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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rkat Aug 06. 2019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서 

*본 글은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저는 2013년부터 영화관에서 관람한 영화 팜플렛을 수집했습니다. 영화관에 도착하면 예매한 영화의 팜플렛을 챙기는 일부터 합니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을 봤습니다. 팜플렛에 적혀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행복과 나눔, 커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하고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의식주'를 잘 갖추고 살아야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쾌적하고 안락한 집에서 살아야 행복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집을 중심으로 행복과 공간의 빈부격차, 사람의 의식이 공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줍니다.


공간으로 표현하는 계층

영화는 집을 중심으로 공간을 표현합니다. 먼저, 지상에도 지하에 있는 것도 아닌 모호한 형태의 반지하입니다. 영화는 아버지인 기택(송강호), 어머니인 충숙(장혜진), 아들인 기우(최우식), 딸인 기정(박소담)이 살고 있는 반지하 집을 비추면서 시작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지하는 이들의 가난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이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자 박스를 쉬지 않고 접어야 하며,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집 안에서 가장 높은 곳인 화장실 변기 위에 올라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반면, 동익(이선균)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유명 건축가가 지은 고급 주택입니다. 넓은 정원과 대리석으로 꾸며진 거실, 깨끗하게 정돈된 부엌과 욕실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동익의 집 곳곳을 비추면서 기택의 반지하와 비교합니다.


기택의 반지하와 동익의 고급 주택은 뚜렷한 선으로 구분된 계층입니다. 영화에서 동익은 직접적으로 '선'을 언급하면서 계층 간 선을 자연스럽게 긋습니다. 기택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동익의 집에서 일하게 된 기택의 가족은 동익의 가족이 없는 빈 집에서 비싼 술을 마시며 자기 집처럼 행동합니다. 이 장면에서 기택의 가족은 '우리 같은', '부자들은-' 등의 표현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계층을 구분하고 선을 긋습니다. 이렇게 공간으로 나눠진 계층은 서로를 경멸합니다. 동익은 기택을 냄새나는 존재로 여깁니다. 기택의 가족은 동익의 가족을 속여 넘기면서 순진하고 멍청하다며 비웃습니다.

기택의 가족이 동익의 집에서 마음껏 놀고 있을 때, 전 가정부였던 문광(이정은)이 등장하면서 아무도 몰랐던 집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동익의 집 지하 음식 저장고 선반을 밀면 또 다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납니다. 대피시설로 만들었다는 아무도 모르는 지하 공간에는 문광의 남편인 근세(박명훈)가 사채업자를 피해 수년 간 살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고급 주택과 반지하를 대비시키고, 그보다 더 한 지하 공간을 충격적으로 보여줍니다. 근세의 지하는 하늘도, 땅도, 사람도,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땅 속에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사회와 단절된 채로 살아 온 근세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렸습니다. 근세는 가끔은 여기서 태어난 것만 같고,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근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동익의 발소리 뿐입니다. 한줄기 빛조차 들지 않는 지하에서 근세는 아이러니하게도 빛으로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근세는 계단을 오르는 동익의 발걸음에 맞춰 버튼에 머리를 박으며 불을 켭니다. 그렇게 근세는 온 몸으로 '리스펙(Respect)'을 외치며 사람이라는 존재를 욕망합니다. 자기 존재마저 잃어버린 그 곳에서 존재를 확인 시켜줄 사람을 욕망합니다.



엄마, 집에서 하늘을 볼 수 있어요

기우는 동익의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 정원에 누워 충숙에게 위와 같이 말합니다. 동익의 고급 주택은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곳에 사는 사람의 시선은 하늘을 향합니다. 하지만 기택의 반지하는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영화는 기택의 반지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비추면서 '땅'의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일깨워 줍니다. 암울한 반지하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 것은 반지하는 '사람'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택의 반지하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기택과 기우가 취객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보여줍니다. 그렇게 기택의 가족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반면, 근세는 지하에서 하늘도, 땅도, 사람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존재를 확인 시켜줄 사람을 애타게 부르고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Das Sein bestimmt das Bewußtsein)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공간이라는 물질적 존재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그 시선은 곧 사람의 의식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시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지하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를 욕망한 근세는 오히려 우리가 근본적으로 잊고 살았던 것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 있고, 어디에 있더라도 우리는 사람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람으로 시선이 향해야 합니다. 계층 간 계층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영화 <기생충>은 제가 있는 공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충청남도 보령시로 사는 곳을 옮긴 지, 약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 여기 온 제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별명을 지어보자면 파괴왕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때려 부수고, 베어 넘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뒤돌아서면 풀이 나고 온갖 잡동사니가 엉켜 있는 이 곳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가꿔 나가고 있습니다. 머릿 속에는 이 곳을 어떻게 가꿔야 할까 뿐입니다. 장마가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때려 부수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다 때려 부수더라도, 그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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