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
최근 다시 열렬한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덕통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정말 돌이켜보면 마치 내 뺨을 때리며 '정신 차려! 앞으로 너의 최애는 나야!' 하는 느낌이었달까)
지난 나의 덕질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렇게 강렬한 감정 또한 참 오랜만이다. 간지러운 단어들을 나열해 보자면 마치 첫사랑에 빠진 마냥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라 처음 덕질을 시작했을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하는 요즘이다.
덕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마음만 가지곤 안된다. 이 노력이었다면 전교 1등을 했겠다, 싶을 정도의 자료 수집과 시간 투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돈이 필요하다.
퇴근 후의 모든 시간을 덕질에 쏟으며 열심히 떡밥들을 줍고, 지난 영상들을 보며 공부하다 보니 과거와 많은 변화가 보였다.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시스템들도 등장했고, '라떼는' 사용하던 용어들이 변한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문화는 존재했다. 다행히도.
과연, 10대의 나는 30대의 내가 또다시 이렇게 열렬한 마음으로 덕질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오늘의 나는 70대의 나도 덕질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니까.
마음 한구석을 채워왔던 우울이 나를 잠식해서 숨을 못 쉴 것 같은 순간 구원받은 느낌을 과연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느낌을 덕질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아는 것 같다는 게 신기했다.
이전에 저장해두었던 글귀가 있었는데 최근 정말 공감하고 있어서 꼭 쓰고 싶었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인생에서 어둡고 추운 순간에
그 사람에게 진 빚이 있다는 것과 같다
웹툰 <커피와 스무디> 中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길었을 나의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두웠던 시기마다, 나는 나의 스타에게 빚을 져왔다. 정말 말 그대로 마음의 '빚'을 져왔다. '완덕'을 하고 나서도 다시 무대를 보거나 방송을 봐도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게 아닐까.
한때 잠시나마 덕질했던 과거를 숨겨보고자 노력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감기와 사랑과 덕질은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마음껏 덕질을 하며 살다 보니 더욱 나다워질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걸 좋아할 때 가장 행복한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