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전자책? 인간들의 삶의 이야기. 책.
우리의 생 앞에는 매시간 다양한 선택지가 놓인다.
지혜로운 선택이란 무엇인가. 합리적인 선택이란 어떤 것인가.
책과 독서는 우리 생에서 지혜롭고 합리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어떤 신간이 나왔나, 어떤 책들이 전자책으로 나왔는지, 이번 주 어떤 책들이 많이 읽히고 있고, 지난주 무슨 책들이 많이 팔렸는지를 관찰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책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고, '책의 재미'보다는 '책이 주는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는 나였다. 그렇게 일을 하고, 매일 책들을 보면서 출판사들의 특징도 알아가게 되고, 오랜 시간 동안 가치를 인정받아오는 고전들에 대해서도, 꽤 유명한 작가들의 신간에 대해서도 일반 사람들보다 빨리 알곤 했었다.
현재는 매일매일의 책 업계의 변화를 파악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를 일상 속의 가치,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그 무언가를 더 찾게 만들어주었고, 그 부분이 자연스럽게 책으로 채워지고 있다.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하면서 오는 설렘도, 새로운 사람들 혹은 기존의 소중한 지인들과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며 오는 유쾌함도 상당 부분 줄어들다 보니, 아마 유일하게 여전히 비슷한 비중으로 남아 있는 이와 같은 채워짐은 영상이나 책과 같은 콘텐츠 소비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세계서점기행이란 책은 2년 전에 샀던 책이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성장한 미국의 아마존, 국내에도 리디, yes24, 알라딘 등의 '책'을 상업화된 플랫폼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작고 특징적인 독립 서점들 또한 줄어들지 않고, 곳곳에 자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서만 해야 어울리는 소규모의 작가와의 대화 행사, 새로운 책들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큐레이션 한 소개 공간, 독자들 간의 간담회 등 이와 같은 행사들에 주목해보았다. 그리고, 그런 서점들을 궁금해했었다. 전 세계의 다른 오프라인 책방들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형태로 있고, 어떤 사람들이 오가는지, 그리고 점점 발전하고 있는지 등이 궁금해질 타이밍에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맛집 여행, 미술관 여행, 내가 지난번에 다녀온 웰니스 여행은 들어보았지만, 서점 여행은 처음 들어보았다. 책에 적힌 작가의 공간에 대한 느낌 혹은 관찰자적인 텍스트도 좋지만, 책으로 가득한 우디한 향이 나는 듯한 선명한 사진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마치 뉴욕, 상해, 오슬로, 도쿄 등에 있는, 아직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아지트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저 공간에서 맛있는 플랫화이트 한 잔과, 달콤한 마들렌 하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 두어 권이면 하루를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또한 그 순간이 그 공간에서 오며 가며 만난, 관심사,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의 짧고 의미 있는 대화들까지 함께 저장된다면 더 소중해지겠지.
브뤼셀, 벨기에에 있다는 Cook & Book 공간은 위와 같은 나의 상상에 맛있는 음식을 더했다 심지어! 책과 음식, 정신과 신체, 이성과 감성이라는 다른 차원들을 하나로 담아내다니! 미식가를 꿈꾸는? ㅎㅎㅎ 맛있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나에게 이 공간은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공간들이 소개가 된다. 어떤 공간은 실제 가보기 전까지는 이해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공간도 물론 있고, 뉴욕의 Strand와 같이 내가 이미 가보아서 그 공간에 마치 다시 돌아간냥 상상되며 읽히는 공간도 있었다. 혹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이미 너무나 유명한 공간, 사진과 영상에서 많이 봐서 익숙한 공간이지만, 아직은 가보지 않아서 동경이 되는 그 공간까지. 이 책을 보는 내내 사람들은 다른 생각들, 똑같은 공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상상해보게 될 것 같다.
종이책이 좋냐, 전자책이 좋냐. 이 부분은 큰 관전 포인트는 아니다. 여전히 효율성, 가성비, 그리고 빠른 정보 습득이 필요한 책들은 여전히 나는 전자책을 선택한다. 이 경험이 주는 만족감도 충분히 크다. 갑자기 밤 11시에 어떤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할 때, 유튜브에서 찾아봐도 되고, 포털에 검색해도 되지만, 전자책을 빠르게 구매해서 볼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 인간의 삶이 녹아든 책들, 내가 두 번 세 번이고 더 밑줄을 그어가면서 되돌아볼 책들은 당연히 종이책으로 본다. 그리고, 그 감성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절대 잃고 싶지 않은 가치다. 이런 책 속에서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것들, 생각을 만나는 경험은 소중하다.
인생에서 내가 사랑할 수 있고, 꼭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만나는 것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엄청나게 소중한 행복이다. 앞으로 천천히, 꾸준하게, 나의 소중한 책들을 찾아나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tvN에서 나왔던 책 관련 프로에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대표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모두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 맞아떨어질 때, 그것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이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책방에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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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1
세계서점기행
김언호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