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난임?, 반복되는 좌절의 굴레
난임과 직장생활, 그 딜레마 2
2세 계획을 하자마자 처음부터 난임클리닉을 방문하는 부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수차례 노력을 해봐도 소식이 없을 경우, 그제야 조심스레 난임 병원의 문을 두드려 본다.
나의 경우, 자궁내막증 수술 이력도 있어 약 5개월 정도 시도하고 난임 병원을 찾았다.
5개월이 누군가에게는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좌절의 굴레를 한 번이라도 겪어봤다면 기대감이 한껏 상승한 뒤 멘탈이 바사삭 부서지면서 밀려오는 공허함이 뭔지 알 것이다.
내 기준으로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겪어왔다.
몸 보양기
생리 시작하고 10~14일까지의 기간으로, 두 부부가 모두 의기 충만할 때다.
아기가 들어서기에 좋은 몸으로 가꾸겠다며 좋은 음식도 많이 먹고 엽산과 철분제, 오메가 3, 미오 이노시톨 등등의 영양제도 꾸준히 복용한다.
착상에 안 좋답시고 미뤘던 운동도 다시 열심히 한다.
폭풍 부부관계기
난임 병원 다니기 전엔 배란테스트기로 부부관계 시기를 체크했다. 두 줄이 선명해진 날부터 2~3일간 열심히 달린다.
난임이 아닌 분들은 공감 못할 수도 있지만, 정말, 정말 힘들다. 두 사람과 그 당시의 분위기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할 섹스가 정해진 시기에 요이땅! 하며 며칠간 진행돼야 한다. 당연히 내키지 않아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고 하루 일과에 지쳐 잠만 자고 싶은데도 의무감에 사로잡혀 섹스를 할 때도 있다. 3일째 쯤엔 누구 한 명이 분위기 잡으면 다른 한 명이 비명 지르고 도망갈 때도 있다. 장난이지만 진심이 담긴걸 알기에 무거운 장난이다.
천년만년의 기다림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만 남는다. 문제는 하루가 1개월 같고 열흘이 10개월 같은 게,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체감하게 된다.
얼리 임신테스트기가 배란 후 9~10일째부터 반응을 하고 일반 임신테스트기가 배란 후 14일째 즈음에 반응한다. 얼리와 일반 테스트기의 가격차이는 2배 정도다. 하지만 저 4일을 가만히 기다릴 수 없어 7~8일째부터 얼리 임신테스트기를 펑펑 낭비해버린다.
좌절
아침에 눈뜨면 화장실로 직행. 단호박(임테기가 한 줄 일 경우)을 먹어도 혼자만 씁쓸함을 삼키고 싶어 남편 몰래 새벽에 일어나 임테기를 체크하고 잠든 적도 여러 번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줄을 역시나 또 못 보면 우울한 상태로 출근길에 오른다.
임신소식을 기대할 날짜가 지날 때쯤이면 그동안 말을 아끼느라 물어보지 않던 남편에게 출근 후 카톡으로 비임신 사실을 알린다.
정말 신기하게도 배란일로부터 딱 14일이 되면 생리가 비치기 시작한다. 그날 밤은 참아왔던 와인을 드링킹 하면서,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와서 기쁘다며 애써 마음을 다스린다.
이 과정은 난임 병원을 다니면서도 계속 거쳐야 한다. 우리 부부는 난임클리닉을 통해 자연임신을 5번 더 시도했다. 매달 회복탄력성을 시험받고 있지만 이 또한 살아가는 과정이라며 서로를 응원해주고 일으켜주고 있다. 이번 달도 행운의 베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