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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Aug 02. 2020

와이파이가 고장 난 주말

고장 난 공유기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



     우리 집 와이파이가 고장 났다. 지난주 내내 야근이라서 집에 있을 시간이 적다 보니 집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할 시간이 현저히 적어서 몰랐다. 정확히 언제부터 고장 났는지도 모르겠다. 공유기가 고장 나니 당연히 TV도 안 나온다. 매일 집에 오면 핸드폰으로 음악만 틀어놓거나 유튜브를 틀어놔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우리 집 와이파이의 수명은 다했다.


     그런데 문제는 주말이었다. 요즘 나는 주말을 온전히 집에서 보낸다. 집에서 온전한 휴식을 갖고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중요해지고 있다. 뭐, 나름 복작복작 이것저것 하면서 보낸다. 그런데 그 시간 속에 와이파이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 TV

주말이면 챙겨보던 예능 (놀면 뭐하니, 도레미 마켓)을 다 못 봤다. 본방 사수 수준으로 매주 챙겨봤었는데 아쉬운 일. 야구 하이라이트도 다 못 봤고, 적막함을 깨기 위해 켜 두었던 그 TV의 소리가 사라지니 집이 정말 조용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오디오를 차지하던 기기가 OFF가 되니 거실이 정말 조용해졌다.


2. 아이패드

TV를 보지 않는 시간에는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켜놓고 생활하는 게 익숙해져 있었는데, 주말 동안 매번 핸드폰의 핫스팟을 켜서 생활하려니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서 난감했다. 그리고 괜히 느낌적인 느낌으로 핸드폰과 아이패드 두 개 다 속도가 느린 것 같은 기분. 비가 와서 그런가,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창 덕질에 빠져있어서 (내 우울은 덕질로 구원받곤 하니까) 봐야 할 영상도 들어야 할 노래도 많은데 못 보다니 너무 힘들었다. 핸드폰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답답하단 말이야. 좋은 건 크게 볼수록 더 좋으니까.


드라마도 못 보고, 예능도 못 보고 내 최애도 못 보는 주말, 너무 삭막했다.


3. 클라우드

덕질을 하며 핸드폰 사진첩이 터지려고 해서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클라우드 업로드가 자꾸 말썽이다. '집에 가서 와이파이로 빨리 해치워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집에 와이파이가 고장 났잖아? 세상에. 정말 필요했다면 밖으로 나갔겠지만 이 넘치는 비를 뚫고 나갈 자신과 용기는 없어서 집 안에서 멍하니 창문만 바라봤다.


진짜 용량 비워야 되는데 큰일이다. 내일은 점심시간에 카페에 가서라도 비워야겠다.


4. 노트북

집에서 미뤄둔 일들을 하려고 하는데, 집 와이파이가 말썽이니 노트북이 있어도 무용지물. 오늘 이 글도 핸드폰으로 타이핑 하기에는 답답해서 노트북으로 쓰고, 내 핸드폰의 핫스팟을 잡아서 올려야지. 진짜 핸드폰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뭐 어떻게든 살았겠지만 월요일에 바빴을 테다.


인터넷이 잡히지 않는 노트북은 나에게 있어 메모장 그 이상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에어컨은 제습으로 돌려놓고, 유일하게 세상과 연결 가능한 기기인 핸드폰을 위안 삼아 놀았다. 작은 액정 속에 세상이 담겨 있다. 내 친구들은 핸드폰 속 카톡에 있고, 세상의 이슈와 보고 싶고 알고 싶은 정보들도 모두 이 작은 액정 속에 가득하다. 와이파이가 없는 내 세상은 볼 수 있는 액정의 크기만큼 작아져 있었다.


     핸드폰이 없었던 시기에도 나는 이렇게 살았었나? 스마트폰 이전의 시기에는 내 주말은 어땠지?

문득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와이파이가 없어도 핸드폰에 기대어 지낸 주말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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