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디 여행을 좋아하게 태어났다.
역마살의 사주를 가졌다.
그런 나에게 올해는 참 재미가 없다.
작년에 세 번 정도를 머물렀던 호텔에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고,
국내선이라도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같이 여행을 다녔던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이번 해 따라 유독 일에 치여 살고 있고,
나 역시도 일주일 중에 월요일만은 꼭 쉬자는 말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죄다 장기전이라 뒤엉겨 붙어있고,
적당한 휴식을 잃은 나는 입 밖으로 내야 할 말을 적당하게 골라내지 못하고,
성질머리가 급해져서는 아직 도착하지 못한 엘리베이터를 보며 현대 기술을 탓하고 답답해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마땅히 쥐어주어야 하는 시간을 인내하지 못해, 내 손이 먼저 움직이는 꼴을 두 눈 뜨고 보고 있다가 이내 후회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8월로 설정했다.
8월만 지나가면 된다.
그럼 내가 알고 있는 나로 돌아올 수 있다.
잠시 내 손을 떠나 있던 것들을 영영 잃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9월에의 복귀를 꿈꾼다.
욱여넣었던 조각들을 걷어내야 했다.
해치워버릴 수 있는 작은 사건들을 먼저 처리했다.
해보지 않았던 행동들이 필요했다.
용기보다도 압박의 작용. '당장 하나씩 제거하지 않으면 넌 압사당할 거야.'
인내심을 잃은 덕에 빠르게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건들이 밀려있는 탓에 후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결정은 옳은 거여야 했다.
얼렁뚱땅이든 대강 완료했다고 빨간 줄을 북북 그어놓고선 물걸레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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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는 백인이 많았다.
한국인 외에 동양인은 글쎄.
유행이 획일적인 요즘에 동양인 간 구별이 어려워져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말 걸지 않았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면 그들은 내 걸음을 기다렸다.
매번 발에 치이는 길들이 생소했다.
내가 매일 듣던 소리와 다른 리듬이 울렸다.
나는 본디 노래를 좋아하게 태어났다.
첫째란 자고로 모든 태교를 한 몸에 받게 되는 덕에 유년시절은 클래식 음악으로 가득 찼다.
클래식 동아리, 밴드 동아리, 뮤지컬 동아리, (무교임에도) 끌려간 성당 미사 반주팀, 잠시 다녔던 작곡 학원이 그 뒤를 이었다.
을지로에서 명동을 향하는 횡단보도에 섰다.
가방에 넣어온 버즈를 움켜쥐었다가도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손에 힘을 풀었다.
한국어와 영어 외에 다른 언어로 떠드는 사람들.
평소에 듣지 않는 곡으로 이루어진 라운지의 음악.
가벼운 농담들. 목표가 없는 대화.
급하지 않은 발소리.
신경을 세워 귀 기울이거나, 그런 태도를 보여주어야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공감을 해주어야 하거나 따위의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은 멜로디가 되어 날아다녔다.
근무시간에 나는 전체 그림을 손보고, 길을 제시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옆 사무실에 전할 말을 부탁받는다.
출퇴근 길에 나는 기억하지도 못할 창밖의 공중에 초점을 고정한 채로 볼륨을 키운 노래를 듣는다.
나는 이방인이고 싶었다.
명동성당 뒷마당에서 사진을 찍지 말라는 내게 향하는 또렷한 한국말을 들었을 때 내 주위를 머무르던 따뜻한 구름이 가라앉았다.
빨간 숄을 두른 아주머니는 나를 향한 요청이 금지되어 있는 시간을 무시했다.
그녀는 잘못 알고 있었다.
성당 내부 촬영이 안 되는 건데 말이다.
빨간색 쇼핑백을 주섬주섬 챙겨 자리를 뜨는 그를 보고 옆 계단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했다.
"어휴, 간다."
같이 온 아이가 엄마가 뱉는 안도의 한숨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사진 찍지 말라고 잔소리하고 다녔잖아."
완전한 이방인이 아닌 지금이, 좋았다.
다회용 빨대를 사용한 지 오래되었다.
빨대 내부는 센 물줄기로 씻어 내고, 솔로 찌꺼기를 밀어내어 깨끗이 한다.
여기,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온다.
여기, 내가 정리해야 하는 사건들보다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처음 뒤적여보는 생각들에게 조각의 자리를 내주었다.
돌아가도 내 책상은 그대로 있다.
내 서랍에 들어있던, 잉크가 말라버린 펜들이 설핏 보이곤 했겠지.
밀크티를 마실 때 썼던 빨대에서 우유 자국이 있었던 것처럼.
계절이 바뀌는 일요일에 9월이 오기 전에 쓰지 못하는 펜들을 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