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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Jan 19. 2020

어느 초보 혼술인의 취중 진담

비로소 알게된 혼술의 맛


혼술 : 네이버 오픈 사전에선 명사로
'혼자서 술을 마심, 또는 그렇게 마시는 술'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아직은 대부분의 혼술은 집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집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 물론 내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경우엔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제외.


     이렇게 혼술을 꺼리던 내가 유일하게 '혼술'이라는 것을 하는 경우는 혼자 여행을 떠난 타지에서 현지의 술을 너무 먹어보고 싶은 경우, 식사하면서 혹은 숙소 근처 바에서 술을 마셔보는 경우였다. 이 또한 집에서 먹는 술은 아니었으며,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고 한 두 잔만 마시고 숙소로 복귀하곤 했다. 그래, 나는 집에서 마시는 혼술을 싫어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나 드라마에서 집에서 혼술을 하는 것을 아무리 보아도 '나도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가서 마실래", 라고 말하는 편이었지 차라리. (혼자서 마시더라도 집보다는 밖에서 마시는 게 좋아, 라는 생각이었다) 집에서 풍기는 알코올 향, 그리고 생겨나는 쓰레기들 (안줏거리나 술병들) 취해 있는 내 모습 등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대학에 와서 술을 배워서인지, 집과 같은 편안한 상황에서 술을 먹는다는 것은 MT에 가서 술을 먹고 뻗는다, 와의 동의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직장 4년 차가 된 올해, 사실 이런 연차에 별로 의미를 두고 싶진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른 행동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시는 날은 몹시 힘든 날이었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집에 가면서 편의점을 들러 편의점을 '털어'오는 날은 나름 힘들었던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던 거다.




     어느 날 집 근처 새로 생긴 편의점을 살펴보던 중, 뭘 살까 고민하다가 친구가 말했던 본인의 냉장고가 떠올랐다. 냉장고 한쪽을 본인이 좋아하는 술로 가득 채워두었더니 너무 행복했다며 이야기하던 친구. 오늘은 나도 집에서 캔맥주를 마셔볼까, 라는 생각에 만원에 4캔 하는 편의점의 세계 맥주의 세계에 입문했다(그전에 안 마셔본 건 아니지만 그 날이야 말로 비로소 입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맥주 취향은 흑맥주라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탭 비어 형태의 가게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내가 블랑 생맥주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것. 한번 꽂힌 것은 질릴 때까지 먹는 김남매의 특성답게 (동생과 나는 음식 하나에 꽂히면 정말 답이 없게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통 그 음식이 겹치지 않는다)나는 블랑만 캔으로 4캔씩 매번 집으로 가져온다. 하지만 어쩐지 캔으로 마시는 맥주에선 가게에서 마시는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컵에 따라 마시면 탭 비어와 같이 수제 맥주와 비슷한 맛이 난다는 것이었다! 누가 말해주었는지, 아니면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은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따라서 해보았더니 정말 그 맛 그대로였다. 마침 우리 집에 500mL 컵이 있을 게 뭐람! 진짜 이건 운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컵은 내 애착템이 되었다 (이 전까지는 이 컵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이제 블랑 생맥주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으니 그 다음 고민은 안줏거리! 요즘 편의점에서 안주가 다양하고 완성도 있게 나온다고는 하지만 혼술의 안주란 뭐니뭐니해도 제대로 해먹지 않는 것. 요리하기 을매나 귀찮게요? 우선 내가 좋아하는 안주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과자는 생각보다 맥주와 안 어울렸고, 과일도 안 어울렸다. 그래, 역시 맥주의 친구들은 소시지와 감자튀김이었다.


     이제 갓 시작된 초보 혼술인의 혼술 타임. 몇 번의 혼술을 즐기고 나니 간단한 안주로는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제 다음 안주를 고민하고, 생각한다. 내가 꿈꾸는 술자리가 있다면, 나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 친구들을 초대해서 맛있는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때쯤엔 나만의 시그니처 요리를 할 줄 알게 된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만 n 년째다. 요즘 와인에도 빠져있는데 친구들이 말하길, 급할 땐 편의점 와인도 괜찮다고 혼자서 뚝딱 해치울 수 있다는 말까지 해주는 그녀들. 이제 집에 치즈도 사둬야겠다. 텅 빈 냉장고가 술로 가득하겠구나- 싶은 요즘.




     자 이제 상상해보자. 퇴근 후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잠시 휴식을 하다가 가볍게 꺼내 든 프라이팬, 그리고 불꽃 위에 소시지와 감자튀김. 거기에 막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맥주까지 따라 마시면 여기가 지상낙원 아닐까?


     혼술족이 되기엔 멀고, 혼술러가 되기엔 더 먼 초보 혼술인의 취중 진담.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혼술을 했다. (글은 핑계였던 것 같기도) 사실 이 글을 쓰려고 했던 글의 출발점은 도대체 왜 혼술을 하면 더 빨리, 더 적은양의 술에 취하는가, 였는데 아직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타인과 대화를 하지 않고 홀짝홀짝 마셔서 일까? 오히려 밖에서 마시는 술의 양보다 절대적인 양은 적은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취했으니까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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