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키지 않은 약속을, 나 혼자 지켜본 시간
23년 5월 30일 월요일 아침 6시 30분.
마흔이 되도록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미라클모닝이란 걸 해봤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알람 없이 새벽에 눈 뜬 경험이 처음이라 일어난 게 아까워 ‘한번 해보지 뭐’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음은 첫날의 기록이다.
화장실 한번 다녀오고, 전날 밤 미뤄두었던 설거지를 하고, 컵에 물 한잔 받아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일찍 일어났어?”
마흔이 된 지금, 이것저것 도전을 많이 해왔는데 미라클모닝이란 걸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더라고. 이런 생각의 시작엔 최근 즐겨보았던 <김미경 TV>의 굿짹 책린지, 514 챌린지와 <무빙워터 - 이동수 님의 새벽 조깅한 달> 영상을 본 것이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 나를 일으키는 법, 그리고 작은 시도가 큰 변화를 만든다는 두 분의 생각에 공감했고 나를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이지만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므로 실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한번 해보니까 새소리도 들리고 기분은 좋네.
“스스로 만든 1시간, 어떻게 쓸 생각이야?”
우선 이 작은 노트를 기록의 도구로 삼았어.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으니까.
1) 오늘처럼 밀린 청소를 하며 집의 질서를 바로잡거나
2)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가져보거나
3) 감사 일기를 쓰거나
4) 책을 읽거나
5) 명상을 하거나
6) 글쓰기를 이어가거나
7) 스트레칭을 하거나
8) 요즘 내 고민을 적어보거나
9) 고민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보거나
10) 식물을 들여다보거나
잠깐 생각했을 뿐인데 한 시간 동안 해볼 만한 일들이 꽤많았다.
아,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일찍 일어난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기.
우선 2주간만 테스트해 보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돌이켜보면 이 기록을 이렇게 오래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이 아침 기록에는 성공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규칙도, 반드시 무엇을해야 한다는 목표도 없었다. 잘한 날과 흐트러진 날을 같은 무게로 적었고,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충분히 칭찬해 주었다. 그래서 이 기록은 버텨야 할 챌린지가 아니라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로 남았다.
그다음 날, 선언을 해서였을까. 더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아침에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지보다 기억에 남는 건 그날 적어 내려간 한 단어였다.
‘일일해해’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해결해야 할 일은 해결하면 된다는 뜻의 나만의 인생 해석이었다.
살다 보면 준비 여부와 상관없이 일은 일어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결국 해결하게 된다. 짧게 고민하든, 오래 붙잡고 있든 시간은 늘 자기 방식으로 답을 내놓았다. 그사실을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고, 아침 기록을 하며 그걸 다시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닝챌린지가 10일을 넘기면서 아침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어느 월요일엔 주말을 쉬고 난 뒤 아침에 이미 주간 회의와 업무 장면을 떠올리며 하루를 열고 있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낯선 단어를 적어두며 아직 윤곽도 없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남겼다.
아침 일기가 쌓일수록 기록의 방식도 진화했다. 노트에 손기록만 남기던 것에서 디지털 기록도 함께 남기기 시작한 것. 이렇게 변화를 준 이유는 매일 생각이 바뀌고 다듬어져 가는 과정을 한눈에 보고 싶어서였다. 나만의 해시태그 '모닝챌린z'를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대표 이미지만 봐도 며칠째 진행 중인지, 오늘 아침의 단상을 대표하는 제목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이미지들이 나온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늘 그랬다.
호기심이 이끄는 곳에 길이 생기고,
사람을 만나고, 그게 일이 되고, 삶이 되고,
결국 내가 되었다.
아침 기록은 그 흐름을 미리 예감하는 자리 같았다.
물론 모든 아침이 단정하지는 않았다. 15일 차가 되던 날엔 “일어나지 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책을 폈다가 10분 만에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멍하니 있다가 소파에 누웠다가 다시 나를 일으켰다. 그날 노트에는 ‘체력 보충이 필요하다’라는 말과 함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몸을 움직이곤 한다. 쌓여있던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거나 우당탕탕 설거지를 하거나 잠시라도 뛴다. 이런다고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잠시 고민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시간을 보낸 후에야 해결책을 발견하곤 했으니까.
이날의 나는 잘 해내는 대신 나를 밀어붙이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었다.
55번의 아침은 나를 더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나를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기록은 나를 바꾸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나의 태도를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렇게 2023년 5월 30일부터 12월 4일까지 두 권의 노트에 55번의 아침 기록이 남았다.
첫 번째 노트의 마지막 장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경험.
난생처음 아침일기를 써본 경험. 매일 나를 돌본 경험.
노트 마지막장까지 채워 본 경험. 너무 소중한 내 재산이라고.
2023년 12월 4일, 55번째 아침 기록을 끝으로 이 노트는 잠시 덮였다.
매일 아침 일기를 쓰는 일은 멈췄지만, 그 시간을 통해 배운 '나를 일으키는 법'은 남았다.
앞으로도 분명 나에게 어려운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방향을 잃거나 마음을 추스르기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다시 이른 아침, 책상에 앉아 이 작은 노트를 펼칠 생각이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다시 믿기 위해서.
이 기록은 끝났지만 나를 일으키는 방법은 이미 내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