별'할 뿐이었다. 내 관점부터 다시 초기화했다. 아이의 언행이나 조건에 내 애정을 대입시키지 않고, 존재만으로 온전히 기뻐할 것!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방법을 찾고, 상호작용 중심으로 육아를 하면서 불필요한 마찰도 줄어들고, 양육 자신감도 회복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삼십 평생을 살며 잘 모르고 살았던 나의 기질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성장이 가능했을까?




'엄마', 특히 '전업맘'으로서의 나를 긍정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현장에서 일하던 나보다는 조금 덜 근사하게 느껴진다. 어떤 물질적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성과도 없다.


하지만 이 시간이 '아무 소득이 없는 자기희생의 삶'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이전의 나보다 인격적으로 더 성숙하고 성장했음을 느낀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함께 자란다. 조금씩, 조금씩.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실수하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음을 안다. 결국 나는 완벽하지 않은 엄마이다. 다만 아이에게 같은 실수를 최대한 반복하지 않고, 잘못을 했다면 '미안하다'라고 사과하고,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분주한 육아의 틈을 찾아 노트북을 켠다. 자격증 공부도 하고, 강의도 듣고, 글도 쓴다. '이렇게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면 완벽한 엄마는 되지 못해도 더 좋은 엄마는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허약체질이 엄마가 되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