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씁니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경 Jan 13. 2020

스토브리그를 보다가 떠오른 세대간 대통합 이야기

콘텐츠의 힘에 대하여

     어렸을 때, MBC에서 하는 '느낌표'를 정말 재미있게 봤었다.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에서 선정해준 책들은 고스란히 내 책장으로 들어왔고, '아침밥 먹자'를 보며 학창 시절 아침밥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그 외에도 다수의 코너를 통해 우리 가족들의 식탁 이야기의 주제들은 때마다 바뀌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가족들이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었던 것. 그것이 '느낌표'의 가장 큰 힘이 아니었을 까 싶었다. TV 앞에서 함께 볼 수 있는 건강한 프로그램, 그리고 건강한 웃음과 감동까지. 그리고 그 기반에는 건강한 콘텐츠가 있다. 튼튼한 콘텐츠는 모든 연령을 통틀어 사랑받고 퍼져나갈 수 있다. 요새 눈에 띄는 대통합 콘텐츠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 싶다.


1. 스토브리그

- SBS 금토 드라마 (주연 : 남궁민, 박은빈)
- 스토브리그란?
 야구가 끝난 비시즌 시기에 팀 전력 보강을 위해 선수영입과 연봉협상에 나서는 것을 지칭. 시즌이 끝난 후 팬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 선수들의 연봉 협상이나 트레이드 등에 관해 입씨름을 벌이는 데서 비롯된 말.


     요 몇 주 내 삶의 지분율 7할 정도 차지하고 있는 스토브리그. 야구는 9회 말 2아웃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이 드라마는 정말이지 신선한 소재였다. 포스터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이것은 (단순히) 야구 드라마가 아니다.'.

프런트의 이야기를 넘어 개개인의 정의와 가치관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그런 드라마다. 그리고 단단한 콘텐츠의 힘이 드러나는 드라마라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수많은 구단의 조언을 받아, 모든 야덕들은 서로 자기 구단의 이야기라며 현실 세계와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 세계를 혼동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농담입니다) 각종 야구 기사들의 베스트 댓글에는 스토브리그에 등장하는 야구 선수들과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실제 야구 선수들도 드라마 시청을 인증해가며 촬영 현장에 방문해 드라마 중 등장하는 '강두기' 선수를 선배처럼 생각할 정도라니 말 다 했지 뭐. 야덕들만 난리일까. 아니, 드라마 덕후들도 난리다. 캐릭터 해석과 연기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었던 믿고 보는 '남궁민'이라는 배우의 연기 때문. 백단장님이 남궁민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리고 박은빈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도 나는 정말이지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저 깊은 단전부터 복식호흡으로 화내는 장면들은 네이버TV에서 조회 수 20만이 넘어갈 정도로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나도 회사에서 틀어놓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이렇게 모든 커뮤니티를 대통합시킬 수 있는 드라마가 어디 있을까. 덕후들만 그런게 아니다. 우리집도 통합 시켰다. 야구를 잘 모르던 딸과, 스포츠 덕후인 엄마와 아들. 카톡의 주제는 스토브리그 재방송 시간과 각종 관련 기사들에 대한 정보로 가득하다. 가족 뿐일까. 회사에서도 책임님, 팀장님과 밥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야구의 '야'자도 잘 모르던 내가 이제는 FA가 어쩌고, 투수가 어쩌고 포수가 어쩌고 주절 거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다 스토브리그가 가르쳐 준 지식들. 덕후들의 경계를 허물고 세대간의 경계를 허문 스토브리그. 이제 SBS는 굿즈 덕후들까지 끌어모으기 위해서 제발 굿즈를 내 달라 이겁니다. 제가 컵부터 살게요. 우선.



