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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로사 Nov 08. 2023

아빠

외로운 슈퍼맨의 이름, 아빠

하루의 밤, 마지막 시간은 나의 시간이다.

귀염둥이 아이도 자고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난 후라 피곤이 밀려오는 시간이지만 오로지 나의 숨소리를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 무거운 몸을 끌고 소파에 앉는다. 뭔가 그냥 자면 너무 아쉽고 손해 같은 생각이 들어 책도 읽고 유튜브로 관심 있는 내용들을 찾아보며 하루의 마무리를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시원한 물 한잔을 들이켜고 소파에 앉아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을 따라 내게 KBS다큐와 EBS다큐의 내용이 나타났다. 두 다큐 모두 2016년에 제작되었는데 주제는 '대한민국 중년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요새 명상내용을 검색했는데 왜 뜬금없이 '중년남자'에 대한 다큐영상 두 편이 내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지만 아빠 생각이 나면서 그 영상을 순식간에 보았다.




아버지가 자랄 때는 우리나라가 급 성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산업화로 변모하여 활발하게 경제성장을 이룬 시기로 민주화의 격변기와 풍요로움을 동시에 거친 역동적인 세대가 아버지 나이 또래의 세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우리 아빠는 늘 활기차 보이고 분주했으며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아빠 또한 2-30대의 자신은 무엇이든 자신감 있게 도전하고 어려움을 헤처 나갔기 때문에 얼굴에서도 온전하게 당찬 모습이 빛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지금은 내 기억 속에 살고 계신 아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당찬 얼굴 뒤에 감춰진 그림자, 애써 쫙 펴보지만 축 처진 무거운 어깨에는 우리 가족의 생계와 삶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그땐 아빠니까, 우리 집의 가장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적 고정관념처럼.

주변의 중년 아빠, 퇴직을 할 시기의 아빠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짠한 얼굴빛과 자신감을 잃어가고 쓸쓸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젊었을 때는 가족들에게 소홀한 때도 있었고 밖에서 한바탕 전쟁처럼 일을 마치고 돌아와 쉬기 바빴기에 아내, 아이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지 못했으리라.... 중년이 되어 가족과의 밀도를 높이려고 하지만 이미 각자의 삶이 익숙해진 자녀들과의 소통은 어렵기만 하다.



살아오며 아빠들은 가족들에게는 현재의 걱정과 미래의 불안을 티 내지 않으려 '나는 괜찮아', '아빠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나만 믿어'라며 슈퍼맨처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다가 중년이 되어 자신감이 걷히고 온전한 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 그의 내면에는 얼마나 큰 심적부담이 있을까? 

이제 한숨 돌리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바삐 산다고 놓친 시간들로 인해 가족들 사이에서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소통이 되지 않을 때 밀려오는 삶의 공허함과 외로움은 어떨까?




우리 아빠가 지금도 살아계신다면 60대 후반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우리 아빠는 사회에서 퇴직을 하고 젊은 날 가득 찼던 자신감이 한 풀 꺾인 채로 그의 입지를 지키느라 치열하게 전투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그는 그의 어깨 위 가족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뭐든 잘 해내야 한다는 '슈퍼맨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내가 봤던 그 다큐에서 나온 중년 남자들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는 어렸을 때 나름대로, 커서는 컸다고 아빠에 대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아마 다들 나와 같을 것이다. 나는 아빠와 함께 숨 쉬고 있지 않다. 아빠는 이미 내 곁을 떠나버렸기에 그에 대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볼 기회도 모두 잃어버렸다. 영상에서 나온 누군가의 아빠들의 모습을 보고 돌아가신 우리 아빠의 생전 모습을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아빠와 함께 하고 있는 누군가들이 참 부러웠다. 아빠에게 '고생했어요',  '감사해요', '힘내요'라고 말해줄 수 있으니...



나처럼 나의 마음을 고백하고픈 상대를 잃고 나서 가슴 아파하고 '그때 잘할걸...'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든 엄마든 부모님에게 당신 인생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셔서 감사함을 전달하길 바란다.



언제까지나 당신의 슈퍼맨이, 방패가 되고 싶은 아빠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응원하는 내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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