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씁니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경 Jul 26. 2020

이별이 서툰 사람

서투른 인간관계의 매듭



   사람마다 인간관계에서 힘든 부분이 제각각 다르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이별’하는 순간이 제일 힘들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건 너무 낯설고, 어색하고,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이기 때문. 그리고 나는 종종 그 감정들에 휩쓸리고 매몰된다. 왜 일까.




   이 생각의 뿌리를 찾다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한 동네에서 거주하며 초, 중, 고, 대학교를 나왔다. 전학을 가본 적도 없고,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간 적도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 모두가 함께 같은 동네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살다 보니, 눈물 나는 이별의 순간을 겪으며 성장하지 못했다. (역시 어린 시절에 강한 감정상태를 겪어봐야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 있는 걸까)


   인간관계에서의 이별들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많이 찾아왔다. 그전까지는 비슷한 동네, 비슷한 지역,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이렇다 할 ‘이별’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니 조금 더 큰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잘 따랐던 선배들과 좋아했던 친구들은 ‘졸업’을 하거나 ‘휴학’, ‘유학’, ‘군대’, ‘편입’ 등의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 


   동아리와 대외활동도 마찬가지였다. ‘탈퇴’를 하거나 ‘졸업’을 하거나 활동 기간이 ‘종료’되거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격동의 시기라 그런지 크고 작은 이별의 순간이 많이 생겨났다. 사람을 몹시 좋아했던 나로서는 ‘사회 속의 인간관계’라는 적당한 감정의 주고받음에 대해 체화하지 못했고, 내가 마음을 흠뻑 주었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슬퍼했다. 


   당시의 나는 나의 삶의 반경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 자체를 슬퍼했던 것 같다. 넓어진 인간관계의 넓이만큼 이별의 가능성 조차 커졌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느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결과, 누구에게나 쉽게 진심을 주지 말자, 라는 다소 냉소적인 마음이 자리 잡았다.




   20대를 지나오며 인간관계에 대해서 많이 무뎌지고, 마음을 덜 주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에 와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며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사수가 퇴사를 하거나, 팀을 옮기게 될 때마다 나는 똑같이 슬퍼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약 한 달 정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서운하고 슬픈 티를 안 내려고 해 봤지만 너무 티가 나서 대놓고 티를 내는 방향으로 바꿨다. 사수뿐만 아니라 동기, 같은 팀원, 옆 팀(가까웠던) 같이 일했던 유관 부서 등등 함께 일했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건 역시나 또 힘든 일이었다.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모든 ‘이별’을 최선을 다해 애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후회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더라고- 송별회면 송별회, 선물이면 선물,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미안했던 마음을 모두 담아 표현하고 그 사람의 선택을 응원해주는 것. 이젠 사회에서의 ‘이별’을 할 때 어느 정도의 방법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내가 떠나야 하는 경우엔 아직도 방법을 모르겠다. 가장 큰 고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