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 사람

나에게 필요한 사람을 정의해보는 것이 좋겠다.

by 나현

대부분의 나의 연애는 사랑을 구걸하는 상대방에 의해 끝이 났다. 나는 항상 친구가 많았고, 취미도 여러 개를 가지고 있었고, 일도 하고 있었으며, 학교도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본인을 애정하는 나의 감정을 알고는 있었다. 그들에게 할당된 시간에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다른 것들의 시간을 방해받는 건 싫었다. 인연을 끝내는 것보다 싫어했다.


매일같이 바쁜 나는 비교적 그렇지 않은 상대방에게 열등감까지 심어버렸고, 그 사람들은 본인의 효용가치에 대한 의심에 자존감을 무너뜨리며 애정을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들 모두가 모든 순간의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어 했다. 더 구차한 모습을 보여주기 전에 시야를 차단해버린 탓에 연애 기간도 하나같이 다 짧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그들이 필요하지 않았고, 만남을 끝내는 건 쉬웠다. 다시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들에게도 굳이 ‘나’ 일 필요가 있었는지, 살을 맞대고 있을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 아직도 의심한다. 탐색의 기간에 비해 만남의 기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다들 분명 ‘나’라는 사람의 색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쓸데없는 희망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각각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역할을 할당해주었을 뿐이다. 이미 들고 온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배우는 당신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로 필요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이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한 가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힘들다며 연락이 오는 이들도 종종 있다. 나에게만 풀어놓는다는 보따리도 많아서, 한 때는 감정 쓰레기통의 모습을 한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 ‘위로’ 따위를 바라보고 다가온 것이라면, 다시 돌아가서 아주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해줘야 할 텐데.


내 시간의 구성을 보면 앞의 이유 탓에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아, 한 가지 더. 제발 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있다. 단 한마디로 내 탓으로 돌리면서. “우리 관계가 있는데 왜 얘기를 안 해줘?”. 갑자기 '나'를 말하라고 하면 뭐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을 하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왜 당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류의 말을 풀어놓게 되는 사람과 끝까지 하지 않게 되는 사람은 처음부터 분명히 나누어져 있다. 첫인상을 맹신하는 편이라서. 그리고 스스로 검열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 그러나 또 이야기해줘야 할 텐데. 당신의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어떤 부분이 궁금한 건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함부로 물어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어느 구석에서 나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경험을 누적받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애당초에 나에게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 조차도 물어본 적이 없는 당신들이다. 당신들은 나를 통해서 많은 걸 해소하려고 하는데 ‘나’는 어떤 이득이 있는지 이런 종류의 관계들에서 해답을 받아본 적이 없다.


혹자는 앓는 소리를 원체 안 하는 내 탓으로 또 돌리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맞다. 그건 당신이 나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와 긴 시간을 보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나의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먼저 꺼낸다. 그런 나의 사람들에게는 내가 너무 작은 것까지 말하는 건 아닌지 간혹 미안함을 느낀다. 나를 위해 노력한 것 없이 나에게서 갈취하는 모든 것을 내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당신과 더 길게 보낼 시간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몇 문장 앞으로 돌아가서, 나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만큼, 나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상투적인 질문 대신 ‘진짜’ 궁금함을 가진 사람의 반짝거리는 눈이 보고 싶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가진 사랑을 담을 그릇은 이미 차고 넘친다고 알려주고 싶다. 나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한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는 매우 안정적이라 당신이 빼어나지 않다면, 나는 당신의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그 시간을, 이미 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보내주고 싶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 건, 한 사람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올릴 수 있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아주 같은 사람, 내 친구들과 아주 같은 사람임이 좋겠다. 내 삶의 틀을 무너뜨리지 않고 스며들어올 사람. 내가 다른 것들과의 순위를 재지 않아도 될 사람. 나의 힘을 괜히 빼지 않을 사람. 그러면서도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내 긴장을 조금은 완화시켜줄 수 있는 사람. 항상 온몸에 힘이 들어간 나를 슬금슬금 풀어내 줄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노력이 아닌 본연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좋겠다. 노력의 크기는 우하향 곡선을 그리니까. 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미 내 사람들이니 나도 당신에게 충분히 필요할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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