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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Aug 31. 2020

덕질의 역사 - 3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덕질의 역사 마지막 이야기.


지금은 이렇게 당당하게 '덕질'에 대한 긴 글을 쓰고 있지만 나 또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한 적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동방신기..? 그게 뭐야?'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설프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었지만, 찐 덕후로서는 일반인으로 친구를 사귀고 싶었던 것 같다. 근데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이 덕후여서 일반인인 척했던 나와 친해지지 못한 안타까운 경험.


그렇게 어중이떠중이로 살다가 우연히 대외활동에서 덕메(덕후 메이트) 만났다. 20대의 나의 세계는 엑소였다. 엑소의 입덕은 스며들듯 정착했다.  나의 대학생활의 변천사와 함께 신인시절부터 성장하는 엑소를 지켜보는  나름 하나의 위안이었다. 신인상, 본상, 대상. 마치 내가 성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했다. 웃을  없는  속에서 유일하게 나를 웃게 하는 존재들이었다.


1편에서 썼듯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인생에서 어둡고 추운 순간에 그 사람에게 진 빚이 있는 것과 같다고 했었는데, 20대의 나는 엑소에게 큰 빚을 졌다. 특히 내가 취업준비를 할 때는 정말이지 큰 위안을 받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이런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생일 선물로 굿즈를 받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이 시기 이후의 덕질은 문화 자체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스마트폰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엔터 업계답게 브이 앱, 리슨 등 자체 어플과 플랫폼의 어플이 탄생하며 콘텐츠가 풍부해져 덕질할 맛이 났다고 해야 할까. 유튜브의 자체 콘텐츠로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이 탄생했다. 방송국에서도 아이돌과 콜라보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기도 했고.


10대 시절엔 ‘다음 카페’가 덕질의 메인 플랫폼이었다면 20대에는 ‘트위터’가 메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트위터 모르면 덕후 아닐 정도로 모든 정보는 트위터에서 시작해서 트위터에서 퍼졌다. 한국에서 트위터가 철수를 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스마트폰의 도입과 함께 우리는 더욱 재밌게 덕질을 했다. 물론 모르고 싶은 것도 많이 알게 되었고. 하하.


어느 정도 짬이 찬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개인 SNS 계정을 갖고, 공개하고, 팬들이 팔로우를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팬들과 아티스트의 쌍방향 소통(어느 정도는)이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많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아티스트와 팬의 경계가 어느 정도는 허물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팬들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그게 바로 전달될 수 있으니까.


더불어서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들의 출연으로 팬들은 팬클럽보다는 개인 혹은 개별 집단 화 되어 활동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컨트롤이 좀 더 힘들어졌다는 말이지. 하지만 내 새끼 상 주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단단해지는 게 팬덤의 문화이다 보니, 아직 한국 팬덤은 ‘올팬’ 문화가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스밍 목록을 회사에서 짜주진 않잖아요..)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덕질로 이겨내고 회사에 들어와서는 정말 일이 너무 많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다 보니 지난 나의 취미들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미뤄가며, 일한 결과 어느덧 나는 덕질조차 나에게 위안이 되지 못하는 '덕태기(덕질권태기)'를 겪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완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언제 내 마음대로 되었던가. 내 마지막 아이돌일 줄 알았던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또다시 마음속에 새로운 최애를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좋은 증상인 것 같기도-


긴 글을 쓰다 보니 논문 같아진 건 내 느낌이겠지. 케이팝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한다(문명 특급 재재님 보고 있다면 나와 함께 케이팝 배틀을 해줘요). 케이팝부터 클래식까지 다 듣는 저, 정상입니다. 앞으로도 내 최애가 더 잘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한 움큼 담아, 여전히 덕질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또한 누군가, 무언가의 덕후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세상은 덕후가 바꾼다고. 그 무엇보다 순수하게 강렬한 마음, 오늘도 덕분에 웃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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