2. 펭수

- EBS 최초 연습생 자이언트 펭귄
-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운영중


     아이들을 보여주다가 어른들이 빠져버린 펭수. 'EBS가 미쳤어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펭수의 파급력은 가히 2020년 새해 보신각종까지 울려버렸다. 이렇게까지 펭수가 유명하지 않던 어느 날의 일화다. 펭수의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고 있었는데 회사의 다른 부서 책임 님과 전화하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혹시 펭수 좋아하세요?' 우리는 동지애가 생겨서 서로 굿즈가 생기면 공유하기로 약속까지 했더랬다. 알고 보니 그분은 자녀와 함께 펭수 팬 사인회까지 다녀오셨던 찐 덕후였지 뭐람. 나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우리 가족들의 프사도 모두 펭수, 친구들의 프사도 모두 펭수, 심지어 각종 브랜드의 섭외 1순위도 펭수가 되어버린 펭시대 개막이렷다. 어린이부터 중고등 학생, 20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 정도로 콘텐츠의 파급력이란 대단하다. 정말이지 펭-하를 모르면 대화를 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펭수는 각종 짤과 유머, 정치, 드립의 소재로 사용되며 모든 영역을 넘나들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펭수가 수능특강 표지가 된 건 이제 너무 당연한 수순 아닐까? 이른 걱정일 지도 모르겠지만 펭수가 더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펭수는 펭수니까! 펭수다움을 잃지 않았으면! 정말이지 잘 만든 캐릭터 열 디즈니 안...안부럽다. 뽀로로, 핑크퐁 그리고 펭수까지 국산 캐릭터들이 세계적으로 더 흥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한국에도 디즈니랜드 같은 캐릭터형 테마파크가 생겼으면!



3. 유산슬

- MBC '놀면 뭐하니' 에서 데뷔한 트로트 신인
- 대표곡 :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사랑의 재개발 2


     콘텐츠를 잘 만들고, 잘 발전시켜서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김태호 PD 사단. 그들의 새로운 프로젝트 '놀면 뭐 하니'에서 제대로 사고 쳤다. MBC 연예대상에서 신인상을 탄 '유산슬'이 바로 그것. 2019년 갑작스러운 트로트 열풍의 중심엔 유산슬이 있었다. 나 또한 트로트는 가끔 회식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부르고, 내가 주로 듣거나 부를만한 장르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제대로 편견이 깨졌다. 유산슬 덕분. 오랜만에 가족들과도 함께 편하게 볼 수 있는 예능이 나타난 것 같다. 짜지도 맵지도 달지도 쓰지도 않은 담백한 맛의 예능. 그야말로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주말 예능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가족들과 함께 보면서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에 관해서 이야기도 하고, 따라부르고 춤도 출 수 있는 자연스러운 흥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콘텐츠. 참 잘 만들었다 싶다.


     조금 부끄럽지만, 유산슬 굿바이 콘서트를 보면서는 울어버렸다. 유산슬 무대 때문은 아니고 김연자 선생님의 아모르 파티 무대 때문에. 바로 그 전 무대가 홍진영 언니의 사랑의 배터리 리믹스 버전이었는데 나는 트로트가 EDM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언니가 콘서트 하면 정말.. 싸이 콘서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에너지 고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혼자 집에서 춤을 추며 흥을 내다가 바로 아모르 파티 무대가 나와서 소리를 질렀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려 가사를 보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왠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그날의 내 기분이 그랬던 것 같다.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는데, 가사가 쿵 하고 마음을 후벼팠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트로트 가사들이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인 대중가요에 비해 조금 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인생을 이야기하는 가사들이 많다고 해야 할까?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더라도 김이나 작사가님이 말씀하셨듯이 더 직설적인 표현으로 돌려 말하지 않는 것. 그런 점이 트로트의 장점이 아닐까.


     이렇게 트로트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트로트의 장점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유산슬은 트로트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제 '나는 트로트 가수다' 도 한다는데 조금 더 트로트 열풍이 퍼져서 전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음악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 어린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니까.





앞으로도 전 세대를 아우르는 콘텐츠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건 기획자로서의 바람.

매거진의 이전글 올해는 어디로 떠날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