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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Nov 21. 2021

"엄마 매워! 아빠 매워!"

질풍노도의 3살을 키우는 엄마의 자세

33개월에 들어선 아이는 요즘 까칠하기 그지없다. 내가 사람을 키우는 건지 사포를 키우는 건지... 워낙에 자기 주도성이 강한 기질인 데다가, 인지가 성장하면서 점점 요구사항에 디테일이 붙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맘마'-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아이는 이렇게 부른다. 우유인 걸 알고 있지만 그냥 찬 우유를 주면 안 된다. 그건 맘마가 아니다-를 찾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 '맘마'는 꼭 빨대컵으로 마셔야 하며, 적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전자레인지 버튼을 자신이 누르고 손잡이와 빨대를 자신이 조립한다는 규칙이 생겼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며칠 전에는 아이가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고, 그 앞에서 쳐다본다'는 규칙을 추가했다. 아이의 눈을 해칠 수 있기에, 위험한 것은 안 된다는 '훈육 거름망의 원칙'을 근거로 하여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아이의 반발은 강력했다! "전자레인지 앞은 뜨거워."라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고, "위험하니까 냉장고 옆에서 기다리자."라고 대안도 제시했지만 전자레인지가 돌아가자마자 아이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고, 나도 특단의 조치(물리력으로 멀리 떼어놓기)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멀리 떼어놓으려고 겨드랑이에 손을 넣는 순간 아이가 슬라임처럼 온몸에 힘을 풀면서 저항했다. 아이가 떨어져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팔에 힘을 주었다.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 놓치지 않으려니 팔뚝이 뻐근하게 아려왔다. '한동안 쉬었던 필라테스 수업을 다시 가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 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흘기며 이렇게 소리쳤다.



"엄마 매워!!!"



맵다고? 갑자기? 나는 전공을 발휘하여 상황적 맥락에서 아이가 왜 이런 말을 외쳤는지 생각했다. 아, '밉다'를 '맵다'로 발음한 거구나!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그 상황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아이의 말이 웃겨서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아직 발달 중인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주로 먹히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는데,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해"를 "엄마 미워", "엄마 저리 가" 등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내 아이에게도 이런 날이 언젠가 오리라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싫어", "아니", "미워" 3종 세트로 무장한 질풍노도의 3살 배기와 씨름하고 있노라면 "도망가자~"라는 선우정아의 노랫말이 귓가에 들리는 기분이다.


기질에 관해서 배울 때, 이 시기는 자신이 가진 기질을 마음껏 표출하는 '발출의 시기'라고 배웠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기질을 바탕으로 소통한다. 그러나 만 3세가 되면, 본격적으로 양육자 외부의 세계, 즉 사회에 나가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의 기질을 조절해가는 방법을 알아가게 된다. 그렇게 조화시키면서 성격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매사에 주도적이고 활동적인 이 아이 또한 만 3세를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기질을 가감 없이 발휘 중이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어머님, 동생 생기셨어요?"라고 조심스레 물어오실 정도로, 생떼가 차원이 다르게 업그레이드되었다(진짜 동생이 생기면 이유라도 있구나 할 텐데...). 원래도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기질인 데다가 사회적인 성격의 옷을 입은 나는 아이가 늘 신기하면서도 어렵다. 아마 아이의 기질을 잘 모르고 있었다면 육아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갔으리라. 그럴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신을 되새겨본다. 뭐, 언덕 넘으면 산이 기다리는 게 육아라고는 하지만.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 어쩌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모진 말로 나의 마음을 후벼 팔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오히려 반항기 넘치는 이 시절의 꼬맹이를 그리워하게 될까? 그때는 좀 더 성숙한 엄마가 되어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이가 자라는 시간에 비례해서 나도 좋은 엄마로 자랄 수 있다면...


오늘도 아이는 이불이 마음에 안 든다며 한참을 칭얼거리다 잠들었다. 아이가 잠든 밤은 참 신기하다. 아이의 울음과 떼 속에서 중심을 잡느라 고단했던 마음이 고요하게 정돈된다. '미워'를 '매워'라고 말하는 네가 귀여워서 조금 웃었어. 그렇게라도 웃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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