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민거리
어느 날 아침에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을 했는데 팝업창이 떴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걸 알게 해 주는 알림 창. 궁시렁 대며 '아 벌써 한 달이나 지났어?'라는 혼잣말을 했다.
우리 회사만 그런 건지, 다른 회사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는 느낌이다. (물론 보안이 중요하니까요) 게다가 조건도 꽤나 까다롭다. 최근 5회 동안 했던 비밀번호는 사용할 수 없고, 숫자도 들어가야 하고, 특수기호도 들어가야 하는 터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 머리에서 나오는 비밀번호는 거기서 거기였다.
예를 들자면, 학창 시절부터 썼던 비밀번호나 연인과 함께 만들었던 비밀번호 (절대 하지 말 것), 덕질 대상과 관련되었던 무언가 등등 (응답하라 1997에 나왔던 은지는 토니의 생일이 집 비번이었지) 익숙하게 조합해볼 수 있는 단어와 숫자들. 나름 새로운 비밀번호인 듯하여 입력해보면 '최근 5회 중 사용했던 비밀번호입니다'라고 뜨다니, 씽크빅을 더할 걸 그랬지.
이렇게 매달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바꿔주어야 하는 '비밀번호 바꾸기'에 신물이 날 즈음, 으레 찾아오는 회사 권태기도 함께 찾아왔고 뭔가 재미난 것, 새로운 것,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사소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만한 호수 위의 조약돌 같은 무언가.
그때부터 나는 그 달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 혹은 다짐을 비밀번호로 적기 시작했다. 숫자와 특수문자는 그때그때 내 기분 따라 맞추는 거고. 내용은 정말 사소했다. 예를 들자면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했고, 올해 계획 중인 휴가지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일 때도 있었고, 최근 고민 중인 인생에 대한 고찰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거야 말로 그 누구도 해킹할 수 없는 최고의 비밀번호! 해킹하려면 내 마음을 읽어야 하는 거잖아? 당시의 내 감정에 따라 어떤 비밀번호를 할지 모르는 거니까 말이지.
회사 서버의 비밀번호야 말로, 직장인이 하루 중 가장 처음 책상 앞에 앉아 타이핑하는 단어/말이다 보니 나에게는 나름의 루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자주 하는 일이지만 무의식적으로 나름의 다짐을 하게 되는 점에서 의미 있는 혹은 기억하고 싶은 말을 비밀번호로 해두는 게 나에겐 꽤 오랫동안 의미 있는 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당신의 비밀번호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