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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dnesdayblue Aug 08. 2016

아가씨(Handmaiden)

내게 거짓말은 하지마..

'아가씨'는 영국 드라마 '핑거스미스'의 박찬욱식 리메이크작이다.


탐미주의자의 집착이 느껴지는 색감과 미쟝센, 스릴과 반전이 균형감 있게 배치된 서사구조, 긴장의 고삐를 살짝 풀어주는 유모어까지... 예의 박찬욱만의 스타일이 오롯히 담긴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전작들에 비해 친절하다.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에 부족함이 없고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숙희(김태리)와 히데코(김민희)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마치 문제집 뒤에 붙은 해답지를 보는 것 같은 쾌감마저 느끼게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히데코와 숙희다. 두 여자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멀리 달아난다.


히데코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후견인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 아래서 키워졌다. 그리고 서책 애호가인 에 의해 낭독 훈련을 받았다.

현재 그녀는 소수의 귀족 남자들을 대상으로 도색 소설을 낭독하고 그들의 변태적 성적 상상력을 충족시키고 있다.


숙희 역시 고아 소녀다. 소매치기 일을 하는 그녀는 사기꾼 후지와라 백작(하정우)의 제안을 받고 히데코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속고 속이는 스릴러의 구조를 하고 있지만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 사랑을 느끼면서 모든 계획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히데코가 숙희를 속이기 위해 유혹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진심이 되어버린다. 숙희 역시 히데코에 대해 연민과 함께 모성애마저 품는다. 히데코에게 젖을 주고 싶다 말하는 장면은 기이하면서도 히데코에 대한 숙희의 다층적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 둘의 본능적 사랑과 대비되어 코우즈키의 낭독회 장면은 인상적이다. 파티에 온 것인냥 연미복을 차려입는 남자들 앞에서 히데코는 도색소설 속 캐릭터들로 빙의되어 텍스트를 형상화시킨다.


목까지 채워 잠근 남자들의 연미복은 계급적 권위를 나타냄과 동시에 욕망의 자연스런 분출에 잠금장치를 해놓은 듯하다. 사내들의 욕정은 히데코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안에서 해소되고 희열을 맞는다.


이에 비해 히데코와 숙희는 본원적 욕망 앞에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사랑의 순간 아가씨와 하녀의 계급적 관계는 소멸된다.


영화의 한글 제목이 '아가씨'인 반면 영어 제목을 하녀를 의미하는 'Handmaiden'을 붙인 것은 두 여인을 계급적 서열을 넘어 동등한 자리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의도일 듯 싶다.


히데코는 숙희와의 사랑을 통해 그 동안 그녀를 가둬왔던 코우즈키의 육체적 심리적 자물쇠를 풀어버린다.


특별히 동성애적 취향을 지녀서가 아니다. 자기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감정에 솔직한 상대을 만났기 때문일거다.


영화에는 우키요에[浮世繪, ukiyo-e]라는 에도시대 일본 풍속화가 등장한다. 우키요는 '덧없는 세상'이란 뜻으로 속세를 의미한다. 기녀, 광대, 상인들의 생활을 주로 묘사했고 특히 남녀의 성애를 다룬 춘화가 유행했다.

전국시대 이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집단적 트라우마가 속세의 찰라적 쾌락에 집착하게 했다고 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국민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는데 아마도 영화속 연미복 남자들이 사회의 주류가 된 시기일 듯 싶다.

히데코와 숙희는 서로의 몸과 마음에 솔직했다. 짐짓 교양있는 척 허위의식에 사로 잡히지도 않았고 우키요에처럼 순간의 쾌락에만 매몰되지도 않았다.


'글 같은 건 배우면 그만이고 욕을 해도 좋고, 도둑질도 좋은데 나한테 거짓말만 하지마, 알았니?'


히데코가 숙희에게 건넨 말이다.

그녀는 이미 사랑의 전제조건은 '솔직함'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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